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ion Of Disorder – Razed To The Ground (Candlelight, 2015)

Vision Of Disorder – Razed To The Ground (Candlelight, 2015)

80년대만 하더라도 메탈과 하드코어와의 만남의 기준은 크로스오버 쓰래쉬였다. 하지만 하드코어씬의 변방이었던 뉴욕이 급작스레 90년대에 명 밴드를 쏟아내자 그 기준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Cro-Mags, Madball, Sick Of It All, Biohazard, Earh Crisis, Merauder 와 같은 밴드들이 차례대로 등장했고, 어느샌가 메탈과 하드코어의 만남은 크로스오버 쓰래쉬에서 헤비-그루브를 앞세운 메탈릭 하드코어로 변화했다. 이러한 변화는 메탈코어의 시발점었으며,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메탈 + 하드코어 하면 떠오르는 스타일의 대명사가 되었다.

뉴욕 하드코어 특유의 메탈릭한 사운드에 데스메탈적 헤비함을 더해 하드코어의 극단화를 제대로 보여 주었던 Earth Crisis 의 등장 이후 뉴욕 하드코어는 나날히 헤비함의 격전장으로 변해갔는데, 그러한 흐름속에 VOD 가 있었다. VOD 는 후발주자급 밴드였지만, 등장과 동시에 굉장한 화제를 몰고 왔으며, 그 화제성은 이미 자리잡은 뉴욕 하드코어 아이콘들을 위협 할 정도였다. 그럴만 했다. 이들이 구사하는 메탈릭 하드코어는 너무나도 강렬한 오리지널리티를 가지고 있었기 떄문이다. 브레이크다운/빗다운으로 대표되는 심플한 헤비 그루브 중심의 사운드가 되던 그 당시 메탈릭 하드코어 스타일과는 다른, 변화무쌍한 템포 체인지 / 그에 걸맞는 테크니컬함-기괴함-혁신성을 동반한 테크니컬한 연주 / Machine Head 와 같은 밴드와 맞장뜰 정도의 그루브메탈적인 파워풀함의 보유까지. VOD 는 매우 독특하고 혁신적인 밴드였다. 하드코어라는 장르안에 묶어 두기엔 꽤나 자유롭고 진취적 이었으며, 메탈이라는 폼에 묶어두기 또한 무리였다. “메탈과 하드코어의 만남 & 기괴할 정도로 유니크한 어레인지” 는 하드코어씬 내에서도 화제였고, 하드코어씬을 벗어난 90년대 헤비니스 계에서도 화제였다. 데뷔 EP Still (1995) 은 발매와 동시에 뉴욕 하드코어/메탈릭 하드코어 & 90 헤비니스 클래식 레코드가 될 정도로 임팩트한 화제를 몰고 왔으며, 그 여세를 몰아 Roadrunner Records 라는 언더그라운드 헤비니스 계열의 최고 레이블과 계약하여 두장의 정규작 Vision Of Disorder (1996) 과 Imprint (1998) 을 발표하기도 했다. 등장부터 메이저급 데뷔까지 거침이 없었던 행보에도 불구하고 VOD 는 결국 실패와 해산이라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만나게 된다. Roadrunner 는 단 두장의 앨범만을 내 주었을 뿐, 프로모션을 거의 해주지 않고 방치하다가 계약 만료를 시켜 버렸으며, 3년후에 발표한 정규작이자 더욱 메이저급 레이블이었던 TVT Records 와 계약하고 발표한 From Bliss To Devastation (2001) 은 그 당시 큰 인기를 구가하던 헤비니스 사운드인 뉴메탈로 대변신을 시도했던 한장이지만 평단/팬들의 평가는 물론이거니와 상업적으로도 대참패를 기록 하고야 말았다. (Roadrunner 에 이어 TVT 에서도 전혀 프로모션 서포트를 받지 못하기도 했다고!) 최악의 흐름들이 계속해서 이어지자 결국 밴드는 해산을 결정 하고야 만다. 그렇게나 전도유망하단 90년대 헤비니스 아이콘은 단 한번의 성공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건 VOD 해산 이후 밴드의 보컬과 기타의 새로운 밴드 Bloodsimple 이 Warner Bros. 라는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하고 두장의 앨범을 내며 나름 괜찮은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2008년, VOD 는 다시 뭉치게 된다. VOD 해산 후 뜻이 맞는 멤버들이 끼리끼리 모여 Bloodsimple 과 Karnov 라는 밴드를 결성하여 활동 했는데, 흥미롭게도 둘 다 VOD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음악을 구사 했었다. 서로 각자의 길을 걷다가 몇번 다시금 조우하게 되며 VOD 의 1회성 재결성을 해 보자는 의견에 서로 동의했고, 그렇게 행해진 재결성 공연에서 꽤나 손발이 맞는 모습을 보이자 시원스레 VOD 를 다시 해 보자는 결론에 도달, 재결성이 타진 된 것이었다. (다소 의외인 레이블인) Candlelight Records 와의 계약 후 재결성 앨범 The Cursed Remain Cursed (2012) 를 발표하여 적잖은 관심과 호평을 이끌어 낸 이들은, 2015년 11월에는 그 탄력을 이어가는 또 한번의 새로운 앨범인 Razed To The Ground 을 발표했다.

