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eep – Dopesmoker (Southern Lord, 2012)
Black Sabbath 가 블루스를 뿌리로 하여 헤비하게 만든 그들만의 오리지널리티는 훗날 수 많은 메탈 및 비-메탈 종자들을 양산했다. 그런 종자들 중에서 그러한 헤비 사운드에 별 다른 첨가물을 넣지 않고서 더욱 더 헤비하게, 더욱 더 암울하게, 더욱 더 끈적하게, 더욱 더 거대하게, 더욱 더 약물적인 사운드로 컬트함을 추구하는 무리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들은 둠, 스토너, 슬럿지라는 메탈 세부 장르들로 정의 되기에 이르렀다. 80년대에 그러한 밴드들이 하나 둘 씩 나타났고, 90-2000년대를 거치면서 블루스, 하드락, 얼터너티브, 펑크/하드코어, 쓰래쉬, 프로그레시브 등 온갖 장르와 만나면서 더더욱 혁신적인 헤비 돌연변이들이 탄생, 이제는 하나의 거대한 왕국을 이루었다. 자, 그렇다면 30여년의 둠/스토너/슬럿지 역사에 있어서 최고의 앨범은 무엇일까? 정답을 내리기 전에 잠깐만 머리를 굴려보면, 이러한 질문은 정말 멍청하고 어리석은 질문이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이쪽 방면처럼 엄청난 서브 장르적인 폭, 지금 이 시간에도 쉴 새 없이 변화하는 파격성, 영악한 대중적 변화/무모할 정도의 컬트적으로의 변화까지 극을 향해가는 장르가 바로 둠/스토너/슬럿지 사운드의 정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건을 조금 더 달아서 질문을 “30여년의 둠/스토너/슬럿지 역사에 있어서 가장 다이하드 하고, 가장 컬트적인 방향의 최고의 앨범인 무엇인가?” 라고 바꾸면 어떠할까? 정답이 나오는데 1초도 걸리지 않는다. 더불어서 단 하나의 답만이 존재한다. 답은 바로 Sleep 의 Dopesmoker 앨범이다.
Sleep 은 조용하게, 하지만 매우 격정적으로 변화를 겪던 둠/스토너/슬럿지의 진정한 황금기 중의 한 년도라 할 수 있는 1990년에 커리어를 시작, 헤비함/느림/퍼즈함/약물적 느낌의 사운드를 더더욱 독하게, 그리고 더더욱 거대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하던 밴드였다. 이들은 익스트림 메탈 전문 레이블 Earache 를 통해 발표한 2번째 풀렝스 앨범인 Sleep’s Holy Mountain (1992) 을 통해 Black Sabbath 의 극단화를 보여주는 앨범인 동시에 Black Sabbath 의 유지를 뛰어 넘는, 새로운 레벨로 진화 하려던 범상찮음을 보여주었으며, 무엇보다 그당시 둠/스토너/슬럿지 밴드들 중 가장 뛰어난 음악적 평가와 주목을 받았다. 이들은 동시대에 다른 둠/스토너/슬럿지 밴드과 비교해도 확실히 뭔가 더 보여주던 앞서 나가는 밴드였지만, 밴드는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Sleep’s Holy Mountain 의 영광을 뒤로 한 채 밴드는 매우 파격적이다 못해, 극단적인 도전을 행하게 된다. 바로 Dopesmoker 앨범의 녹음이었다.
Dopesmoker 는 1시간 3분 30여초의 동명 타이틀 단 한곡으로 이루어진 앨범이다. 1시간 3분이라는 곡 하나로 앨범 전체만이 경악적으로 느껴지는가? 지레 겁부터 먹지 말아라. 음악적 내용물은 수만배 더 경악적이니까 말이다. 이 1시간 3여분의 구성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떠올리기만 해도 현기증과 구토증세가 날 정도로 극도의 단촐적인 구성을 보여준다. 헤비하고 퍼즈하며 낮은 톤의 헤비 리프 1-2개와 단촐한 드럼 패턴의 무한 반복이 이 앨범 구성의 대부분이다. 재미를 즐길 수 있는 부분이라곤 25분여경과 50여분경에 터지는 기타 솔로를 빙자한 애드립, 그리고 보컬이라고 부르기조차 애매모호한 추임새 3-4번이 전부이다. 하지만 이러한 고행적 사운드테러 뒤에는 정말 어마어마한 위대함이 숨겨져 있다. 헤비함/퍼즈함/지저분함의 삼위 일체가 된 기타톤은 둠/스토너/슬럿지의 모든것을 정의 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지저분함-깔끔함-적절한 하울링의 균형에 있어서 기가 막힌 톤을 자랑하며, 그런 톤을 머금고 계속해서 반복되는 리프는 지겨워서 돌아 버릴 레벨임과 동시에 주술적인 의식을 행할 때 사용하는 음악이라던지, 각종 종교의 수행을 위한 음악에서나 느낄 수 있는, 혹은 그와 일맥상통통하는 거대한 스케일의 위엄을 느낄 수 있는 카리스마가 꽉 들어 차 있다. 그것이 바로 Dopesmoker 의 핵심이다. 느릿하고도 반복적인 리프의 무한반복은 이성적인 음악적 판단을 할 수가 없는 종자 자체가 다른 그것이며, 음악이기보다는 의식을 행하기 위한 사운드 효과와도 같은 것이라 말 할 수 있는 그것이다. 그리고 얼핏 들으면 똑같은 연주패턴의 1시간 3분내의 무한반복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20분 단위로 각 파트가 미묘하게 변화하는데, 이는 처음에 느꼈던 주술적/최면석/종교적 느낌을 받는데 있어서 미세하고도 거대한 파문의 컬러를 청자에게 전해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느낌 모두를 이해하기는 쉽지가 않다. 이 앨범은 절대로 쉽게 들을 앨범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지금까지의 메탈 음악의 고정관념을 버려야 하며, 극단적으로 숨겨져 있는 그들만의 목표, 미묘한 변화를 극단적으로 집중해서 모두 캐치 해 내야만 비로소 감동이 오기 때문이다. 