Gojira – L’Enfant Sauvage (Roadrunner, 2012)

Gojira – L’Enfant Sauvage (Roadrunner, 2012)

4년만이다. The Way of All Flesh (2008) 이후로 더 이상 보여 줄 것이 없다고 믿었던 Gojira가 새 앨범을 냈다. 앨범 명을 보이는 대로 알파벳을 짜맞추어 ‘Elephant Sausage’라고 생각하던, L’Enfant Sauvage의 영역(英譯)인 ‘The Wild Child’로 생각하던, 제목에서부터 무언가 심상치 않은 것이 올 것이라 기대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From Mars to Sirius (2005)이후에 들려줄 것이 있을 것인가? 란 의문에 The Way of All Flesh가 3년 만에 그 해답을 보여줬듯이.

밴드의 보컬리스트/베이시스트인 Joe Duplantier는 앨범 발매 이전, 앨범 제목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뮤지션이라는 위치는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상사 따위는 없으며 따라서 스스로를 책임져야 한다고 운을 띄우며, 책임을 동반한 자유에 스스로 물음을 던지며 자유란 무엇이고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에 대한 부분이 앨범에 투영되어 있으며 그럼에도 답은 없고 단지 삶과 의문만이 있을 뿐이라는 발언은 Gojira가 앨범을 거치며 내비쳤던 앨범 전체적인 주제의식 (예를 들면, From Mars to Sirius에서의 지구 환경 문제)과 더불어 밴드 스스로가 나아갈 길을 표시한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이 앨범이 컨셉 앨범은 아니지만.

앨범은 전체적으로 러닝타임만 보고서도 ‘이게 Gojira 맞어?’ 할 정도로 압축되고, 짧고, 조여져 있다. 대곡을 최대한 지양하고 정수만 담은 결과는 상당히 성공적이다. 리듬은 속도가 붙어 Death Metal의 기운을 물씬 내고 있으며 군더더기를 찾기 힘들기에 이들의 사운드가 좀 더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특히 초반부의 두 곡은 완벽히 듣는 사람의 혼을 빼 놓기에 충분하다. 전형적인 Gojira 식의 리듬과 기타 애드립을 전개하다 중 후반부에 서부영화 풍의 건조한 분위기와 멜로디가 헤비한 리듬과 교차하는 Explosia는 다음 곡에 기대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이며, 동명 타이틀곡 L’Enfant Sauvage는 전작의 최고점이었던 The Art of Dying을 빈틈없이 압축하여 재편한 느낌이 든다. 9분 동안 긴장감으로 (혹은 지루함으로) 청자를 압도하던 곡은 4분여의 L’Enfant Sauvage로 다시 태어나면서 스피드를 갖췄고, 빽빽하게 짜여 있어 단 4분 동안 일체의 다른 사운드를 듣는 것을 불허할 수준의 긴장감을 새롭게 부여한다. 이런 구성이 앨범 전체적으로 반영된 까닭에, 다른 곡들 또한 Gojira가 어려운 음악 또는 지루한 음악이라는 편견을 깔끔하게 부숴버릴 만큼의 장점을 갖게 되었다. 개인적인 취향 차이는 분명 있겠지만, The Way of All Flesh가 지나치게 육중하고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긴 곡과 느릿한 사운드를 들려준 것 때문에 지루한 느낌이 들었던 사람이라면 분명 L’Enfant Sauvage에 엄지손가락을 높게 치켜 올릴 수 있다.

후반부의 뒷심도 아주 약하진 않다. 새 앨범에서 전반적으로 Joe Duplantier는 코러스에서 멜로딕한 보컬을 시도했는데, The Gift of Guilt에서 상승하강을 반복하는 메인 리프와 멜로딕 보컬, 반전된 분위기에서의 리프와 보컬의 대비는 들을 가치가 있으며 멍한 분위기로 서서히 사라져가는 마지막 곡 (디럭스 버전은 2곡이 더 수록되어 있다) The Fall은 끝맺음으로 손색 없다.

