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eator – Phantom Antichrist (Nuclear Blast, 2012)

Kreator – Phantom Antichrist (Nuclear Blast, 2012)

Kreator 만큼 Thrash Metal 역사상 성실하게 많은 앨범을 낸 밴드도 무척 드물다. 80년대 중반부터 지금 이 리뷰가 올라가는 시점, 2012년까지도 그들은 쉼 없이 앨범을 내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유럽의 밴드들 치고는 좀 다르다. 보통 메틀 밴드들의 시기를 나눌 때 90년대 중반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 메틀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인 Alternative-era 를 각자의 방식대로 어떻게 살아갔는가에 대해 이야기 하곤 한다. (이 때 본격적인 활동을 하고 되려 주류들을 추종자로 만든 Pantera 는 논외로 하자) 주로 미국의 밴드들은 그루브를 타고 리프를 뚝뚝 끊어 연주하면서도 살아남아 되돌아왔지만 많은 유럽권의 밴드들은 그렇지 못했다. Unleashed 나 Coroner, Onslaught 같은 밴드들은 이 시기를 넘기지 못하고 굽히지도 않은 채 그대로 무너져 버렸고, 혹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Kreator 는 달랐다. 모두에게서 외면 받은 앨범을 냈다가도 다른 앨범을 낼 때와 비슷한 공백기간을 거쳐 새로운 라인업으로, 새로운 음악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 앨범, Violent Revolution 을 빼고 Kreator 를 이야기 하는 것은 과거의 Pleasure To Kill 이나 Extreme Aggression 을 빼고 이야기 한다는 것과 같다.

Rage 가 Welcome To Other Side 앨범을 내고 Unity, Soundchaser 로 그들의 새 라인업을 자리매김한 것과 마찬가지로, Kreator는 Violent Revolution 을 낸 2001년 이후로 멤버의 변동이 없다. 그만큼 새 앨범이 나올 때마다 이 앨범은 기준점이 되었다. EnemyOof God (2005)가 나왔을 때는 Violent Revolution 2 라는 평이 있었고, Hordes Of Chaos (2009) 는 Violent Revolution 의 또 다른 후속작 이었다. 과연, 새 앨범 Phantom Antichrist 는 어떠한가?

아무리 생각이 바뀌고 작법, 구성, 멜로디가 바뀌어도 그 곡을 쓰는 사람이 Mille Petrozza 이고 그를 뒷받침 해주는 사람이자 리듬의 중심축이 ‘Ventor’ 인 이상, Kreator 의 곡은 생각하는 것만큼 Endorama (1999) 에서 Violent Revolution 으로 넘어갈 때 확 바뀐 것은 아니었다. 리프와 구성이 치밀해지기 시작한 것은 Terrible Certainty (1987) 이었고, 스피드와 완급 조절을 모두 갖춘 곡은 이미 Extreme Aggression (1989) 에 있었다. (Love Us Or Hate Us) Mille Petrozza 의 보컬과 기타실력, 송라이팅 모두 앨범을 거치며 일취월장 했지만 자주 쓰는 리프와 멜로디는 비교적 고정된 편이고, Ventor 의 경우는 아직도 쓰는 비트가 블래스트 비트 (업계 용어로 편의상 후빠후빠 라고 칭한다) 아니면 코러스에서 자주 나오는 느릿느릿한 투베이스 뿐이다. 첫 앨범부터의 유산이 Violent Revolution 과 그 이후 앨범을 만든 것이다.

