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ls Of Jericho – No One Can Save You From Yourself (Napalm, 2016)
90년대 말에 등장한 밴드 미국 디트로이트 출신의 하드코어 밴드 Walls Of Jericho 의 충격은 상당했다. 여성 보컬리스트 Candace Kucsulain 가 밴드 전면에 서서 남정네 못지 않은 격렬한 보이스와 스테이지 액션을 뿜어내던 밴드였기에 그러했다. “여성을 앞에 세운 하드코어 밴드” 로만 설명이 끝나지 않는, 음악적인 부분의 강렬함도 갖춘 밴드라는 점 또한 인상적이었다. “Earth Crisis 스타일” 로 모든 설명이 끝나는 90년대 메탈코어 텍스쳐를 뼈대로 가지고 있으며 Converge, Every Time I Die, Cave In 과 같은 케이오틱한 성향이 진한 새로운 메탈코어 스타일 또한 쏠쏠하게 구사, 그로 인해 탄생되는 “90년대 말부터 극명하게 갈리기 시작한 90-2000년대 하드코어 흐름의 간극을 단숨에 좁혀 나가는 실력파” 로의 존재감의 강렬한 어필까지, 이들만의 음악적 강렬함은 매우 실하고 다양했다.
하지만 Walls Of Jericho 는 90-2000년대 하드코어 및 메탈코어, NWOAH 라고 불리우는 새로운 미국 메탈/하드코어 열풍을 논하는데 있어서 A급 밴드로의 존재감 만큼은 결국 달성하지 못한채 시대의 뒤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왕성한 활동을 통해 발표한 4장의 앨범은 평타 이상은 되었지만, 90년대 메탈릭 하드코어 스타일과 2000년대 메탈릭 하드코어 스타일을 설득력있게 융합 시켜 낸 앨범은 솔직히 말해 단 한장도 없었다. 다양한 메탈릭 하드코어 스타일에 대한 장황한 나열만 있을 뿐이었고, 이는 “의욕과 욕심이 앞선 밴드” 라는 냉정한 평가를 내릴 수 밖에 없기도 했다. 이러한 약점은 여성 보컬리스트 Candace Kucsulain 의 스테이지에서의 뛰어난 퍼포먼스와 선동력이 나날히 발전 하여도 도저히 감당 할 수 없는 수준이기도 했다. 그러한 음악적 좌충우돌속에 계속 바뀌는 멤버, 나날히 나락으로 떨어지는 소속 레이블 Truskill 의 사정, 그로 인한 레이블측의 프로모션 서포트 미흡이라는 악재까지 겹쳤다. 결국 밴드는 2000년대 말부터 활동을 서서히 멈추게 되었고, 이는 “해산” 을 의미하는 수준까지 나아갔다. 밴드는 멤버 체인지에 대한 문제, 밴드 활동 반응의 미비함으로 2번 정도 해산을 가진 바 있었기에 더욱 더 해산에 대한 무게감은 커져갔다.
하지만 밴드는 결국 풀타임 밴드로 돌아왔다. 2000년대 말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간간히 투어 활동을 하며 밴드 생존 정도를 알릴 뿐이었지만, 2014년에 신곡을 공개하고 본격적인 새 앨범 제작에 들어감을 알리는 한편으로, (조금 많이 안 어울리는 레이블이긴 했지만) 새 레이블로 Napalm Records 과의 계약을 성사하는 등 빠르고 확실하게 본격적 활동 재기를 준비 해 왔다. 그리고 2016년에 3월말, 통산 5번째 앨범이자 8년만의 신작인 No One Can Save You From Yourself 를 발표하며 진짜배기 컴백에 시동을 걸었다.
