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rche – Restarter (Relapse, 2015)
2002년, No Idea Records 에서 매우 조용하게 발매 된 한장의 앨범은 꽤나 그 한해의 헤비음악씬을 소란스럽게 만들었다. Floor 라는 밴드의 셀프타이틀의 앨범이었다. Black Sabbath 로 부터 시작 된 헤비록 & 둠/슬럿지 특유의 헤비한 앰프 울림의 계보를 잇는 사운드, 그와 동시에 그 헤비-사이키 블루스적인 전통을 우리랑은 상관없다는 투로 단숨에 끊어 버리는 미니멀-모던한 개성의 완벽 구축, Mogwai, Slint, Melvins, Shellac, The Jesus Lizard, Helmet 와 같은 밴드들과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다양한 음악적 연결고리를 통해 더욱 더 강한 개성표출을 보여주며 서서히 헤비 음악계에 충격을 주었고, 자연스레 꽤나 큰 주목을 받았었다. 리스너들과 평론가들은 멋진 오리지널리티의 밴드 Floor 에게 접근 했지만, 그들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 밴드였다. 남아 있던 것이라곤 두가지였다. 첫번째는 Floor 라는 밴드의 저주받은 역사였다. 2002년에 발표한 앨범은 엄밀히 말해서 데뷔작은 아니었다는 사실, 94년과 95년에 두장의 앨범을 녹음 했지만 그냥 발표하지 않는것이 낫다고 판단하여 묻어 버리기로 결정 했다는 사실 (하지만 셀프타이틀의 주목으로 이 두장이 재발매, 큰 호평을 얻으며 한을 풀기는 했다), 심지어 2002년의 셀프타이틀 앨범 발표 때에도 밴드는 이미 박살난 상태였다는 점, 여러번 재기를 시도 했지만 번번히 “주목 해 주는 사람이 제로에 한없이 가까웠음” 에 봉착하며 해산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맞이했던 것들 말이다. 그리고 남은 하나는 바로 Floor 의 기타리스트인 Steve Brooks 의 새 밴드 Torche 였다.
2002년에 발표 된 Floor 의 셀프 타이틀 앨범이 꽤나 주목을 받고, 2004년에 발표 된 차기작이자 1994년에 녹음 했다가 묻어 버린 Dove 가 재발매 되어 그 열기를 이어 갈 때, Torche 는 Floor 의 후신 밴드적 이미지를 가지고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다. Floor 의 음악적 호평으로 시작부터 적잖은 주목을 받으며 다소 부담스러운 스타트를 끊었긴 했지만, Torche 의 음악적 행보는 꽤나 쾌청했다. Floor 시절에 제대로 만들어 둔 둠/슬럿지 + 90 얼트/노이즈락 + 90 포스트 하드코어 + 90 포스트락의 토탈 패키지 믹스쳐 사운드는 한층 업그레이드 되어 멋지게 표현 되었고, 호평은 따 논 당상이었다. Floor 시절과는 다른 팬 베이스 구축, 언론의 호평도 터져 나오며 인기 밴드로 자리매김 했다는 점도 고무적 이었다. 밴드의 두번째 풀렝스 앨범인 Meanderthal (2008) 은 Black Sabbath, Saint Vitus, Sleep, Fugazi, Melvins, Shellac, Mogwai, The Jesus Lizard, Unsane, Helmet 의 전통을 죄다 잇는 괴물스러움을 자랑하며 “2000년대 마스터피스” 로 평가 받았고, 뒤이어 나온 EP Songs For Singles (2010), 세번째 정규작 Harmonicraft (2012) 에서는 헤비 앰프출력 음악사조 특유의 미니멀함과는 거리가 매우 먼 기타팝/파워팝적인 캐치함을 제대로 때려 박으며 예상치 못한 변화를 기록, 적잖은 충격을 주기도 했다. 둠/슬럿지 – 얼트/노이즈락 – 포스트락 – 포스트 하드코어의 사운드적 특징을 집어 삼키고 캐치한 팝록으로 자기 식대로 소화/표출 해 내는 Torche 는 이제 2000-2010년대를 대표하는 혁신적 사운드의 괴물 밴드로 완벽히 진화 한 상태다.