인지하기 어려웠겠지만 앨범을 꾸준히 내온 밴드답게, 그리고 떨어질 곳이 없는 곳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온 만큼 점진적인 변화는 계속 시도해왔다. 그 변화를 이어가듯, 새 앨범 Phantom Antichrist 는 2001년 이후 느릿느릿하게 Kreator 가 시도해 온 변화가 이제서야 표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산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적으로 리스너가 지난 앨범들과 비슷하다 싶으면서도 고개를 갸우뚱 할 부분은 바로 멜로디이다. 어떤 앨범보다도 멜로디가 미칠 듯이 강조되어 있으며 기타 솔로와 코러스 부분의 멜로디는 ‘이질적이다’ 혹은 ‘Gothenberg 産 Melodic Death Metal 같다’라는 말이 나오기 충분하다. 프로듀서의 교체 (Andy Sneap -> Moses Schneider (Hordes Of Chaos) -> Jens Bogren) 때문에 생긴 변화라고도 할 수 있으나 (Opeth 의 근작, Soilwork 의 최근작, Devin Townsend, InMe 등을 프로듀싱한 바 있다.) 전작을 생각해 볼 때 밴드의 입김이 최우선적이라 볼 수 있다. 분명 뒤로 갈수록 이런 생각은 더 자주 들게 될 것이며, From Flood Into Fire 에서 들을 수 있는 Mille 의 다소 누그러진 보컬과 울려 퍼지는 합창을 들으면 묘한 생각이 들 것이다. 리프와 솔로에서는 타 Thrash Metal 밴드 혹은 Melodic Death Metal 밴드들의 요소도 적극 차용하였다. Until Our Paths Cross Again 의 첫 멜로디나 Victory Will Come 코러스 부분의 힘을 뺀 보컬을 들으면 새로운 느낌과 동시에 이질감 혹은 ‘좀 많이 다르다’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이에 따라, 리스너가 느낄 수도 있을 법한 이질감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Enemy Of God 과 가장 구성이 비슷하고 비트도 공격적인 Phantom Antichrist 를 앞 트랙에 배치하고 첫 싱글로 내놓은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저질스러운 낚시는 아니다. Phantom Antichrist 를 들어보아도 Horde Of Chaos 를 들었을 때처럼 멜로디가 풍부하며, 새 앨범의 특성은 모두 갖고 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점은 구성력이다. 가장 긴 곡이 6분으로 전작보다는 길고 Enemy Of God 과 비슷하게 담았는데, 단일 구성으로 스트레이트 하게 가는 곡이 없이 꼭 한번씩은 변화를 겪는다. 다른 리프, 다른 리듬으로 곡을 이어가면서 첫 부분만 듣고는 곡을 예측하기 힘들고 그에 따라 집어넣을 멜로디가 더욱 풍성해진 것은 큰 장점이다. 곡도 많고 구성에 비해 지나치게 곡이 길거나 완성도가 들쭉날쭉 이었던 Violent Revolution 에 비해 Enemy Of God 은 몸집을 줄이고 더 이상 뺄 군살이 없는 곡들만 골라 담았다. Hordes Of Chaos 가 멜로디를 중시하고 단순하고 일직선적이되 기억에 빠르게 남을 수 있는 곡들을 전진배치 했지만 뒷심이 부족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즉 Phantom Antichrist 는 Enemy Of God 에 멜로디가 추가된 버전이라 할 수도 있고, 거꾸로 뒤집으면 Hordes Of Chaos 식의 멜로디를 강화하고 거기에 Enemy Of God 때의 구성을 되살렸다 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나침은 독이 되기도 한다. 짧은 곡에 꽤 많은 구성과 거부감 없는 멜로디를 녹여 넣은 것은 좋지만 한 방이 있는 곡을 찾기 힘들다. Phantom Antichrist 가 전작들과 비슷해서 바로 적응할 수 있지만 그 다음으로 꼽을만한 Death To The World 는 중반부의 구성이 기억하기 힘들고 The Few, The Proud, The Broken 은 아주 좋은 곡이지만 익숙해지기에는 시간이 제법 걸린다. 다시 말하면, 정말 좋은 곡들이 가득한 앨범인데 한 번 듣고는 기억에 남는 곡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 문제다. 멜로디가 이제껏 나온 앨범 중 가장 풍부하고 구성도 잘 짜여 있으나 킬러 타이틀은 다소 부족한 앨범. Kreator 의 새 앨범 Phantom Antichrist 가 바로 그런 앨범이다.

다행히도, Phantom Antichrist 와 Death To The World 등 초반부의 곡들에서 Enemy Of God 의 향수를 느낄 수 있어 2001년 이후의 앨범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앨범도 큰 무리 없이 접할 수 있다. 다만 그 이후 곱씹어서 정말 기억에 오래 가게 하던가, 한 번 듣고 귀에 잘 안 걸린다고 버리던가, 혹은 한 번 듣고 모두 깨우친다던가 (!) 하는 것은 모두 듣는 사람의 몫이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Melodic Death Metal 못지 않게 멜로딕한 Kreator’ 가 변화의 ‘결과’가 아닌 과도기 혹은 시작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후로도, 우리는 지난번보다도 멜로딕하되 파워는 잃지 않은 Kreator 를 계속 만나게 될 것이다. ‘모로 가도 서울로 가면 된다’ 라던가 ‘어떻게든 경제만 잘 살리면 그만이라던가’ 라는 말이 떠오르지만 다른 점이 있다. Kreator 는 모로 가지 않았다.

- Matt Villain


Phantom Antichr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