No One Can Save You From Yourself 은 지난 4장의 앨범과 사뭇 다른 앨범이다. 90년대 메탈릭 하드코어 스타일, 케이오틱 하드코어 스타일 두가지를 동시에 섭렵 하려는 야심에 비해 자신들의 실력이 미흡하다는 것을 깨닮게 되었던 것인가? 여하간 밴드는 신보를 통해 정통 메탈릭 하드코어 스타일에만 올인하고 있다. 그로 인한 결과물은 매우 놀랍다. Walls Of Jericho 의 진면목이 드디어 발휘 된다고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예전에 없던 모습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기에 그러하다.
하드코어 헤비 그루브를 중심으로 한 모쉬함의 생성, 그러한 헤비 그루브가 좀 과하게 사용된다 싶을때 적절하게 터트려주는 질주 감각, 그 두가지 요소의 적절한 타이밍에서의 교대 & 혼합 비율의 다양화, 딱 그 정도만 한다. 9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지겨움을 느낄 정도로 이미 많이 경험한 메탈릭 하드코어 클리셰만 사용하고 있으나, 한곡 한곡마다의 기승전결이 완벽하고 흡인력이 넘치며, 그러한 곡들이 하나하나 쌓여가며 전체적인 앨범 흐름마저도 뛰어난 큰 그림을 그럴싸하게 만들어 내고 있다. 이는 과거에는 찾아 볼 수 없는 탄탄한 음악적 모습이다. 통쾌만점 하드코어 쾌감을 전해주기는 했으나, 매 곡마다 정돈되지 않은 장르적/구성적 두서없는 곡들로 앨범을 이끌어 나가며 음악적 총체적 난국을 선사했던 과거를 기억속에서 과감히 지워도 될 정도로 임팩트 하기도 하다.
새 앨범은 Walls Of Jericho 의 90년대 하드코어 + 2000년대 하드코어라는 이들만의 강렬한 개성을 과감히 버린 작품이다. 그 빈자리는 좀 과하게 메탈릭 하드코어 클리셰들로만 채워져 있다. 이들만의 강렬한 음악적 개성이 없어졌지만 그 댓가로 모든 곡들의 훅이 늘었으며, 그러한 곡들이 쌓여가며 앨범 전체적으로 쉽고 빠르게 즐길 수 있는 흥미진진함이 대거 생성되며 앨범 퀄리티의 대거 상승을 가져왔다. 강렬한 개성 + 부족한 뮤지션쉽/엔터테인먼트 요소의 과거 vs 부족한 개성 + 뮤지션쉽/엔터테인먼트의 극대화의 승자는 당연히 후자다. 이런 변화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다” 라는 말을 해 줄 수 밖에 없다. 신작에서 보여주는 뮤지션쉽 및 엔터테인먼트 감각의 설득력이 과거 작품들보다 훨씬 강렬하며, “Walls Of Jericho 앨범 커리어 중에서 가장 좋은 앨범” 이라는 현실을 절대 외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독특한 스타일이 있어도 좋은 앨범으로 귀결 시키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여기에 거의 모든 네임드메탈릭 하드코어 밴드들이 당연 하다는듯이 선보이는 “클리셰의 반복 속에서도 언제나 자신들만의 개성 창출은 늘 평균치 이상은 해냄” 또한 실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장점도 더해지며 더욱 더 새 앨범의 변화상은 긍정적인 측면으로 굳어지고 있다. 어디선가 들어 본 그 말, “내려 놀 것은 내려 놓는것도 좋다” 의 좋은 예를 보여주는 앨범이다. 딱 잘 할 수 있는것에 올인한 신작은 컴백작 보다는 이들 최고의 작품이라는 평가가 더 어울린다. 이는 Walls Of Jericho 의 새로운 음악 여정이 시작 되었음을 알리는 것이기도 하다. 젊은 밴드, 베테랑 밴드 어쩌고 보다 포텐이 터졌냐 안 터졌냐가 중요하지 않던가? 그렇다. 이 앨범은 늦었긴 하지만 제대로 포텐이 터진 앨범이다. 앞으로의 행보 까지도 기대 될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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