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Steps – Venom (Dope Entertainment, 2015)
한국 하드코어 창단기였던 90년대 말 – 2000년대 초반에 등장한 “한국 하드코어 원조급 밴드” 중 하나인 13 Steps 는 한마디로 “데뷔 때부터 완성된 밴드” 였다. 이들은 Cro-Mags, Sick Of It All, Madball 과 같은 90년대 메탈릭 하드코어/NYHC 의 모든것을 제대로 구사했으며, Hatebreed, Terror 와 같은 새로운 메탈릭 하드코어 영건들의 새로운 흐름과 일맥상통하는 새로움 역시 보유하고 있었다. 일련의 데모들, 컴필레이션 참여 트랙, 스플릿 앨범 활동과 같은 비정규 활동만으로 “언더그라운드 스타” 가 되었으며, 정식 데뷔 앨범은 발표와 동시에 “한국 헤비니스 음악 마스터피스” 가 되기도 했다. 데뷔 당시부터 어마어마한 실력의 라이브 무대는 지금도 정평이 나 있으며, 헤비한 음악을 연주하는 국내 밴드중 최고의 라이브 실력과 선동력을 자랑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정도로 범접 할 수 없는 아우라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13 Steps 라는 밴드의 여러 장점들 중 진면목은 누가 뭐래도 음악적인 개성과 깊이다. 이들은 “해외 유수 밴드와 비교해도 전혀 꿀릴것이 없는 정통 메탈릭 하드코어 사운드의 제대로 된 구사” 라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들은 언제나 자신들만의 오리지널리티의 확보와 극단화를 꾀하고 있다. 발매 앨범 수는 적을지 모른다. 하지만 매번 발표 될 때마다 예상외의 새로운 것들을 쏠쏠하게 들려주며 음악적으로 정체되지 않는 모습을 늘 보여준 것은 이들이었다. 국내 하드코어 전체를 다 따져 보아도, 국내 헤비니스 전체를 다 따져 보아도 이들만큼 부지런한 밴드는 없었다 라는 사족을 꼭 달고 싶을 정도로 강렬하기도 했고 말이다.
2015년 말미에 발표한 신작이자 3번째 정규작인 Venom 은 2번째 앨범 Existence (2009) 로부터 6년, 최근작이었던 EP Torture 로부터 4년이라는, 꽤나 오래 걸린 앨범이다. 그동안 꾸준히 라이브 활동을 해 왔다는 점 & “새 앨범을 녹음한다” 라는 소식에 비해 꽤 오랜 텀을 가지고 제작/발표 되었다는 점을 상기 해 본다면, “신작은 뭔가 대단한 것을 시도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 예상이 맞았다. Venom 은 13 Step 라는 밴드의 음악적 스타일의 대격변을 꾀하는, 매우 도전적인 것들로 가득찬 앨범이다.
메탈릭 하드코어의 진수를 보여주는 한편, 메탈릭 하드코어 아이콘 밴드들과는 전혀 다른 자신들만의 개성을 만들어 나가는, 그 방법론에 무시무시할 정도의 열정적인 집착을 보여주는 앨범. 신작 Venom 을 간략히 정의 하자면 그렇다. 메탈릭 하드코어 하면 떠오르는 사운드적 특징/공식은 다 튀어 나온다. 헤비한 기타, 질풍같은 스피드, 모슁을 유도하는 그루브, 그 두가지의 다이내믹한 응용은 당연히 들어있고, 2000년대 이후 메탈릭 하드코어적 특징인 “친 익스트림 메탈적 사운드”, 2010년대 메탈릭 하드코어 특징인 “지금까지의 메탈릭 하드코어 텍스쳐와는 명확히 구분되는 개성확보” 까지 전부 다 튀어 나온다. 가장 눈여겨 볼 점은 근 2-3년간 메탈릭 하드코어씬에서 의미심장한 위용을 자랑하는 “지금까지의 메탈릭 하드코어 텍스쳐와는 명확히 구분되는 개성확보” 다. Cro-Mags, Sick Of It All, Madball, Earth Crisis, Merauder, Hatebreed, Terror 등등등, 이러한 하드코어 아이콘 밴드들과 극명하게 차별되는 메탈릭 하드코어를 만드는것은 지금까지도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 과도 같지 않던가? 최근들어 몇몇 뛰어난 신예들에 의해 혁신적인 것을 시도하기 매우 힘든 메탈릭 하드코어 사운드를 신선하게 만들고 있는데, 그 흐름에 13 Steps 가 과감히 동참한다. 그리고 대단한 음악적 결과를 내 놓는데 성공한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13 Steps 는 자신들만의 음악적 오리지널리티 구축을 위해 그라인드코어, 블랙메탈에서나 쓸 법 한 격렬한 리프/드럼비트 난사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한 격렬함에 걸맞는 사악한 쇳소리를 마구 내뿜는 보컬리스트 김동경의 존재감은 역대 최강이기도 하다. 둠메탈적인 묵직함을 연상 시키는 느릿하고 헤비한 빗다운도 사용하며, 그 느릿함 속에 하드코어 그루브를 구겨 넣으며 전통적 하드코어적 묘미와 둠메탈 코드를 집어삼킨 요즘 빗다운 하드코어적 다운 새로운 묘미를 동시에 전해주기도 한다. 헤비 그루브를 매우 다양하게, 예전의 자신과 이런저런 하드코어 아이콘 밴드들의 특징과는 다르게 만들려는 노력과 결실 또한 인상적이다. 그렇다. Venom 은 메탈릭 하드코어가 지닌 한정적 음악적 재료를 가지고 얼마나 새롭게, 얼마나 13 Steps 라는 밴드의 개성에 걸맞게 만들려는지를 보여주는 집착적인 산물인 것이다.
