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ssline – Black Silence (GMC, 2013)
Vassline 의 등장은 여러모로 놀라웠다. 펑크와 하드코어가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갓 시작되고, 개념이 잡히고, 그제서야 자리를 잡는가 싶었을때 멜로딕 메탈코어-이모셔널 하드코어-뉴스쿨 사운드라고 불리우는 매우 진보적인 하드코어를 시도 한 것으로도 모자라 단 한장의 풀렝스 앨범에서 완성 시켰기 때문이다. 그 작품 The Portrait Of Your Funeral ?(2002) 은 한국 펑크/하드코어의 진정한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레벨이고 말이다. “모방” 의 시대를 끝내고 세계를 향한 “경쟁” 에 참여 했다는 점 하나만으로 가치가 높으며, 그와 별개로 매우 놀라운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는 점 역시 임팩트 했다. 그렇게 한국 하드코어의 전설은 시작이 되었었다.
허나 그 전설은 10여년 채 되지 않은 사이에 2장의 앨범을 내 놓으며 빠르게 음악적 위기를 맞이한 아이러니함을 맞이했다. 홍대 펑크/하드코어 밴드에서 한국 인디씬의 아이콘으로 올라서게 된 두번째 앨범 Blood Of Immortality (2005) 을 발표하며 밴드는 엑스페리멘탈한 노선의 이모셔널 하드코어와 메탈헤드적 노선의 멜로딕 메탈코어의 갈림길에서 후자를 선택했고, 좀 더 확실한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며 많은 팬들을 끌어 오는데 성공했지만, 데뷔작에서의 다양한 음악적 깊이의 상실과 그로 인한 아쉬움 & 그 공백을 확실히 메꾸주지 못하는 엔터테인트적 노선은 다소 큰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 것도 사실이었다. 엔터테인먼트적 공백은 차기작 Permanence ?(2009) 에서 완벽하게 메꿔지긴 했다. 허나 밴드에게는 여전히 위기감이 지워지지 못했다. 멜로딕 하드코어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다양함은 한정되어 있었으며, 그다양함은 이미 2번째 앨범에서 거의 다 보여 주었으며, 3번째 앨범에서 남은것을 마저 보여주는 가운데 디테일한 측면까지 완벽하게 완성 해 내며 “더 이상 할 것이 없음” 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2번째 앨범부터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 더욱 더 강력하게 갈 수 있었던 현악 파트와 더욱 더 강력하게 나아 갈 수 없었던 보컬과 드럼의 미묘한 온도차의 부각 역시 문제였다. 여기에 전 세계적으로 멜로딕 메탈코어-뉴스쿨 하드코어의 음악적 한계 봉착이라는 사항이 더해지면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필요가 없다. 그렇다. Vassline 은 자신들의 노선을 완벽하게 정의하며 진정한 전실이 되었고, 그와 동시에 음악적으로 절벽 끄트머리에 서 있는 입장이 되고야 만 것이다.
Permanence ?의 활동이 어느정도 끝난 이후 Vassline 은 명성에 비해 꽤 조용한 활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애써 “서서히 밴드가 사라져 간다” 라는 느낌을 감추기 힘들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4년이 흘렀다.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꽤 많이 잊혀져 버릴 수 있는 시간인 4년, 그 시간후인 2013년에 신작이 등장했다. Black Silence 라는 앨범 말이다. 3번째 앨범에서의 한계점 목격과 4년이라는 미묘한 공백은 “기대감” 이라는 것을 꽤나 없게 만들었다. 시원하게 말해서 “신선 할 리가 없다” 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예상은 멋지게 파괴되고 만다. 이유는 간단하다. Vassline 의 문제는 Vassline 이 가장 잘 알고 있었고, 어찌 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도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Black Silence 는 “Vassline 의 음악적 위기극복” 을 가장 잘 보여주는 앨범이자, 고작 그러한걸로 끝나지 않는, 정확히 말해서 “세계의 모든 메탈코어가 가진 음악적 한계를 가장 잘 극복한 가장 뛰어난 모범” 이라고 평해야만 하는 경이로운 레벨의 앨범이다. 아는 사람은 알다시피 메탈코어라는 장르의 사운드 기준은 많이 바뀌었다. Killswitch Enage, Shadows Fall, Caliban, Heaven Shall Burn 에서 Emmure, Attack Attack!, Asking Alexandria, Animals As Leaders, Periphery 와 같이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나 매우 파격적인 노선으로 변화를 가졌다는 말이다. 그리고 Vassline 은 그것을 눈치 챘으며, 수많은 신 메탈코어 패러다임을 과감하게 섭취-소화-재해석 해 내려 노력하고 있다. 일단 그것이 신작 Black Silence 의 무서움의 원동력이 된다.
