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gh On Fire – De Vermis Mysteriis (eOne, 2012)

High On Fire – De Vermis Mysteriis (eOne, 2012)

90년대 들어와서 등장한 슬럿지/스토너 신예들은 장르 역사상 최고의 음악적 커리어를 기록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뛰어난 음악적 실력을 지니고 있었고, Sleep 이라는 밴드는 그러한 밴드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났던 밴드라고 할 수 있던 존재였다. 6-70년대 하드락의 헤비 퍼즈톤의 부활, 슬럿지-스토너 사운드의 필수(?) 라 할 수 있는 마리화나적 기타 플레이, 블루스와 메탈의 오묘한 경계성 혹은 하이브리드의 독창성과 같은 기본적 요소에서 최고 레벨이었고, 프록-사이키델릭 시절의 아트락 성향의 장거리 운행의 재능/센스라는 그들만의 무기까지 가지고 있었기에 최고라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밴드의 남다른 재능은 메이저 레이블인 London Records 과의 딜을 성사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밴드의 음악적 고집과 레이블의 상업적 본능의 충돌로 인한 레이블측의 2번의 앨범발매 거부의사가 행해졌고, 낙담한 밴드는 해산을 결정하며 비운의 명 밴드로 역사의 저편에 남게 된다. 이 당시 (1995년임) 행한 레코딩이 오피셜 부트랙 Jerusalem (1999) 과 정식 풀렝스 Dopesmoker (2003) 로 발표 되었고, 메탈 클래식으로써 지금도 쉴 새 없이 찬양받고 있다는 에필로그를 첨부하면 비극의 강도는 더욱 강해진다.

하지만 Sleep 의 비극은 또 다른 전설을 낳게된다. Sleep 의 기타리스트 Matt Pike 는 자신이 직접 리드하는 새 밴드 High On Fire 를 결성하며 일련의 앨범을 발표, 슬럿지/스토너의 새 장을 열은 Sleep 과는 또 다른 새로운 장르 개척을 해 나가는데 성공을 거두면서 (상업적으로도 나름 성공했다) 이 시대의 메탈 아이콘으로써의 한 자리를 잡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15년의 커리어와 7장의 풀렝스라는 비교적 오버페이스의 앨범 발표 횟수에 비해 음악적 퀄리티도 높은 편이라는 부분도 인상 깊은 부분이기도 하다. 2012년 발표 된 신작 De Vermis Mysteriis 역시 그러한 좋은 페이스를 이어가는 앨범이다.

De Vermis Mysteriis 는 잦은 앨범 발표로 인한 음악성 저하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계속 합격점 이상의 음악적 퀄리티의 보장과 예전 앨범과는 확실히 다른 인상을 심어주는데 성공한다는 이들의 놀라운 페이스에 또 한번 부합하는 앨범이기도 하다. Sleep 에서의 헤비-퍼즈-약물-거대한 덩치의 아트락/프록적 구성을 짧은 러닝타임에 압축하면서 박진감을 더하며 표현하고 (= Surrounded By Thieves (2002)), 스피드의 레벨을 하드락적인 박진감에서 메탈적인 터프함으로 변화 시키고 (= Blessed Black Wings (2005)), 그렇게 심플하고 터프하게 변화 된 슬럿지/스토너 메탈을 뼈대로 다시 프록적인 거대한 덩치를 넣으려고 시도하고 나름 괜찮은 결론도 내는데 성공한 (= Death Is This Communion (2007) 와 Snakes For The Divine (2010)) 까지… 그러한 긍정적 변화의 페이스가 이번 앨범에서도 보여진다 이 말이다.

De Vermis Mysteriis 에서의 새로운 음악적 변화상은 하드코어 펑크적인 스트레이트함이다. 물론 매 앨범마다 스타일을 바뀌어도 High On Fire 만의 “박진감 있는 슬럿지” 의 뿌리는 지키듯이, 새 앨범 역시 큰 음악적 중심축은 변화가 없다. 하지만 새 앨범의 박진감은 마리화나 연기를 머금은 도프한 느낌의 끈적함을 스피디하게 응용 시킨 모습이 아닌, 하드코어 펑크를 뿌리로 하여 슬럿지/스토너를 다양한 아이디어로 재해석한 느낌을 전해준다. 프로듀서가 Converge 의 기타리스트이자 다양한 펑크/하드코어 프로듀스를 해 온 Kurt Ballou 라는 점과 그가 최근 들어서 슬럿지/스토너 하드락/메탈 계열의 사운드와 하드코어 펑크의 접목을 꾀하는 밴드들과 작업을 자주 가졌다는 점을 빠르게 캐치하면 새 앨범이 어떤 스타일인지 빠르게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드코어 펑크의 스트레이트함을 과감히 추구하며 전작과 다른 인상을 단박에 안겨주는 가운데, High On Fire 만의 슬럿지/스토너 스타일 역시 크게 흔들리지 않는 가운데, 전작 앨범들과의 접점 및 밴드만의 스타일의 중심축 모두를 이어 나가는것이 이 앨범의 포인트이자 장점이다. 물론 꽤나 빠른 페이스로 앨범을 발매해도 퀄리티는 예상 이상으로 짜 내는것도 여전한 매력으로 다가오며, 하드코어 펑크적 요소의 강화로 인한 새로운 스타일 확보는 터닝 포인트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신선하다. 이러한 신선한 변화는 Doomriders, Kvelertak, Black Tusk 와 같은 하이브리드형의 새로운 밴드들과의 접점을 마련하기도 하며, 그로 인한 재평가는 물론 요즘들어 남다른 열기의 하드코어 펑크 + 슬럿지/스토너 하이브리드 계열의 분위기와 변화를 통한 시선 확보는 따 논 당상이라는 점을 생각 해 본다면 이러한 변화는 매우 긍정적으로 결론 내일 수 있을 것이다.

꾸준한 변화, 변화상에 걸맞는 음악적 퀄리티 확보, 슬슬 한계가 들어난 음악적 스타일의 회피 성공, 그로 인한 새로운 세력으로부터의 주목도 상승 등 많은것에서 이득을 낸 앨범이다. High On Fire 의 전설화를 좀 더 탄탄히 다지는 가운데, 밴드 음악 여정의 2막 개시가 열리는데 충분한 역활을 해 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은, “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앨범” 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앨범임에 틀림이 없을 듯. 지금까지도 전설이었지만, 새로운 내용의 메탈 전설을 써 나갈 것이라고 본다. 차후 앨범 역시 장난이 아닐 것으로 예상되며, 훗날 이 앨범이 High On Fire 의 또 다른 1집으로써의 위용으로 대단한 재평가를 받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도 않다는 점도 추가로 이야기 하고 싶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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