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ackest #16] Korn – S/T (Immortal/Epic, 1994)

[The Blackest #16] Korn – S/T (Immortal/Epic, 1994)

Korn 의 두번째 앨범인 Life Is Peachy (1996) 은 발매 첫주에 빌보드 앨범차트 3위에 데뷔한다. 그리고 음악 비즈니스계는 적잖은 충격을 받게 된다. Korn 은 그 당시만 하더라도 거물 밴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언더그라운드에서 맹위를 떨치던 밴드였지만, 빌보드 앨범차트 3위를 기록 할 정도로 대중적으로 먹어 줄 코드는 전혀 지니고 있지 않았다. 사운드적으로나, 메시지적으로나 말이다. 스타급 밴드와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빌보드 앨범차트 3위로 데뷔하고야 말았다. 이 엄청난 위력의 근거는 어디서부터 비롯되는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문감을 가지고 탐구를 개시했고, 어렵지 않게 정답에 도달하게 된다. 바로 이들의 셀프 데뷔작 Korn 이었다. “빌보드 앨범차트 74위”가 고작이었던, 싱글 차트적 임팩트를 남긴 곡 하나 없었던 바로 그 앨범 말이다. 그 사실을 모두가 알게되자, Life Is Peachy 보다 그 셀프타이틀 데뷔작은 더 큰 주목을 받게되는 기현상을 낳기도 했다.

Korn 의 셀프타이틀 앨범은 빌보드 앨범차트 74위를 기록했을 뿐이었지만, 2번째 앨범 Life Is Peachy 가 발매되는 2년여의 시간동안 끈덕지게 빌보드 앨범차트 하위권에 머무르며 차트 기록의 데드라인인 200위권 밖으로 튕겨나가지 않고 계속 자신들의 이름을 남겼다. 신작이 발표되는 그 순간까지 계속해서 조용하고도 꾸준하게 판매고를 올렸고, 그렇게 서서히 팬층을 늘려갔다. 2번째 앨범이 발매 첫주에 3위를 기록하며 “이 시대를 대변하는 스타 밴드” 가 될 정도로 말이다. 셀프 타이틀 데뷔작에는 그럴만한, 사람들을 끌어 당길만한 것들이 듬뿍 담겨 있었다. 하지만 청자를 사로잡는 방법은 매우 달랐다. 기괴함의 극치를 통해 만들어 나가는 낮선 음악적 개성, 그 누구도 외면 할 수 없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도 한 “사회적 학대와 따돌림”을 근간으로 말이다.

Korn 의 셀프타이틀 데뷔작은 발매와 동시에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머릿속에 의문 부호를 가득차게 만들 정도로 너무나도 낯선 스타일을 추구했다. 메탈적인 헤비함을 지니고 있었지만, 펑크/하드코어적인 굵직하고 심플한 연주 코드 & 도심 하위문화적 코드를 지니고 있었지만, 그들의 장르는 메탈도, 펑크도, 하드코어도, 얼터너티브도 아니었던, 정의 할 수 없는 음악이었다. 독특하다 못해 기괴한 스타일었다는 점도 있었다. 그 어떤 종류의 헤비니스보다 더 낮은 음으로 튜닝 된 기타톤, 펑크와 메탈 등 모든 종류의 헤비함에 존재하는 락앤롤 바이브의 완벽한 배제, 즐기기 위한 헤비니스 음악 그 이상의, 한 정신 불안자의 성명서를 듣는듯한 독특한 개성도 매우 강렬했다. 비주얼도 독특하다 못해 낯설었다. 모든 멤버들이 아디다스 트레이닝복을 입었고, 드레드락 헤어 스타일을 즐겼으며, 2XL 사이즈의 힙합 패션도 취했다. 표정들은 하나같이 어두웠고 말이다. LA 변두리 지역의 독특한 하위문화라고 치부 할 정도로 독특했고, 굉장히 낯설었다. 물론 이러한 스타일은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너무 낮선 스타일 때문에 활동 초기엔 라이브 클럽조차 잡기 힘들었고, 몇몇 하드코어 애호 똘아이들에게 시비가 붙어 서로 주먹다짐을 하기도 했다. 이들은 너무나 달랐고, 그 다름을 좋게 보는 사람은 전혀 없었다. Epic Records 의 담당자를 제외하고선 말이다. 지금 생각 해 보면 Korn 이 Epic 이라는 메이저 레이블와의 계약을 어찌 따 냈는지도 의문이다. 여하간 Epic 의 담당자는 “꽤나 새로운 사운드” 라는 이유 하나로 그들과 계약했다. 그리고 무명의 프로듀서 Ross Robinsson 과 작업했고… 그 다음은 어찌 되었는지는 다들 알 것이다.