개념의 완벽한 파악, 1시간 3분 동안 흐트러지지 않는 집중력과 실행능력, 그 숨겨진 거대한 감동코드의 모든것을 찾아 낼 정도의 반복청취로 인한 자기승리 중에서 하나만이라도 부족하다면? 이 앨범은 그저 1시간 3분짜리 개지랄 만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Dopesmoker 는 밴드 지향하고자 하는 음악적 욕구가 극에 달한 작품인 동시에, 청자에게는 극단적인 시련만을 안겨주는 매우 불친절한 음반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독한 마인드는 밴드의 파멸이라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밴드는 Earache 와의 계약을 끝내고, 이 앨범을 구상하고 실행하기 위해 메이저 레이블들과 접촉을 시도했고 운 좋게도 London Records 와의 딜을 성사 시키는 쾌거를 낳기도 했다. 하지만 이 극단적인 시도는 밴드 멤버들조차 과연 옳은 음악적 행동인 것인가에 대해 의심을 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과도한 음악적 욕구를 곧이 받아들일 레이블이 아니었으며, 계약 조건에 포함 되었던 크리에이티브 컨트롤 (레이블측이 결과물에 대해 이래저래 바꾸라 요구 할 수 없음) 은 담당자가 바뀌면서 흐지므지 되었고, 결국 밴드와 레이블의 절충을 위한 여러번의 레코딩은 결국 밴드가 녹음 당시부터 커져가던 자신들에 대한 의심을 증폭시켜 결국 밴드로 하여금 해산을 결정하게 되었다. 1995년부터 행한 레코딩의 여러 버전의 결과물들을 뒤로 한 채, 앨범 발매마저 포기 해 버린채로 말이다. 그 후 Dopesmoker 는 놀랍게도 전설이 된다. 자신들조차 믿지 못했던 극단적인 둠/스토너/슬럿지 사운드 중 하나이자 가장 타협적인 결과물이 Jerusalem 라는 이름으로 1999년에 발매되어 엄청난 컬트적 반응을 얻었으며, 최종적 버전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더더욱 이 방면 팬들의 편집증적인 요구가 일어나게 만들었다. 밴드가 생각하던 최종적 버전은 2003년에 Dopesmoker 라는 이름으로 발표되어 더욱 더 엄청난 반응을 얻는데 성공한다. Dopesmoker 는 결국 이쪽 방면 사운드가 보여 줄수 있는 극단적이며 컬트적인 코드의 종결자로 기록되게 된다. 가장 유명한 평은 “둠이라는 나라가 있다면, 그 국가는 Dopesmoker 가 틀림이 없다” 라는 평이면 그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앨범이 지닌 더욱 더 헤비하게, 더욱 더 암울하게, 더욱 더 끈적하게, 더욱 더 거대하게, 더욱 더 약물적인 사운드로 나아가려는 욕구는 훗날 또 하나의 거대한 변화를 일구어 내기도 한다. 또한 Sunn O)), Boris, Earth 와 같은 드론 메탈/익스페리멘탈 둠 세력, Wolves In The Throne Room, Deafheaven 거대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학구적 골방 블랙메탈/익스페리멘탈 메탈 사운드, Isis, Pelican 과 같은 포스트 메탈 계열의 탄생 및 아이디어 제공의 원동력으로도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또한 처음에는 의심 했지만, 자신들에게도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밴드의 보컬/베이시스트 Al Cisneros 는 Sleep 을 근간으로 하는 거대한 스케일의 학구적 둠/슬럿지 밴드 Om 을, 기타리스트 Matt Pike 는 터프한 박진감을 지닌 메탈헤드 취향의 스토너 메탈 밴드 High On Fire 를 결성하여 활동, 대단한 업적을 남기는데 성공했기에 그러하다. (그리고 결국 2009년에 밴드는 재결성 및 라이브 활동을 가졌다.) Dopesmoker 는 그런 앨범이다. 둠/스토너/슬럿지가 행할 수 있는 극단적인 선택, 그와 동시에 2000년대 들어서 변화한 둠/스토너/슬럿지 및 각종 장르들의 비약적인 발전상의 가장 큰 원동력이 된 것이다. 정말 듣기 힘든 앨범임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헤비 사운드를 듣는다면, 그 역사의 이정표를 중시 여긴다면 Dopesmoker 의 1시간 3분은 처절한 고문인 동시에 잊지 못할 황홀경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쓴약이 몸에 좋다면, 그 중 최고의 약은 Dopesmoker 가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이 앨범은 여러 버전의 레코딩이 존재하는 만큼 생각보다 여러가지 버전으로 발매 되었다. 최고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Sleep 의 유지를 가장 잘 잇는 동시에, 가장 큰 존경을 보내고 있는) Southern Lord Records 에서 2012년에 발표 된 리마스터링 버전을 추천한다. 그 어느 버전보다도 더 매력적인 사운드와 볼륨을 자랑하며, 그러한 사운드 리마스터링은 찾기 매우 힘든 그들만의 매력을 그나마 느끼기 쉽게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 Mike Villain
Dopesmo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