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 Obliviscaris ? Portal Of I (Aural Music, 2012)
굳이 호주의 음악 신은 어떻게 구성되어있고 현재는 어떠하다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Ne Obliviscaris (이하 Ne O)를 설명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다. 아니, 되려 그것이 군더더기가 될 것이다. 데모 한 장과 데모에 있던 곡을 전부 수록한 첫 Full-Length 앨범. 이것만으로 Metal-Obsession을 포함하여 각종 웹진 및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온라인/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온갖 호평이 쏟아졌고 이 정도까지 왔으면 이건 분명 장르가 어떻든 반드시 한번이라도 들어는 봐야 하는 그런 것이며, 밴드가 활동하는 나라의 음악시장이 폐쇄적이니 어떠니 하는 말은 똑 떼버리는 게 매우 적절하다.
Nay Ob-li-vis-kar-is (라틴어로 Lest We Forget이라는 뜻)로 발음되는 이 밴드의 음악은 여러 가지의 논쟁거리가 있겠지만 밴드가 스스로 말하고 있는 대로, Progressive/extreme/melodic metal라는 표현이 꽤나 적절하다. 아니, 이렇게 상당히 포괄적으로 장르명을 병기해야 할 정도로, Ne O는 수많은 스타일의 음악이 내재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어느 곡을 틀어도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리프나 연주 구성은 Black Metal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주의 깊게 들어보면 Black Metal이라기 보다는 Melodic Death Metal이라고 느낄 수도 있다. 곡 길이를 생각해보면 (7곡 71분) 별다른 고민과 논의 없이 Progressive Metal이라고 머릿속에 담아두게 되고, Melodic Death Metal과 Progressive Metal (에 약간에 Black Metal이나 다른 Extreme Metal 등등의 요소)를 함께 담을 수 있는 이름 하나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Opeth와는 또 다른 양상을 보인다. 초기부터 Progressive Rock과 Death Metal을 연결시키고자 했던 열망이 강했고 그것을 음악의 방향으로 삼아 쭉 활동을 해왔던 이들과 달리 Ne O는 그보다도 더 넓은 영역에 도전했다. Opeth 초기에 잠깐 내비쳤던 Gothic Metal (Pop-Gothic 말고 흔히들 Doom/Death Metal이라고 생각하는 그거)에 영향 받은 멜로디와 구성을 끊임없이 내비치고 있고 멜로디를 듣다 보면 되려 Alcest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또한 연주만 있는, 소위 ‘공백이 느껴지는’ 부분도 제법 되는데 화려한 테크닉 대신 멜로디와 구성만으로 초반 6분여를 보컬 없이 끌어가는 Forget Not은 탄성이 저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키보드 대신 클린보컬 담당인 Tim Charles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데, 다소 신선하다는 느낌이 들거나 과거에 바이올린을 이용했던 Extreme Metal 밴드 – 1집에서 바이올린과 Melodic Death Metal의 결합을 최초로 선보인 Ebony Tears나 지금은 음악 색이 많이 바뀌었지만 2집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바이올린 선율만 듣고 밴드를 알아맞히던 Dark Lunacy가 대표적이다 ? 가 떠오를 것이다. 정식으로 음악 교육을 받았다는 유일한 멤버답게 굉장히 클래시컬한 바이올린 연주를 보여주는데, 기본적으로 키보드가 있는 밴드에서 키보드가 하는 역할 그대로, 연주에 풍성함을 더하거나, 멜로디를 배제한 리프 위에 바이올린을 얹어 대비된 사운드를 만들어내거나, 기타 솔로 이후 바이올린 솔로를 주고 받는 등 이 밴드의 독자적인 사운드에 많은 부분을 기여하고 있다. As Icicles Fall에서 기타 솔로와 함께 같은 멜로디를 연주하는 바이올린은 다른 어떤 밴드들과도 이 밴드가 차별되어 보이는 특별한 부분이다.
