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iah – One (Townhall, 2016)

Pariah – One (Townhall, 2016)

90년대 초중반 미국 클리블랜드에서 등장한 밴드 Integrity 가 하드코어에 Venom, Celtic Frost, Slayer 등으로 설명되는 사악한 코드를 집어 넣으며 매우 독창적인 하드코어를 만들어 냈다. 사악한 아우라에 걸맞는 암울함/자아 파괴주의적 가사는 지금까지의 긍정적인 & 터프한 코드의 하드코어와는 정 반대되는 노선이었고, 사람들은 이를 네거티브 하드코어 (Negative Hardcore) 라 불렀다. 그렇게 또 하나의 하드코어 서브장르가 탄생한 것이다. 그리 만들어진 자양분속에 캐나다에서 Cursed 라는 밴드가 2000년대초에 등장했다. Integrity 가 보여준 “사악한 메탈 코드를 지닌 90년대식 메탈릭 하드코어” 를 근간으로 크러스트 펑크, 둠/슬럿지, 블랙메탈 등 사악하고 암울한 코드를 지닌 메탈 & 하드코어를 요소를 과감하기 뒤섞고 펑펑 질러댄 이 용감무쌍한 밴드는 하드코어 펑크 전체 역사 및 메탈/하드코어 크로스오버 전체 역사에 있어 매우 의미 심장한 음악적 족적을 남겼다. 그리고 또 다시 10여년의 시간이 흘렀다. 사악한 코드를 지닌 모든 메탈, 그와 일맥상통하는 암울한 하드코어 펑크와의 만남은 나날히 치밀하게 진화 해 갔다. 크러스트, 둠/슬럿지, 블랙메탈, 그라인드코어, 패스트코어, 파워바이올런스, 노이즈/엑스페리멘탈, 드론 메탈, 포스트 메탈, 올드스쿨 데스메탈 등 어둡고 사악하고 암울한 코드를 지닌 모든 장르가 뒤 섞였고, 매우 헤비하고 빠르고 과격한 스타일로 표현됐다. 게다가 모든 밴드들이 앞서 열거한 스타일과는 확연히 다른 자신들만의 음악적 아이덴티티를 확고히 구축 하기도 했다. 펑크/하드코어씬에서의 메탈적 접근이 주 였었지만, 익스트림 메탈씬에서의 펑크/하드코어적 접근도 꽤나 있었고, 2010년대에 들어와서는 긴 역사속에서 수십개로 갈라진 모든 종류의 메탈/하드코어 서브장르간의 경계가 붕괴되는 놀라운 음악적 기현상도 생겨났다. 하드코어 펑크와 메탈의 사악하고 격렬한 믹스쳐를 보여주는 크로스오버 장르인 블랙큰드 하드코어 (Blackended Hardcore) 에 대한 30여년의 정의를 간단하게 하면, 뭐 대충 이러하다고 할 수 있겠다.

2016년 4월에 첫 앨범을 발표한 한국 출신의 밴드 Pariah 는 앞서 설명한 블랙큰드 하드코어의 30여년의 역사는 물론이거니와, 그 장르가 현재 보여주고 있는 음악적 융합/변화상 마저도 완벽하게 보여주는 괴물과도 같은 밴드다. “첫 앨범” 이라는 단어로 이들을 얕잡아 보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말 또한 미리 못박아 두고 싶기도 하다. 밴드 결성 및 데모 앨범 발매는 2012년 이었으며, 결성이 2012년이지만 음악적으로 맞는 멤버들을 규합하기 위해 거의 10여년간 고군분투를 거치면서 자연스레 블랙큰드 하드코어의 급격한 변화상에 대한 디깅 또한 꾸준히 해 오며 음악적 수련을 충실히 해 왔다는 뒷배경도 존재하기에 그러하다.

