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ackest #09] Siege – Drop Dead (Relapse/Deep Six/Deranged, 1994/2004/2006)
LA, 워싱턴 DC, 보스턴, 텍사스, 뉴욕으로 대표되는 80 하드코어 펑크 메카들 중에서 유난히 독종 이미지를 구가하던 곳이 하나 있었다. 바로 보스턴이었다. 보스턴 하드코어는 스트레이트 엣지 무브먼트가 매우 강해다 못해, 지나치지 않나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과격했다. 보스턴 하드코어 크루들에게는 동네서 주먹 꽤나 쓴다는 녀석들의 멘탈리티를 지닌 깡패 무리와도 같은 이미지가 강했고, 그에 걸맞게 매우 공격적이고 스피디하고 헤비한, 한마디로 하드코어 펑크의 평균점 보다도 더욱 강력한 사운드적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한가지 놀라운 점은, 그 보스턴 씬에서 가장 강력한 밴드는 “보스턴 크루” 라고 정의되는 녀석들에 속해 있지 않은, 그 씬의 아웃사이더였다. 그리고 보스턴 크루 특유의 거들먹 거림을 매우 증오했다. 이 정도면, 빠른 음악을 좋아 한다면 누구를 이야기 하는지 알 것이다. 바로 Siege 다.
결론적으로 이야기 하면 망한 밴드다. Siege 는 단 한장의 정규작도 남기지 못했으며, 그 당시의 하드코어씬 내부에서조차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았으며, 활동 기간은 고작 1983년부터 1985년으로 매우 짦았다. 그러나 밴드는 현재의 관점으로 보면 전설적인 밴드가 되어 있는 상태다. 이유는 의아하고도 간단하다. 그들이 남긴 거의 유일무이한 느낌의 레코딩인 1984년 데모, 그리고 1985년에 발매 된 하드코어 펑크 컴필레이션 Cleanse The Bacteria 에 제공한 3곡, 모두 9곡이 그들을 전설로 만들기에 매우 충분했기 때문이다. 데모와 컴필레이션 참여곡 3곡은 1989년에 부트랙 7인치, 1993년에 독일 하드코어 레이블이자 부트랙 제조업자들이기도 한 Lost And Found Records 에서 CD 로, 1994년에 Relapse Records 를 통해서 오피셜로, Relapse Records 와의 판권 기간이 끝난 후 2004년과 2006년에 Deep Six Records 와 Deranged Records 를 통해서 12인치 LP 와 CD 로 여러번 재발매 된 바 있으며, 아직까지도 스테디 세일링을 보여주는 이정표 앨범인 이유가 있는 것이란 말이다.
이들이 구사하는 건 하드코어 펑크였다. 그러나 이들이 구사하는 하드코어 펑크는, 80년대 하드코어 펑크와는 차원이 다른, 돌연변이에 가까운 물건이었다. 그 당시에도 꽤나 짦고 빠르고 광폭한 에너지를 자랑했던 하드코어 펑크의 기준보다도 더욱 빠른, 아니… 극한의 스피드의 한계에 도전하는 펑크 편집증이라 해야만 할 정도의 빠르기를 보여 주었기에 그러하다.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와 “그 어떤 밴드와도 붙어서 속도와 과격함에 있어서 질 수 없다” 는 Siege 의 탄생 배경이자 존재의 이유였다고 한다. Iron Maiden 의 LP 를 빠른 RPM 돌려서 나오는 드럼 비트를 그대로 들으며 연습을 한다던지, 그 당시에 빠르기만 한 저질 밴드라는 평가의 Venom 을 적극 연구하던지에 대한 일화가 더해지면 이야기는 끝이다. 한마디로 Siege 의 광폭하다는 표현 보다는 부르탈 하다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펑크 사운드였다. 그리고 그것은 남다른 파괴력을 자랑하던 보스턴 하드코어 씬에서 조차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었고, 밴드는 보스턴 하드코어 특유의 터프가이 깡패에 대한 극단적인 반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자연스레 그 씬에 낄 수 없는 아웃사이더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 돌파구로써 야심차게 행한 뉴욕 투어는 따로 오기로 한 보컬리스트가 공연날에 오지 않자 계획은 그대로 개박살이 났고, 이는 밴드의 활동 중단으로 바로 이어졌다. 1991년에는 남은 멤버들이 새 보컬을 영입하여 활동을 재개하려 했지만, 새 보컬이 밴드에 영 맞지 않는다는 점만 발견 되었고 이는 완벽한 Siege 의 해산으로도 이어지며 허무한 커리어를 마감했다. 남겨진 것이라곤 데모 테입 하나와 컴필레이션에 제공되는 3곡 뿐이었다.
