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yss – Recrowned (Jaco/Mirrorball, 2017)
Abyss 는 1992년에 결성한 밴드였다. Crash, Turbo 와 같이 쓰래쉬 메탈 기반의 강력한 음악을 하던 밴드였다고 하며, 당시 한국 언더그라운드 메탈씬의 강자로 손꼽혔다고 한다. 워낙에 실력이 출중 했기에 모 레이블로부터 풀렝쓰 앨범 제작까지 제안도 받았지만, 안타깝게 불발 되었었다고 전해진다. 2000년대 초에는 “대한민국 하드코어 2001″ 이라는 컴필레이션에 한곡을 제공하며 랩락/뉴메탈 스타일로 과감한 스타일 변화를 행하며 재도약을 노리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 까지였다. 더 이상의 활동은 없었고 그렇게 Abyss 는 한국 언더그라운드 메탈씬을 리얼 타임으로 즐겼던 소위 “메탈 아재” 들의 구전 설화 혹은 야사로 남아 버리게 된다.
그 메탈 애호 아재들 마저도 Abyss 라는 이름을 거의 잊은 2010년 경, 흥미로운 일이 일어나게 된다. 바로 그 Abyss 가 활동을 재개 한 것이었다. 8-90년대에 활동했던 한국 메탈 1-2세대 밴드들이 유난히도 많이 활동재개를 알리던 때였고, Abyss 또한 그러한 흐름에 있었기에 표면상으로는 그다지 큰 사건은 아닌듯 보였다. 허나 Abyss 는 차원이 달라도 너무나도 다른, 군계일학 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컴백한 거의 모든 밴드들이 옛날에 하던 음악을 다시금 다시 했을 뿐이었지만, Abyss 는 과거에 했던 음악 스타일들을 과거의 일로 남겨둔 채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의 메탈을 구사하며 강렬한 충격을 선사 하였기 때문이었다. Abyss 가 들고 나온 새로운 스타일은 Killswitch Engage, Lamb Of God 이 바로 떠오르는 2000년대식 모던 메탈코어였다. 과거의 메탈 베테랑들이 요즘 메탈/헤비니스를 구사하는것은 그리 놀랄만한 요소는 아니다. 하면 뭐… 하는거니까 말이다. 하지만 Abyss 의 스타일 체인지 같은 경우는 일종의 “경악” 이라 할 수 밖에 없는 놀라운 것이었다. 완성도에서 차원이 달라도 너무나도 다른 것이었기에 그러했다. Abyss 가 시도한 새로운 스타일에는 “새로운 무언가를 하려 하지만 결국 과거에 했던 음악만이 가득하며, 그것이 새롭게 하려는 스타일과 어우러지지 않고 오히려 충돌하며 총체적 난국을 유발 시킴.” 이라는, 꽤나 많은 한국 메탈 베테랑들의 돌파구 마련의 과오와는 매우 거리가 멀었다. “활동은 오래 쉬었으나 메탈/헤비니스의 새로운 흐름을 절대 놓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독한 학구열. 그리고 그것을 자신들의 오리지널리티로 재창조 해 내고야 마는 음악적 소화력의 무시무시함.” 이라는 예상외의 엄청난 임팩트함이 있을 뿐이었다. 이는 단 5곡만이 들은 데뷔 EP Enemy Inside (2015) 에서 완벽히 증명 된 바 있다. Abyss 라는 밴드의 존재는 그저 “컴백한 밴드” 가 아니었다. 한국 헤비니스계에 전혀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우나 매우 반갑기 그지 없는, 앞으로 큰거 한방 터트리고 말 것임이 분명한 괴물의 출현이었다.
