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Medicine – Irreversible (석기시대, 2015)
“한국 익스트림 메탈 역사에 길이 남는 이정표 밴드였던 Sadhu, Seed 출신의 멤버 이명희, 김창유가 의기투합한 새 밴드” 라는 점 하나만으로도 Black Medicine 은 매우 기대 할 만한 밴드였다. 하지만 실물 (=레코딩 결과물) 이 나올 때까지는 너무나도 오래 걸렸다. “의기투합 했다” 라는 소식을 접한것이 2000년대 초중반이었고, 수는 많지 않지만 이런저런 공연을 통해서 “엄청난 실력의 밴드” 라는 소문이 업계 내부에서 울려 퍼졌던 것은 2010년대 초반이었다. Black Medicine 은 서두르지 않았고, 매우 신중했다. 제대로 된 한장을 남기기 위해서였다. 완벽함을 남기기 위한 신중함은 앨범 발표 답보 상태에 놓여 버렸고, 풀렝스로 기획되던 앨범은 EP 로 다운그레이드 되어 일단 발표 하기로 했다. 그때 석기시대 레코드가 레코드 딜 & 레코딩에 대한 전폭적 지지를 제시했고, Black Medicine 의 레코딩 결과물은 또 한번 미뤄졌다. 그렇게 2년여의 시간이 또 흐르게 되었다. 이들의 앨범을 기다렸던 수많은 사람들은 지쳐갔고, 한계에 봉착 할 무렵인 2015년 여름… 드디어 이들의 데뷔작이 등장했다. Irreversible 라는 앨범이다.
단 한장의 데모 없어도 Black Medicine 이 2010년대 한국 헤비니스씬의 부동의 넘버원 최고 기대주로 몇년을 지낸것은 이상한 일이 절대 아니다. 한국에 생소한 둠/슬럿지 메탈을 처음으로 시도해서? 아니다. 둠/슬럿지라는 장르를 이해하는 사람들의 낌새조차 전혀 없던 불모지 한국에서 2010년대에 어울리는 완성형을 단 한장의 데모없이 완벽하게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Saint Vitus 로 대표되는 매니악한 둠메탈 기본형부터, 수많은 모던화/대중화를 보여주는 2010년대까지의 흐름 모두를 보여 주었다는 말이다. 간간히 행하던 라이브 무대에서 그 둠/슬럿지의 40여년의 역사를 다 보여주던 괴물이 Black Medicine 였고, 당연히 이들의 레코딩은 발매만 되면 한국 음악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너무 오래 걸렸다. 다소 과도한 인상의 신중함, “앨범 제작에 있어 금전적 서포트의 극을 보여주는, 그와 동시에 레이블측의 음악적 요구사항 역시 강한 레이블로 유명한” 석기시대 레코드라는 대단한 조력자를 만나는 등의 다사다난함이 있었다. 이는 하나의 결론으로 나아간다. Irreversible 라는 앨범이 엄청난 기대작인 동시에, 매우 걱정되는 한장이라는 점 말이다.
하지만 Irreversible 은 완벽에 한없이 가까운 결론을 제공한다. 더 나아가 앞서 언급한 “걱정거리” 들을 짓뭉갤 여러가지 플랜들 또한 튼실하게 구비 해 왔으며, 그것들 역시 완벽하기도 하다. 일단 이 앨범은 모든 종류/모든 세대의 둠/슬럿지/스토너 음악 계열에 있어서의 핵심인 “Black Sabbath 특유의 컬트함의 극단화와 자기화” 에 대한 모든것을 들려준다. 헤비-퍼즈 사운드 특유의 독특함과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생성되는 흑마술적/약물광적 아우라, 모든 종류의 메탈의 뼈대가 되는 하나의 텍스쳐 제시, 고전 블루스-서던락-사이키델릭 등 클래식 락 계보 특유의 품위와 같은것들 말이다. 여기에 둠/슬럿지 하면 생각나는 스테레오 타입적 특징을 더욱 독하게 만드는 매니악한 요소의 파워업들이 얹어기지도 하며, 그러한 매니악함을 붕괴 시키는 다양한 Black Medicine 만의 음악적 번뜩임이 다량 첨가되며 앨범을 극단적인 재미로 이끌기도 한다. 7-10분대의 매니악한 헤비-퍼즈-사이키의 혼합체의 진수를 보여주지만, 모든곡들이 각기 다른 비트/템포를 지닌 캐치함을 통해 쉽고 흥겨웁게 즐기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는 점은 가희 경악 수준이며 (다들 잘 아시다시피 둠/슬럿지는 데스메탈과 동급일 정도로 컬트한 마이너 메탈 그 자체인 장르다), 둠/스토너에 포함된 캐치함은 Mastodon 으로 대표되는 2000년대 모던 슬럿지 메탈을 연상케도 하지만 결국적으로는 “캐치한 Saint Vitus” 로 귀결 될 정도로 정통파적 컬트 사운드의 진수를 보여준다는 점 역시 매우 놀라울 따름이다. Irreversible 이라는 앨범은 괴물 같다라는 표현을 쓸 수 밖에 없게 만드는 한장이다. 이들은 70년대와 2010년대 사이의 헤비-퍼즈 사운드의 장점을 자유롭게 수집하고, 과감하게 사용하며, 극상의 흥미로움을 선사하며, 청자를 경악에 빠트리기에 주저함이 없고 그 임팩트함이 상상을 초월하기에 그러하다.