Vassline 은 신작에서 Permanence 이후 등장한 모든 메탈+하드코어의 공식, 새 장르, 서브장르, 어레인지에 대한 모든것을 섭취하고 행하는 괴물같은 실행력이 일단 돋보인다. 다시 말하지만 “전부 다” 실행 해 버린다. Emmure, Attack Attack!, Asking Alaxandria 와 같은 뉴메탈 바운스를 대거 끌어 당신 리드미컬한 어레인지형 메탈코어 스타일, 그러한 스타일에서 트랜스/테크노적인 사운드를 덧댄 리드믹 트랜스코어적 노선에 대한 시도, Permanence 앨범부터 서서히 낌새를 보이던 데스메탈에 대한 애정표현 & 그 이후 제대로 터진 데스코어 패러다임과 그와 연동되게 발전 시킨 데스코어 요소들, Day Of Mourning 출신의 새 기타리스트이자 엑스맨 이강토를 중심으로 한 비루투오조-테크니컬 익스티림메탈 & 하드코어 퓨전/DJENT 까지 전부 말이다. 2000년대 초중반의 메탈코어의 음악적 한계 봉착과 동시에 터져나온 Rise Records, Sumerian Records, Prosthetic Records, Victory Records 의 모든 종류의 새로운 메탈코어 공식을 연구하고, 섭렵하고야 만 것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섭렵” 이라는 단어가 그저 흉내내기가 아닌, Vassline 의 만의 브랜드로 다시 재창조 해 낸다는 점이다. 섭취만으로 끝나지 않고, 소화를 해 내서, 양분으로 축적 시켰다는 말이다. 수많은 새로운 메탈코어 공식-스타일을 시도하고 있지만, 3장의 앨범들에서 보여준 Vassline 만의 멜로딕 메탈코어의 뼈대는 미동도 하지 않으며 자신들만의 브랜드를 그 어떤 앨범들보다 탄탄하게 유지하고 있다는 점 역시 이 앨범의 장점이라는 점을 애써 부정하기가 힘들다. 다소 옛스런 뼈대를 유지하며 새로운 스타일들을 잘 이어 붙이는 건 쉬운 작업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한것을 매우 자연스러운 멋으로 해치우는 면모는 Vassline 의 새로운 위대함이자 신작의 진정한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 다소 겉돌았던 보컬과 드럼의 완벽한 팀 내 융합, 한국 하드코어씬의 다양한 피쳐링과 그로 인해 메탈릭 하드코어의 한계를 넘어선 패러다임 시프트적 느낌의 예상치 못한 탄생 (=잠비나이와의 콜라보가 그러하다!) 까지 더해지며 앨범은 더욱 더 멋진 인상으로 다가온다.
신작은 한마디로 굉장한 앨범이다. 다양한 Vassline 의 단점을 한번에 해치운 것으로 끝나지 않으며, 다시 Vassline 이라는 밴드를 주목받고 있는 신예 밴드들만큼의 레벨로 탈바꿈 시키고 있으며, 이러한 신선한 밴드로의 탈바꿈 공식은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매우 과감하고도 유니크한 방법론이기에 그러하다. 이는 Vassline 이 데뷔작에 이어서 또 한번의 한국 펑크/하드코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썼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두번의 패러다임을 한 밴드가 만들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아니던가?
- Mike Villain
Black Fo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