이 앨범의 진정한 가치가 발견 된 것은 발매 당시가 아닌, 밴드의 두번째 앨범인 Life Is Peachy 가 빌보드 앨범차트 3위로 데뷔하는 충격을 선사 하면서 부터였다. 이 앨범은 좋던 싫건간에 “3위를 하게 될 정도로 놀라운 무언가가 있는가?” 에 자유로워 질 수 는 없는 앨범이다. 어쨌건간에 답은 “무언가가 있다. 무서울 정도로” 가 되겠다. Korn 이라는 밴드의 진면목은 낮선 사운드와 사회적 따돌림으로 인해 섬뜩할 정도로 망가져있는 불안한 심리상태에서 비롯 된 가사와의 접목에 있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가사” 이다. 이 앨범의 주 된 테마는 “사회적 따돌림”, 즉 왕따이다. 부모의 학대, 부모의 약물 중독, 자신의 약물중독, 학교 폭력의 피해자 (밴드 멤버들 모두 뉴 로맨틱스/뉴웨이브의 팬이었는데, 이에 대해 “게이 새끼들” 이라며 극심한 따돌림을 받았었다고 한다) 등 매우 어두운 이야기 말이다. Korn 의 음악이 새롭다 못해 불편하게 들리는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였다. Korn 의 음악은 (그 당시에는) 사운드적으로 상업적 포인트가 전혀 없었지만, 이들이 써 내려간 가사에 담긴 사회적 따돌림은 많은 10-20대들의 이야기기도 했다. 팬은 서서히 늘어났고, 결국 두번째 앨범이 발매 첫주에 앨범차트 3위를 오르는 원동력까지 번식하게 된다.

매우 기괴한 헤비니즘 & 헤비한 음악 역사에서 유례가 없었던 “괴롭힘 당하는 청소년/청년의 이야기” 의 융합은 굉장했다. 사운드의 새로움이 먼저냐, 메시지의 새로움이 먼저냐의 논쟁은 중요하지는 않다. 이 두가지의 융합은 너무나도 새로웠다는 점이 중요하다. 과하게 새로워서 대중에게도, 매니아에게도 낮설다 못해 배척 받았지만, 결국 도심 사회/문화의 사각지대에 침투하는데 성공했고, 서서히 병균처럼 번져 나갔다. 그렇게 Korn 은 그 시대의 대변인이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헤비록 장르인 “뉴메탈” 의 결정적인 창시자가 되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Korn 은 3번째 앨범 Follow The Leader (1998) 을 기점으로 “낮선 존재들” 에서 벗어나 “모두의 락스타” 가 되어 버렸다. 기괴한 음악적 코드는 점점 희석 되었고, 따돌림 받는 청년들을 대변하는 가사의 의미 역시 동시에 의미를 잃어갔다. 그들의 만들어 낸 뉴메탈은 점점 상업적 장르로 급격히 변질 및 부패 되었고, 그들을 새로운 헤비니스 언더그라운드 컬쳐로 인정했던 메탈 & 하드코어 펑크 세력들의 반감은 점점 드세졌다. 2000년대 중반부터 새로운 메탈과 하드코어가 다시 치고 올라오고, 뉴메탈이 점점 음악적 가치를 잃어가자, Korn 은 넘버원 타겟이 되어 누구나 씹꼬 뜯고 맛보고 즐기는 모두의 장난감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Korn 의 데뷔작만큼은 쉽게 건드리기 힘들다. 이 앨범이 20주년을 맞이하자 “그래도 이 앨범은 무시 할 수 없지” 하는 분위기가 나왔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럴만 하다. Korn 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던 메탈과 펑크/하드코어의 위상을 멸종위기에 몰았을 정도로 음악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굉장한 개성과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웃사이더들의 문화였던 메탈과 펑크에서조차 속하지 못했던 자들을 위한 또 하나의 문화적/엔터테인먼트적 대안이 바로 이 앨범이었다. 그 어떤 헤비니스 장르랑 닮지 않았던 혁신감 넘치는 사운드, 그와 연동되는 독특한 연주적/장비적 테크니컬함이라는 뮤지션쉽도 있었다. 음악을 넘어선 감정적 한풀이를 보여주는듯한 이들만의 격렬한 라이브 액트 역시 빠질수가 없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냐고? “Korn 의 데뷔작은 20주년을 맞이한 현재 가장 평가절하 받고 있는 헤비니스 명작” 이라는 것이다. 현재 커리어가 너무많이 망가졌지만, 그래도 이 셀프타이틀 데뷔작은 그 시대의 젊은이들을 대변하는 코드로 중무장한 앨범이었고, 혁신적인 스타일을 통해 새로운 방법론을 완벽하게 제시 했다는 점을 우습게 보지 말라는 말이다. Korn 이라는 밴드와 뉴메탈이라는 장르는 탄생 했을 무렵만큼은 음악적으로나 메시지적으로나 매우 진실 되었고, 그 당시의 정체되어 있던 모든 종류의 헤비 음악의 진정성을 역으로 시험 하는듯한 도발성 또한 굉장 했었다. 이를 쉽게 무시 할 수는 없지 않던가.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보이지 않아, 보이지 않아, 내 눈은 점점 멀어만 가” 의 충격은 여전하다.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 보기를 바란다.

- Mike Vill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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