7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의 헤비-퍼즈 사운드의 자유롭고도 완벽한 사용으로만 이 앨범의 호평을 끝낼 순 없다는 점도 중요하다. 더욱 다양한 대단함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먼저 거론하고 싶은건 “놀라운 작곡-연주 능력” 이다. 모든 곡들이 5분을 훌쩍 넘어 8-10분대에 이르르는 장거리 주행을 함에도 불구하고 단 한곡도 지루함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다이내믹 함과 캐치함을 매우 강조해 만들었다는 점, (다소 겹치는 패턴이 있어도) 모든 곡들이 각기 다른 템포/분위기를 자아내며 앨범 전체를 흥미롭게 이끌어 나가고 있다는 점은 이 앨범의 진정한 장점이라 할 수 있을 정도다. 지루함을 전혀 찾아 낼 수 없는 앨범 한곡 한곡의 흐름 & 앨범 전체적 흐름속에 구사되는 각 멤버들의 연주력/연주 센스의 남다름도 절대 빠트려서는 안되는 장점이다. 심플한 리프를 반복함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레 느낄 수 있을 정도의 클래식 락 특유의 품위의 확보라던지, 전체적으로 심플하고 인상적인 리프의 사용으로 앨범을 이끌어 가지만 솔로 타임에서 엄청난 화려함을 뿜는 기타, 백업을 해 주는 위치이지만 비범함을 연신 뿜어내는 베이스와 드럼의 만만찮은 존재감, 매니악한 캐릭터 표출과 테크니컬함을 동시에 갖춘 보컬 등 각 멤버들의 엄청난 퍼모먼스 역시 굉장하다. 굉장한 테크닉, 독특한 캐릭터성/카리스마를 갖춘 Black Sabbath 4인의 가공 할 만한 음악적 캐미스트리의 그것이 한국에서도 발휘 된다는 점은 쉽게 간과 할 수 없으며, 이는 자연스레 Irreversible 라는 앨범의 엄청난 장점으로 기록된다. 이러한 점은 앞서서 설명한 바 있는 약점인, “짦은 시간안에 EP 사이즈의 기획을 풀렝스로 만들어야 하는 난관” 을 파괴하는데 있어서의 핵심으로 맹활약 한다는 점으로도 이어진다. 이 또한 놓쳐서는 안되는 Irreversible 앨범의 감상 포인트이다.
다소 아쉬운 점도 있다. 이들이 라이브 무대에서 보여 준 바 있는 “앰프에서 뿜여져 나오는 어마어마한 헤비함” 과 “그저 어마어마한 헤비함으로만 단정 지을 수 없는 독특한 사운드 이펙팅에 의한 음향적 독특함” 이 이 앨범에 충분히 담기지 못했음을 애써 외면하기 너무나도 힘들다는 점이 이 앨범의 (유일한) 아쉬움이다. 둠/슬럿지/스토너 사운드 자체가 Black Sabbath 라는 밴드 독특한 헤비톤의 극단화 및 개성적 어레인지로 인해 발전 된 장르라는 점을 상기 해 본다면, 그 독특한 묵직함을 담아내지 못했음은 분명 마이너스 요소라고 지적 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이 앨범에서의 프로덕션은 하이 퀄리티이다. 그것은 부정 할 수 없다. 허나 둠/슬럿지/스토너의 40여년의 역사를 한번에 소화 해 내려는 야심을 지닌 Black Medicine 만의 컬트한 색채와 그 깊이에 해가 됨은 분명하다. 큰 단점이 아닌, 앞으로의 앨범에서 간단히 보완 될 수 있는 아쉬움이기에 “단점” 이 아닌 “아쉬움” 으로 여기고만 넘어가는 것이 좋다는 말 또한 남기고 싶다.
Irreversible 는 정말 멋진 앨범이다. “한국에서도 둠/슬럿지 사운드가 가능하다” 정도가 아닌, “해외의 둠/슬럿지의 여러 기준들에 대한 완벽한 카운터 풀 패키지” 로 이야기 해야 할 정도로 여러가지 기준에서 매우 매우 완벽하기에 그러하다. Black Medicine 라는 팀 만의 개성, Irreversible 라는 앨범만의 개성, 이 밴드의 4인 멤버 각각의 개성 또한 가치가 굉장하기에 완벽 할 수 밖에 없다고나 할까나? 너무 오래 기다리게 만들었지만, 오히리 긴 준비기간이 정당했고 다행이었다. 한국 메탈의 길이 남을 한 페이지가 되었음을 그 누구도 부정 할 수 없을 정도다, 뭐 이런말은 당연해서 하고 싶지도 않을 정도다. 헤비니스 음악의 팬으로써 이러한 명작의 탄생을 실시간으로 경험 할 수 있다는 사실은 가희 축복 그 자체였다는 말을 남기고 싶을 정도로 대단한 한장이다. 이 한장을 듣게 된 것은 가희 영광 그 자체였다고 말하고 싶다. 최고였다. 정말 최고였다.
- Mike Vill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