Relapse Records 로 적을 옳겨 발표한 Restarter 는 “2015년 초반기 최고의 기대신작”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앨범이며, 그 기대감만큼의 결과물을 멋지게 내 놓는 쾌작이다. “파워팝 밴드가 이펙터와 앰프를 산 처럼 쌓아놓고 둠/슬럿지를 구사 하는듯한 사운드” 의 Harmonicraft 와 어느 정도 이어지면서도, Harmonicraft 의 발랄함을 단숨에 단절 하는듯한 미니멀한 헤비 덩어리를 휙휙 집어 던지는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Restarter 를 간단히 표현하면 그렇다. 헤비함을 표현 하는데 있어서 곡 전개에서 드러나는 스케일, 프로덕션 톤에서 나오는 소리 크기, 곡 전개에서 나타나는 미니멀함은 지금까지의 Torche 의 음악적 커리어에서 가장 컬트한 형태다. Floor 의 전통을 이어나가며 초기 Torche 의 팀 컬러가 된 Meanderthal 에서의 모습보다도 좀 더 로우한 형태이며, 둠/슬럿지 – 포스트락 – 노이즈락 등 Torche 의 이런저런 사운드적 요소들 역시 그 어떤 때보다 미니멀하며 헤비하다. Floor 의 음악적 커리어와 Torche 의 음악적 커리어의 중간에 존재하는 음악적/사운드적 특징이 강하다고 할 수 있으며, 그 두 밴드의 특징을 극대화 하면서도 그 두 밴드의 과거 사운드 특징을 본격적으로 부정하며 더욱 새로워지려는 코드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Floor 와 Torche 의 앨범 장수가 하나 둘 쌓이며 늘 발견되던 것이다. 매우 자연스럽고 긍정적인 측면의 커리어 이어가기라 말 할 수 있는 요소 되겠다.
방향성은 매우 좋다. 결과도 매우 괜찮은 편이다. 그와 동시에 아쉬움도 나름 진한 한장이기도 하다. 밴드 음악 커리어에서 가장 묵직하고 진지하게 풀어 나가며 신선한 충격을 잘 전해 준것은 인정 할 수 밖에 없지만, Floor 시절 했던 것들을 좀 과하게 응용 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애써 지우기 힘들다. 작년에 발표 된 Floor 의 재결성 신작 Oblation (2014) 의 너무 과도한 연장선이 아닌가 싶게 만드는 점은 분명 이 앨범의 “문제점” 인 것이다. 그러한 의문점은 앨범 흐름이 루즈 해 질 때마다 등장하는 파워팝적인 코드와 만나 더욱 논란을 가중 시킨다. 너무 많이 음악적 과거사를 복제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끔 만들고 있으며, 더 나아가 “과거 스타일을 잇되, 혁신적으로 부정하는” Torche 의 지금까지의 음악적 행보마저 데미지를 입히기도 한다.
하지만 Restarter 는 올해 가장 빛나는 한장으로 평가 해 주어야만 한다고 본다. 그러한 단점/약점에도 불구하고, Restarter 는 Torche 의 과거 앨범들에서 보여진 이들만의 재미를 합격점 이상으로 뽑아 내는데 성공한 것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들의 음악 여정의 약점을 남기면서 자기 자신의 오리지널리티에 성공하는 모습은 좀 모순적이지만, “확실히 유니크하고, 컬트하지만 즐기기 쉬운” 헤비 뮤직을 제대로 들려주지 않던가? 의미가 있는 음악으로썬 조금 부족하나, 듣고 즐기는 음악으로 여전히 뛰어나다는 이야기. 그 듣고 즐기는 엔터테인먼트함이 긍정적 평가를 내릴 수 밖에 없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더라. 이 앨범은 여전히 건재한 Torche 의 음악 여정을 대표하는 한장으로 평가함이 옳을듯 싶다. 하지만 앞으로 이들의 행보는 걱정이 든다. 음악 커리어에 있어 정당하지만 무시 할 수 없는 문제점인 “자기복제” 가 시작 되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것도 “좀 과하네” 라는 인상을 가지고 말이다. 그와 동시에 걱정이 안되기도 한다. Restarter 에서 보여준 위기속에서도 좋은 앨범으로의 결과를 잘 이끌어 나가는 모습 때문에 말이다.
- Mike Villain
Annihilation Affa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