Pariah 의 데뷔작 One 은 한마디로 블랙큰드 하드코어의 30여년 역사와 변화상 그 자체를 보여주는, 완벽에 가까운 한장이라 할 수 있는 앨범이다. 하드코어 펑크, 블랙메탈, 둠/슬럿지, 그라인드코어 등 사악하고 암울한 메탈과 하드코어의 장르 요소들이 모두 집결 해 있으며, Pariah 라는 밴드만의 개성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게 컴팩트하게 융합/응집 해 내고 있다. 2010년대 들어와 또 한번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블랙큰드 하드코어의 특징인 “매우 극단적인 파괴감과 스피드의 추가” 도 있으며, 그러한 변화상의 주 된 원동력이 되는 그라인드코어 / 패스트코어 / 패스트 블랙메탈적 요소의 극단적 도입 또한 과감/과격하게 행해지고 있다. 새로운 스타일의 블랙큰드 하드코어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밴드들인 Nails, The Secret, Baptists 와 일맥상통하는 음악적 충격의 바이브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 그 바이브의 원동력이 그저 “과격함의 일맥상통” 함이 아닌, “음악적 깊이와 혁신적 스타일의 제시의 일맥상통” 이라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다.

여기에 다양한 개성이 더해지며 앨범은 쉴 새 없이 음악적 흥미로움과 자신들만의 아이덴티티 확장까지도 나아간다. 이 앨범의 진정한 장점은 바로 그러한 것들이다. “전체 러닝타임 15분 남짓” 이라는 상황에 걸맞는,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연신 토해져 나오는 블라스트/머신건 드러밍과 그라인딩 리프 & 사악하기 그지 없으며 사악하다는 말로는 설명이 한참 부족한 보컬 퍼포먼스의 굉장한 존재감. 과격함 속에 교모히 숨겨진 Nasum 과 같은 모던 그라인드코어 특유의 변화무쌍한 리프 패턴 제시 & 기승전결 확실한 구성미와 그에 합당한 캐치한 코드의 적절한 발생. 올드스쿨 스웨디시 데스메탈, 크러스트 펑크, EYEHATEGOD 을 위시로 한 슬럿지 메탈 등의 공통분모라 할 수 있는 “메탈존 이펙터 노스텔지어” 의 발생. 그와 동시에 그 노스텔지어 헤비니스를 혁신적인 새로움으로 변화 시키는 이들만의 음악적 or 기타 플레이어 기준에서의 어레인지 감각의 뛰어남. 그러한 요소들을 해외 유수의 앨범들과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게 잘 조율 해 낸 M.O.L. 스튜디오의 기술력이라는 외적인 흥미꺼리의 튼실함까지. 정말 다양한 음악적 흥미거리들이 즐비 해 있으며, 하나 하나가 모두 개별적으로 인상적이며 전체적으로도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는 점 또한 이 앨범의 장점임에 틀림이 없다.

Pariah 의 이 데뷔 앨범은 그저 “한국에서 처음으로 시도되는 블랙큰드 하드코어” 로만 끝내서는 아니되는 한장이다. 이 앨범은 “최초” 보다는 “완성” 에 더욱 가치가 있다. 그러한 상투적인 프로모션적 문구보다 더 멋진 음악적 무게감이 묵직하며, 그와 동시에 화려하게 빛나기 때문이다. 이들은 블랙큰드 하드코어가 어떻게 탄생되고, 어떻게 변화 했으며,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에 대한 완벽한 이해 / 변화상에 대한 빠른 업데이트를 늘 해왔고, 그것을 데뷔작에 완벽하게 투영 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러한 노력은 매우 자연스레 “해외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라는 말을 꺼내게 만든다. 물론 이 앨범은 부족한 점도 꽤 크다. 2013년 해산 / 2014년 말 재결성을 겪으며 무엇보다 “되던 안되던 일단 빨리 풀렝스를 만들면서 밴드 분위기를 추스려 보자” 로 인해 급조 된 느낌의 곡들이 좀 되고, 그것이 앨범 전체적인 흐름에 있어 약점으로 작용한다는 것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앨범은 정말 잘 만든 작품이라는 점이다. 무엇보다 “블랙큰드 하드코어 특유의 장르적/사운드적 특징” 을 100% 구현 해 내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특정 마이너 장르에 도전하면 꽤나 높은 비중으로 그 장르만의 맛을 100% 구현 해 내지 못하곤 하지 않던가? 음악적 깊이로써나, 프로덕션의 한계로나 말이다. 그러나 이 앨범은 다르다. 블랙큰드 하드코어라는 컬트한 장르의 구사에 있어서는 너무나도 완벽하다. 작곡과 연주들도 대체적으로 훌륭하며, 곡들끼리의 스타일 중복 또한 꽤나 적다. 그저 몇곡이 급조 되었을 뿐이다. 그렇다. 완벽에 가까운 한장이다. 또 하나의 한국 하드코어 마스터피스 탄생 되겠다.

- Mike Villain


Chosen 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