충격 그 자체인 컴백이자 데뷔인 Enemy Inside 로부터 2년 뒤인 2017년, 밴드는 대망의 첫 풀렝스 Recrowned 를 발표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앨범 Recrowned 는 보통의 데뷔작이라고는 생각하기 매우 힘든 앨범이다. 왜냐하면 전작 Enemy Inside 에서의 모던 메탈코어 요소를 시원하게 과거의 일로 치부하고, 완벽히 새로운 스타일로만 가득 채워 넣은 극한의 도전을 행하고 있는데 이러한 과감한 도전은 아무리 봐도 한 밴드 음악 스타일의 절대 기준이 되는 데뷔작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뷔 EP Enemy Inside 에서 보여 준 바 있는 “90년대에 데뷔한 메탈 밴드 답지 않은 진취성” 을 생각 해 본다면 이러한 과감하기 그지 없는 도전은 Abyss 라는 밴드에 더할 나위 없이 딱인 모습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Recrowned 의 중심축은 Meshuggah 와 그들에게서 영향받은 Rise Records, Sumerian Records 소속의 2010년대의 테크니컬 메탈코어 밴드들의 그것이다. 기계적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레 튀어나오게 만드는 매우 헤비하고 로우한 기타톤, 단순하게 반복 되지만 쉽게 적응하고서 머리를 흔들고 몸을 던져대며 즐기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기괴한 테크니컬 리듬 다이, 그에 걸맞는 새로운 방식의 메탈 기타 테크닉 발휘가 확실한 존재감을 어필하며 신보 스타일의 중심을 잡고 있다. 여기에 빗다운, 데스코어, 뉴메탈, 그루브메탈 등 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의 혁신을 주도한 다양한 메탈 서브 장르들의 특징들을 적재적소에 침투/폭발하며 Abyss 라는 밴드 특유의 “메탈의 쉴 새 없는 변화상데 대한 완벽한 이해, 그리고 그것을 자신들만의 오리지널리티로 기어코 만들어 버리는 뛰어난 음악적 소화능력” 이 아낌없이 표출 된다. Meshuggah, The Acacia Strain, Born Of Osiris, Gojira 등 수많은 텍스쳐 밴드들이 생각나지만, “이들만의 오리지널리티로 생각 할 수 밖에 없는 최종결론들” 을 쉴 새 없이 도출 해 낸다는 점은 무엇보다도 이 앨범의 진정만 묘미이자 무서움이다. 음악적 스타일에서도, 연주적 특징에서도, 프로듀스적 면모에서도, 여하튼 모든 부분에서 그러한 점이 강렬하고도 자연스럽게 묻어 나온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Meshuggah 로 대표되는) 다소 심플하고 지루한 반복형 리듬다이 중심의 진보적 스타일로 앨범 전체의 흐름이 짜여져 있지만, 지루함이 엄습 해 올 찰나에 재빠르게 흥미진진한 스피드와 박진감을 때려 박으며 엔터테언먼트적 부분에서도 꽤나 강세를 보여주고 있다는 부가적인 장점 또한 빠트려서는 곤란하다.
Recrowned 는 정말 잘 만든 앨범이다. 9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의 메탈의 혁신적 변화상의 총집결과 자신들만의 오리지널리티적 요소로의 환원, 그것을 극단적으로 돋보이게 만드는 멤버 개개인의 뛰어난 퍼포먼스, 그러한 것들을 최종적으로 집약 시키는 프로듀스의 뛰어남 등 모든 부분이 인상적이다. 과연 이들이 10여년 이상이나 밴드 활동을 쉬었던 밴드가 맞는 것일까? 과연 이러한 혁신성과 진취성으로 가득한 이 앨범의 주체가 과연 중년 아저씨들이 맞는 것일까?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이러한 극단적인 추진력을 가지게 만들었을까? 여러가지 의문감이 마구 솟구친다. 답은 나도 잘 모르겠다. 여하튼 중요한것은 이 앨범은 그저 좋은 메탈 앨범을 넘어선 큼지막한 무언가를 제대로 들려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무언가의 원동력은 아무리 생각해도 음악적 욕심과 정확히 맞물려 돌아가는 노력에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가 않다. “한국 메탈 역사상 최고의 노력을 담아 낸 한장” 이라는 타이틀을 꼭 붙여야만 하는 한장이다. 개인적으로는 그 부분이 더욱 인상 깊게 다가온다. 다방면으로 뛰어난 음악적 요소들, 그리고 음악 외적인 부분이지만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스피릿적인 부분까지 완벽하다. 이것이야말로 마스터피스다. 올타임 마스터피스!
- Mike Villain
Cut Throat Deep & Cle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