자신들만의 개성을 강하고 진하게 만들려는 집착성은 이 앨범만의 스피리추얼한 면모, 조금 쉽게 말하자면 “정신적인 부분이 강인한” 느낌을 전해주며 이 앨범만의 강렬한 개성에 도움을 준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 앨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들만의 새로움을 만들기 위해 집착하며, 어딘가 모르게 미쳐있다” 라는 느낌을 애써 외면하기 매우 힘들다. 보컬리스트 김동경이 내뿜는 파워풀한 보이스는 역대 최강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격렬하다 못해 사악하며, 나머지 멤버들이 그의 투지를 극단적으로 돋보이게 해 주기 위해 투혼을 불사르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다. 특히 모든 멤버들이 각 파트의 개성을 살려주기 위한 백업에 매우 열심인 가운데, 쉴 새 없이 자신들만의 개성을 표현하기 위한 야심을 끊임없이 드러내는 모습에서 드러내는 이질적 요소의 상승효과는 이 앨범의 진면목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매우 매우 강렬하다. 13 Steps 라는 밴드의 연주가 테크니컬한 음악으로써 평가 할 수 있는 차원은 아니겠지만, 듣고 있노라면 이 밴드의 연주적 개성과 실력이 굉장함을 느낄 수 있다는 점, 이 역시 Venom 이라는 앨범의 장점으로 빠트려서는 곤란할 것이다. 팀웍적으로도 만점을 만들기 위한 노력, 개개인의 개성을 극단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야심, 그 어떤 밴드 / 그 어떤 전작과도 차별되는 무언가를 만들려는 계획, 그 모든것들에 대한 강렬한 집착과 행동력은 너무나도 강렬하며, 이 밴드가 노리는 궁극적 음악적 목표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정신적인 강인함이 음악의 품질을 좌지우지 한다? 정말 말도 안되는 소리일 것이다. 그러나 Venom 은 그걸 보여준다. 강인한 마음가짐이 얼마나 사운드를 새롭게, 깊게 만드는지를 말이다. 그러한 집착성이 언제나처럼 음악성 상승을 가져오지는 않겠지만, Venom 이라는 앨범만큼은 그것을 제대로 담아내는데 성공 했다. 매우 보기 드문 경우이며, 그러한 레어함 또한 이 앨범의 가치를 드높인다 할 수 있을 것이다.
Venom 앨범은 간단히 말해서 13 Steps 만의 진면목을 담은 앨범으로 평가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밴드에 대한 지금까지의 평가가 “본토 메탈릭 하드코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밴드” 였다면, 이번부터는 “본토 하드코어 사운드를 넘어서는 자신들만의 오리지널리티 확보를 위해 극단적으로 노력하는 밴드” 가 되어야만 옳을 것이다. 계획도 좋고, 노력도 충분하며, 결과 또한 매우 묵직하다. 한가지 특정 장르가 지닌 스테레오 타입적 특징에서 크게 벗어나는 한장으로, 흔하게 쓰이는 표현이지만 진정 사용하기 매우 힘든 표현인 “차원이 다르다” 라는 말이 극단적으로 어울리는 한장 되겠다. 13 Step 는 이러한 면모를 전작들에서도 쏠쏠하게 들려 준 바 있었다. 허나 Venom 은 다르다. 음악적 개성과 깊이가 너무나도 다르다. “국내에는 적수가 없다. 세계의 그 어떤 밴드와 비교 해 보아도 차별화 되는 무언가를 제대로 들려준다.” 라는 구체적인 추가 설명을 오버해서 달아야 할 정도다. 최고의 밴드가 보여주는 최고의 작품 되겠다. 앞으로 어쩔려고 이렇게 굉장한 걸 냈는지… 하는 걱정도 들 정도로 최강이다. 이런 명작 앨범을 듣게 되어 영광일 따름이다.
- Mike Villain
If God Ex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