Siege 라는 밴드는 누가봐도 그렇게 80 하드코어 펑크 역사의 한 페이지는 커녕, 한 줄 조차 기록되지 못하게 사라지게 될 존재가 될 운명만이 남아 있었다. 허나 이들이 해산하고, 음악 활동을 완전히 접은 이후에 생긴 후폭풍은 너무나도 굉장했다. 그 당시 가장 빠르고 강력했던 음악인 크러스트 펑크, 쓰래쉬 메탈을 넘어 더욱 더 빠르고 공격적인 음악을 듣고 싶어하는, 구사하고 싶어하는 똘아이 녀석들의 수색망에 Siege 가 걸렸고, 이를 들은 녀석들은 하나 같이 “이것이 내가 원하던 것!” 을 외치며 그들을 최고의 롤 모델로 모시기 시작 한 것이다. 미칠듯히 빠른 밴드가 있다는 소문은 그 당시의 음원교환 방식인 “카세트 테입 레코딩 후 펜팔을 통한 우편교환” 을 통해 세계 여기저기로 퍼졌고, 그라인드코어와 데스메탈을 비롯 한 수많은 익스트림 메탈을 만들어 내게 되는 파이오니어들에게 좋은 참고서가 되어 버리고야 만다. 그렇게 10여년의 시간이 흘렀고, Siege 의 음원은 프로토 익스트림 사운드의 가장 중요한 한정이 되며 전설이 되고야 만다.
이런 저런 부트랙으로 나온, 1994년에 Relapse Records 에서 정식적으로 첫 발매된 데모 음원과 Cleanse The Bacteria 에서의 곡들을 모은 9곡 (Deep Six Records 재발판에서는 숨겨져 있던 곡들을 추가, 12곡으로 확대 되었다.) 을 모은 일종의 컴필레이션인 본작은 바로 그 전설의 모든것이라 할 수 있다. 미친듯이 달려대고 갈겨대고 소리 지르는 초고속/초분노/초과격 하드코어 펑크는 2013년인 지금 들어도 털이 쭈뼛 설 정도이며, 익스트림 메탈의 이정표적 앨범들 보다도 몇년 앞서서 이러한 부르탈함을 선보였다는 사실은 경악 할 만한 수준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펑크의 극단적 스피드화를 통해서 탄생되고 변형 된 수많은 장르들인 패스트코어, 쓰래쉬코어, 파워바이올런스 같은 부르탈한 하드코어 펑크는 “Siege 의 음원을 다소 뻔뻔하게 참고 했다” 라고 말 해야만 옳을 정도로 그러한 사운드의 모든것을 정의 해 내고 있기도 하다. Napalm Death 라는 걸출한 실력과 스타일의 파이오니어가 있지 않았다면, 그라인드코어의 시작도 Siege 가 될 뻔 했다 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스피드와 에너지의 과격함은 다르다는 점도 거론하고 싶다. “UK 에는 Napalm Death 로 부터 시작, US 는 Siege 로부터 시작” 이라고 단언을 해 낼 정도로 엄청난 청각 테러리즘적 쾌감, 그로 인해 탄생되는 어마어마한 독창성에 의한 개성의 임팩트는 지금까지도 엄청난 영향을 내리고 있다. 여기에 2000년대 들어와 케이오틱 하드코어와 그와 연관성을 지닌 서브 장르들의 강세를 이야기 할 때에도 Siege 는 꼭 거론된다. Converge 와 같은 밴드의 극단적인 파괴력은 “Siege 의 현대적 어레인지” 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니까 말이다. 한마디로 그거다. “극단적인 스피드와 파괴력을 지닌 음악의 시작점은 어디인가?” 를 논한다면, 바로 튀어나와먄 하는 “기본소양” 그 자체인 앨범인 것이다. 특히 과격한 펑크/하드코어를 논한다면 1순위로 말이다.
또한 이 앨범 Drop Dead 가 명반을 만드는데 있어서 독특한 선례를 남겼다는 점도 중요하다. 불법 복제 음반 유통으로 만들어진 전설이라는 매우 희귀한 선례를 남겼다는 점은 매우 놀라운 희귀함이다. 이 앨범은 훗날 다양한, 그리고 지하에 묻혀진 익스트림 마스터피스들을 현대 미디어 파워와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부활 시키는 이정표가 되기도 했지 않던가. 그런 현상을 만들어 낸 것은 “매우 임팩트한 음악적 파워” 를 제대로 만들어 두었기 때문이었다. 뭔가 제대로 된 음악을 만들기만 한다면, 그 당시에 평가받지 못하더라도, 몇몇 매니아들에게 발견되고 입소문이 난다면, 어느 순간엔 반드시 그 노력을 인정받게 된다라는 점을 남긴것은 과격한 음악씬에서만이 아닌, 전체 음악씬에 있어 경종을 울리는 하나의 멋진 선례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와 더불어 이러한 긍정적 기현상을 만든 집착적인 음악 오타쿠들에 대한 공도 빠질 수 없고 말이다.
한마디로 그러하다. 이 앨범은 결과론적이지만, 많은 극단적인 새로움을 만들어 낸 앨범인 것이다. 과격한 음악을 즐기는 데 있어서의 극단적 이어가즘, 레코딩 컬렉팅과 인디 레이블 비즈니스/유통에 대한 디깅적 재미의 묘미 둘 다 말이다. 진정한 의미의 토탈 익스트림 패키지 페어리 테일로 말하고 싶다.
- Mike Villain
Drop De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