신작 Razed To The Ground 은 긍정적인 측면으로써의 기대, 부정적인 측면으로써의 기대 모두를 지니고 있는 미묘한 위치에 놓여져 있다. 그 이유는 전작이자 컴백 앨범인 The Cursed Remain Cursed 에 있다. The Cursed Remain Cursed 이 쾌작임은 쉽게 부정 할 수 없다. 하지만 어느정도 머릿속에 의문부호가 난립하게 만든 한장이기도 했는데, VOD 가 90년대에 들려 주었던 음악과는 꽤나 다른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초기와 일맥상통하는 헤비함과 독특함을 겸비한 메탈릭 하드코어이긴 했다. 허나 변화무쌍한 템포 체인지, 그에 걸맞는 테크니컬/다이내믹한 연주력의 존재감으로 인해 탄생되던 VOD 만의 강렬함은 분명 아니었다. 초기의 변화무쌍함-묵직함이 아닌, 전형적인 헤비그루브 & 공격적 스피드의 심플한 사용과 날카로운 프로덕션의 새로운 스타일은 괜찮긴 했으나, 초기 스타일을 아니 떠오르게 만들 정도로 강한 음악적 설득력은 분명 부족했다. 컴백작이 성공적이냐 아니냐라는 이분법적인 평가를 내린다면 성공이라는 대답은 쉽게 내릴 순 있지만, 100점 만점의 몇점식으로 다소 세세히 메겨 본다면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든 한장이었다. 심지어 VOD 해산 이후 보컬과 기타가 새로이 전개했던 Bloodsimple 시절의 두장이 더욱 VOD 의 신작 같이 느껴지더라 하는 생각까지 끄집어 내기도 했다면? VOD 의 컴백은 한마디로 어중간 했다.

신작 Razed To The Ground 은 어느정도 그러한 VOD 의 음악적 딜레마를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장이다. 신작 역시 VOD 초기의 변화무쌍한 구성과 연주 / 초강력 헤비 덩어리로 내리 찍는 그 사운드는 아니다. 하지만 그 초기 스타일을 어느정도 다시 활용하기 시작한 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 VOD 의 신작은 절충주의로 만들어진 한장으로, 초기 사운드와 재결성 이후의 사운드가 모두 들어있다. 전작이 “괜찮긴 해도 뒷맛이 찜찜” 이라는 결과를 냈기에 이러한 절충주의는 그다지 좋은 선택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부터 전해준다. 하지만 신작은 새로운 스타일이 꽤나 괜찮은 것이라는 것을 청자에게 심어주는 한장이다. 그 중심에는 전작과 다른 음악적 설득력의 보유가 있다. 곡 전개는 심플하고 놀기 쉬운 헤비 그루브 & 스피드 레이싱의 사용이지만, VOD 의 매력의 핵심인 템포 체인지적인 묘미는 확실히 더욱 많이 살아나 있다. 그저 전작보다 초기 스타일의 비중을 높였을 뿐이지만, 예상범위 보다도 더욱 좋은 결과물이 나왔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생각되지도 않는 다양한 음악적 요소의 발견 역시 신작의 장점이다. 복잡한 구성/헤비함의 초기, 심플한 그루브/스피드와 날카로운 공격성의 재결성 이후의 스타일을 서로 바꿔가는데 있어서의 센스발휘, 그 두가지의 비율조절은 너무나도 절묘하다. 초기작의 묘미를 부활 시키면서도 새로운 스타일의 어필도 매우 강한, 그 두가지 요소 모두를 밸런스 붕괴없이/아낌없이 발휘 해 나가는 면모는 신작 Razed To The Ground 의 최고 장점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Razed To The Ground 는 크게 화자는 되지 않겠지만은, VOD 역사를 논하는데 있어서 꽤나 중요한 한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이다. 수많은 밴드들이 과거 사운드에만 잡혀 있기를 원하지 않는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오리지널 스타일을 원하는 팬들을 아니 생각 할 수도 없다. VOD 의 경우에는 특히 그러한 부분에 유독 민감하다. 초기 스타일이 너무나 임팩트 했고, 그에 비해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는 점, 재결성을 했지만 팬 베이스는 초창기 팬들에만 매우 국한되어 있다는 점, 일단 새로운 스타일을 해 보려는 마음이 강하다는 점, 그러한 모든것들이 꽤나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특히 과감하게 새로운 스타일로 질러 보았던 전작/컴백작이 꽤 잘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호응 유도가 좀 많 아니었으며, 초기 스타일을 아니 언급 할 수 밖에 만드는 음악성 설득력의 부족함은 더욱 이들로 하여금 위기에 봉착하게 했다. 신작은 그 위기를 제대로 극복하는 한장이다. 적당히 초기 스타일을 부활 시켜 올드팬들을 만족하게 했고, 그러면서 적재적소에서 능수능란하게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하여 팬들의 적응력을 높였다. 약간 더 올드한 스타일이 늘었을 뿐이지만, 부가적으로 딸려오는 설득력은 굉장하다.

신구 스타일의 조화는 잘 되었다. 하지만 100% 완성 된 폼은 아니기도 하다. 신구 스타일의 조화에 대한 완벽한 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실력은 있지만, VOD 라는 밴드는 유난히도 과거에 묶여있는 밴드가 아니던가? 일단 초기 스타일로 이목집중 & 새로운 스타일로 팬들의 적응력/설득력 높히기, 그것을 중심으로 한 팬들의 반응 살펴보기 정도가 전부인 한장이다. 허나 그것만으로 충분하기도 하다. 새로운 스타일로을 할 수 있는 상황의 시동이 괜찮게 걸린 상황이 아니던가? 이제 좀 과거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을듯 싶다. 팬들이 원하는거 충분히 했고, 자신들이 원하는것도 어느정도 했다. 다음 한장은? 아마 대박일 것이다. 그러한 기대감을 한껏 부풀려 놓았다는 점 하나만으로 Razed To The Ground 의 가치는 충분 할 것이다.

- Mike Villain


Hours In Cha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