이것으로 3부…아니 리뷰…. 아니 좋은 소리는 끝.

그렇다. 많이 봐줘서 4곡 쳐준 거지, 사실 이 앨범에서 들을 곡은 Explosia, L’Enfant Sauvage, The Gift of Guilt 단 3곡뿐이다. 많이 줄이고 정수만 뽑아내려 노력한 부분은 비판 혹은 폄하의 대상이 아니다. 다만 그 때문에 곡들이 일관적인 흐름을 띈다는 단점이 크게 작용했을 뿐이다. 두 번째 싱글로 공개된 Liquid Fire는 L’Enfant Sauvage의 일부분을 자르고 붙여 만든 느낌이 강하게 들 수 있으며, 나머지 곡들은 Gojira가 그 동안 보여준 모습답지 않게 초반 30초가량을 들으면 끝이 보일 정도의 구성으로 채워져 있다.

사운드, 주법, 리듬의 재활용도 문제이다. 뮤지션이 이전에 냈던 앨범 그대로의 요소를 쓰는 것은 뮤지션 특유의 아이덴티티지 굳이 재활용이라고 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이 당연히 들지만 그 정도가 심할 뿐 더러 곡을 간소화 시키는 과정에서 이전에 쓰인 요소의 재활용은 Ctrl + C -> Ctrl+V 수준의 느낌마저 줄 수 있는데 이들도 그것을 피해가진 못했다. 멜로딕한 부분은 From Mars to Sirius가 바로 생각나고 극단적인 질주감이나 헤비한 부분은 바로 The Way of All Flesh가 떠오르게 한다.

어떤 뮤지션이건 항상 변화하거나 진보할 수는 없고 답보 상태에서도 좋은 앨범을 만들어낼 수, 아니 평생을 한 스타일로 내놓아도 좋은 앨범을 내는 경우는 너무나도 많다. 다만 Gojira가 새 앨범에서 한발 더 나아간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 앨범이 구리다는 뜻은 아니다. 진보를 포기하고 기존 요소의 적절한 재배치를 목표로 삼아서 좋은 앨범을 만들기로 했으면 적어도 밴드의 뛰어난 부분을 버리지는 말았어야 했는데 잔 가지를 치려다 큰 가지를 친 꼴이 되어 버렸다. 여타 Progressive Metal 밴드들과 Gojira는 따라올 수 없는 육중한 헤비함과 둔탁한 사운드, 유연함을 찾아보기 힘든 느릿느릿하고 딱딱하게 찍어 누르는 Death Metal 혹은 약간의 Doom Metal에서 영향 받은 부분으로 선을 그어 왔는데 그 부분을 스스로 쳐 내버렸다. 더불어 여타 Groove Metal과 Gojira가 선을 긋는 부분은 특유의 곡 구성과 Thrash/Death Metal에서 찾기 힘든 뒤틀어진 리프였는데 이 부분도 많이 희석된 부분이 아쉽다.

물론, 이 앨범이, Gojira의, 가장 단시간 만에 리스너로 하여금 앨범을 사게 만드는 기록을 세울 것은 차트 성적만으로도 확실하다. Gojira라는 밴드가 뜬다던데 나도 들어볼까? 하는 사람에게 이 앨범은 From Mars to Sirius보다도 좋은 선택이 될 것이며 그 동안 Gojira가 가졌던 건조하다던가, 지루하다던가 하는 이미지 또한 불식시키기에도 적절하다. 하지만 2012년 현재 이 앨범이 그들의 최고작이 될 수는 없다. 이 앨범, L’Enfant Sauvage의 확장적인 형태는 이미 그들 스스로 몇 개나 만들어 놨기에. 만일에 이들이 잠시 잊고 있었던 이들의 장점을 이번 앨범의 장점과 성공적으로 결합시킨다면, L’Enfant Sauvage 또한 Gojira의 위대한 발자취에 흠집을 내는 일은 없게 될 것이다.

- Matt Villain


L’Enfant Sauv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