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slaved ? RIITIIR (Nuclear Blast, 2012)

Enslaved ? RIITIIR (Nuclear Blast, 2012)

스스로를 폐쇄적인 틀에 가두는 것을 자랑거리로 여기며 몇 십 년간을 지내온 Black Metal에도 변화의 바람은 불어왔다. 변화를 추구하면 배신자 취급받는 풍토 속에 Black Metal은 유독 다른 Extreme Metal에 비해 정체되어 있었고, 옛 밴드의 음악을 제외하고 새로운 스타가 나오지 않았다. 그런 옛 밴드의 하나로, Bathory의 적자, 새로운 Viking Black Metal의 기수를 자처했던 노르웨이의 Enslaved도 2000년대를 기점으로 변화를 시도해 나갔다. Atmospheric Black Metal 요소를 갖추고 짜임새 있게 악곡을 만들어 나갔기 때문에 다른 밴드보다도 변화가 쉬웠는지는 모르지만 Isa (2004), Ruun(2006)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난 Progressive Metal 성향은 RIITIIR (2012)까지 멈추지 않고 점진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Vertebrae (2008)때까지도 자신들이 Progressive Metal을 해야 하는지 Black Metal을 해야 하는지 갈팡질팡하며 문지방에 서 있는 음악처럼 뒤섞여 그럴듯한 Progressive-Black Metal의 모습이 갖추어졌다면, RIITIIR는 자신들은 어디까지나 Black Metal 밴드다 하고 부르짖었던 Axioma Ethica Odini (2010)의 기초에 Progressive 요소들을 귀신같이 짜맞추었다. Black Metal로 시작하여 ISIS같은 Progressive-Sludge 사운드를 내는가 하면, 급격히 멜로딕한 후렴구를 뿌리기도 하는데 Black Metal 요소와 Progressive Metal 요소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분위기 속에 흘러나가듯 이어지는 것에 감탄할 만 하다. Atmospheric Black Metal을 가장한 Post Rock 혹은 Progressive Metal과 Black Metal의 결합 (Blackgaze라고 일컬어진 Gay스러운 이름과도 같은)이 아닌, Black Metal을 밑에 두텁게 깔고 들어가다가 여러 다른 장르를 얹어 놓았는데 대단히 탄탄한 구조를 갖춘, 그런 앨범이 하나 탄생했다. Progressive Metal이라고 하기에는 앨범의 대다수가 시작부터 Black Metal의 분위기가 진하게 나고, 그것이 이 앨범의 장점이자 Black Metal이 살아나갈 또 하나의 길을 열어준 결과라 할 수 있다. 동향의 밴드인 Emperor가 4장의 앨범 속에 변화를 거듭했던 것 그 이상으로 이들은 변화해 왔고, 아직도 이 변화는 연장선상에 있다. Progressive Metal 밴드들이 주제를 찾다 찾다 ‘우주’로 가는데 비해 이 밴드는 아직도 몇몇 부분에서 자연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는 것 또한 다른 밴드들과 분리될만 하다.

이 앨범이 Black Metal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언제까지 Vikingligr Veldi만 계속 듣고 살텐가?

- Matt Villain


Roots Of The Mount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