클린 보컬과 그로울링의 멤버 구분은 이 밴드의 또 다른 장점이다. 강력한 리프와 리듬이 전개되다가 뜬금없이 멜로디가 반전되며 클린 보컬 멤버가 마이크를 잡고 전혀 다른 멜로디를 부르는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개소리죠 씨팔” 이겠지만 Ne O는 쉬우면서도 다른 접근법을 택했다. 클린 보컬이 단독으로 나가거나 혹은 멜로디가 반전되는 부분을 쉽게 찾기 힘들며, 되려 그로울링 보컬을 보조하기도 하고 대조를 이루면서 그 자체로 훌륭한 코러스를 완성한다. 보컬이 한 명이었다면 라이브에서 불가능한 부분이겠지만, 이 밴드는 두 명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여기에 바이올린이 보조하는 멜로디는 Estatic Fear나 Lacrimosa와 같은 Gothic Metal을 연상시킨다.
이런 것들이 모두 가능 하려면 연주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텐데, 데모를 낸 지 5년이 지났다곤 하지만 첫 앨범을 낸 밴드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연주를 보여준다. 바이올린 연주로 시작하여 밴드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And Plague Flowers the Kaleidoscope에서 이런 부분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데, 모든 악기가 플라멩코 풍의 리듬으로 연주하다가 메틀로 자연스레 전환되는 부분이 백미다. 드럼은 복잡한 변박을 마구 뿌려대지는 않지만 꽤 다양한 리듬을 무리 없이 구사했고, 베이스는 앨범 내내 굉장히 그루브한 모습을 보이며 독자적인 멜로디를 들려준다. 보컬이 나오지 않고 연주만 계속되는 부분이 꽤 많은 Ne O의 앨범에서 이런 부분은 비어 보이지 않게 하는 효과를 주었다.
이렇듯 1집에서 모든 것을 다 보여줬는데, 곡들 자체는 나무랄 것 없이 좋지만 전체적인 구성을 볼 때 ‘굳이 12분이나 해야 했나’ 하고 느낄 정도로 군더더기가 보이는 곡들이 꽤 있다. 아니, 전 곡을 조금씩 잘라냈어도 밴드가 추구하는 사운드와 보컬 없는 ‘여백의 미’ 사운드도 모두 살릴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7곡중 5분짜리인 Of the Leper Butterflies도 다른 곡들과 비교하여 크게 떨어지지 않는데, 이렇게 되면 10분 이상의 긴 곡은 물론 그보다 짧은 곡도 충분히 기대할 만 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이런 아쉬움이 있기에 이것이 첫 앨범인 것이고, 다음 앨범을 기대할만하게 하는 것이다.
결국 데뷔작이라 생각할 수 없는 퀄리티를 낸 Ne Obliviscaris는 Opeth같은 첫인상을 심어주었지만 결과적으로 Alcest의 자리를 위협하는 밴드로서 등장했고, 이베리아 반도에서 탱고 추는 여인은 느껴지지 않지만 어디선가 다 들어본 멜로디를 자기만의 색을 얹어서 밴드의 독창성을 갖는 것에 성공했다. 자체 프로듀싱 (믹싱과 마스터링은 Opeth의 음반을 작업했던 Jens Borgen)으로 뽑아낸 사운드는 정제되어 있지 않고 개선이 필요하지만 밴드의 소리를 전달하기엔 무리가 없어 보인다. 90년대 초/중반의 Melodic Death Metal 사운드도 멸종된 마당에, Gothic Metal, Melodic Death Metal, Black Metal에 대한 향수와 새로운 음악에 대한 갈망이 모두 가슴속에 있다면 Ne Obliviscaris는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긴 곡 알러지가 있는가? 들어보면 러닝타임이 쓰여진 것보다는 짧게 느껴질 것이다.
- Matt Villain
And Plague Flowers The Kaleidosco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