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 Of Hell – Trumpeting Ecstasy (Profound Lore, 2017)
Full Of Hell 은 과격하기 그지없는 스피드와 굉음으로 중무장 한 그라인드코어 밴드다. 하지만 이들은 그라인드코어라는 장르적 틀에 가둬 둘 수 없는 이질적 오리지널리티가 너무나도 강렬한 돌연변이 밴드이기도 하다. “이런 저런 장르와의 믹스쳐” 라고 간단히 설명 하기에도 힘들기도 하며, 이들의 진면목은 지금까지의 디스코그래피를 하나 하나 살펴 보는것이 이해가 빠르기도 하다.
둠/슬럿지, 파워바이올런스, 노이즈 뮤직이 블랙큰드 하드코어 스타일로 귀결 시킨 기발함 그 자체의 데뷔작 Roots Of Earth Are Consuming My Home (2011). 데뷔작의 스타일을 좀 극 초창기 그라인드코어 특유의 “일종의 노이즈 퍼포먼스” 적으로 매시브하게 휘갈기는 센스를 덧대어 발전 시킨 Rudiments Of Mutilation (2013). 데뷔작부터 만만찮게 사용한 인더스트리얼 노이즈 운용의 확장판이자 노이즈코어의 초 거장 Merzbow 와의 콜라보 & 극 초창기 그라인드코어 특유의 퍼포먼스적 특징을 극대화 시키며 이들만의 광기를 200% 발산 해 낸 Full Of Hell & Merzbow (2014), 힙스터 코드의 인더스트리얼/엑스페리멘탈 뮤직 듀오 The Body 와의 둠-슬럿지/엑스페리멘탈적 사운드로의 콜라보이자 긍정적 외도였던 One Day You Will Ache Like I Ache (2016) 까지… 그라인드코어를 조금 딥하게 들었던 사람이라면 Full Of Hell 이 어떤 밴드인지 대충 감이 올 것이다. 극 초기 그라인드코어 특유의 10초 미만 퍼포먼스 특유의 지랄 맞음, 기승전결 확실하고 뛰어난 연주 실력/패턴까지 겸비한 모던 그라인드코어 특유의 음악적 튼실함, 그 모던 그라인드코어의 하드코어 펑크적 믹스를 통한 블랙큰드 하드코어라는 또 하나의 신조류, 그라인드코어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많은 그라인드코어 아이콘급 밴드들이 7인치나 스플릿에서 사이드 프로젝트 스타일로 행하던 둠-슬럿지/노이즈코어/엑스페리멘탈 등 추상적 사운드로의 도전. 한마디로 Full Of Hell 은 그라인드코어의 과거 현재 미래는 물론이거니와, 긴 역사속에서 행해진 사이드 프로젝트라는 옆가지까지 모두 섭렵 해 내는 괴물 밴드로 설명이 가능하다 할 수 있겠다. “그라인드코어의 모든것을 해 내는 이 밴드의 연령대는 20대 초반” 이라는 부가 사항이 더해진다면? 그리고 젊은 연령대에 걸맞게 표현 방식에 있어 과거 그라인드코어 보다 패기와 광기가 마구 날뛰고 있다면? 더 이상의 미사여구는 필요 없을 것이다.
2017년 신작이자, (콜라보레이션 앨범을 제외하면) 통산 3번째 앨범이 되는 Trumpeting Ecstasy 은 이들 커리어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이정표라 단언 할 수 있는 앨범이다. Merzbow, The Body 와의 콜라보를 통해서 극단적 과격한 음악을 구사하는 밴드치고는 힙스터 음악 언론들의 깊은 관심과 사랑을 이끌어 낸 바 있는 행보 뒤에 발표되는 신보라서? 아니다. Trumpeting Ecstasy 는 표면적으로 그런 화제속에 발표 된 바 있지만 힙스터 언론의 취향을 저격하기 위한 결정타와는 거리가 멀다. 본작은 그라인드코어와 관계 된 타 장르/스타일에 대한 잦은 관심 표출, 그와 연관 된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어긋난 그라인드코어 밴드로의 아이덴티티의 핀트를 다시금 잡는, 순도 200% 의 그라인드코어 앨범이다. 노이즈/엑스페리멘탈, 둠-슬럿지 스타일을 어느정도 사용하기는 하지만, 본작은 무엇보다 짦고 굵고 모두 다 박살 내 버리는 그라인드코어 파괴 본능에 올인하고 있으며, 이는 Merzbow 와 The Body 와의 콜라보 사이에 나왔던 EP Amber Mote In The Black Vault (2015) 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힙스터 취향의 음악이 주가 되고, 파괴감이 주가 되는 그라인드코어가 사이드가 될 것만 같았던 예상의 정 반대되는 행보라 일단 반갑기도 하다.
Trumpeting Ecstasy 는 1차원적 파괴본능에 매우 충실한 앨범이지만, Full Of Hell 특유의 넒은 음악적 포커스와 그것을 자신들만의 개성으로 환원 해 내는 야심 또한 충실한 앨범이다. 심플하게 “지랄” 로 설명 가능한 노이즈 퍼포먼스 중심의 초기 그라인드코어 (혹은 그라인드코어를 빙자한 퍼포먼스… Sore Throat 와 같은 잡것들 말이다.) 와 모던 그라인드코어의 뛰어난 기승전결의 작곡 센스 & 연주 실력의 발휘라는, 그라인드코어 카데고리 안에서 서로 대립하며 왈가왈부 하는 과거와 현재가 놀라울 정도로 이상적 믹스를 보여주며 청자에게 과격한 사운드의 카타르시스 그 이상의 흥미를 선사한다. 익스트림 사운드의 평균치를 간단하게 초월 해 버리는 이들만의 독창적 광기가 곁들여지며 흥미진진함의 끝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도 빠트릴 수 없기도 하다. 극단성에 올인한 1차원적 쾌감은 물론이며, 작곡 센스/연주력을 기반으로 한 좀 더 깊은 음악적 재미, 그 두가지의 완벽한 조화, 보통의 그라인드코어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쉴 새 없이 부여하는 이들만의 광기 / 그라인드코어와 일맥상통한 타 장르/스타일의 적절한 가미와 난입이라는 이들만의 과감한 개성표출까지… 매우 인상적이다.
Trumpeting Ecstasy 는 그라인드코어에 매우 충실하며, 그와 동시에 그라인드코어를 멋지게 배반하고 새로운 자신들의 룰을 세우고 그것을 200% 달성 해 내는데 성공하기까지 한 앨범이다. 일전의 앨범도 그랬다. 허나 본작은 전작보다 더욱 과격하며, 더욱 광기 넘치며, 더욱 뮤지션 쉽에 충실하며, 자신들만의 독특함을 생성하기 위해 그 어떤 앨범들 보다도 격렬한 하드워킹을 행하고 있으며, 그것을 듣는 청자들의 뇌리에 강렬히 쉴 새 없이 각인 시키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콜라보레이션을 통한 사이드격 음악의 호평이 있었지만, 그 호평 흐름을 뒤로 한 채 그라인드코어 밴드로의 아이덴티티에 충실한다.” 라는 애티투드가 빛난다는 점은 유난히도 인상적이다. 음악적으로나 애티투드적으로나 완벽하다. “또 하나의, 완벽히 독립 된 그라인드코어 절대 교과서의 탄생” 인 것이다. 기괴하고 낮설며 거칠며 완벽하다. 예전에도 그랬다. 하지만 과거의 임팩트함은 자연스레 뒤로 미뤄질 정도다. 그런 앨범이다.
- Mike Vill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