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town Killer #01] Crash – Endless Supply Of Pain (Metal Force/SKC, 1994)
한국 락 음악의 명작의 발자취를 제대로 밝아 나가기 위한 첫 스텝에 어울리는 앨범인 이 앨범 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 앨범이 가진 뒷 이야기를 살펴보면 명성에 비해 “너무나도 어이없을 정도로 많은 약점” 을 지녔다 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이 앨범은 그 약점을 인정 하더라도, 너무나도 빛나는 많은 장점을 확실하게 지니고 있다. 음악적 실력과 결론만이 앨범 평가의 절대적 기준이지만, Crash 의 데뷔 앨범만큼은 어드밴티지를 받아야만 옳다. 이 앨범은 한마디로 “진정한 시작” 이기 때문이다.
7-80년대 한국의 경제성장과 그로 인한 다양한 여가/문화 생활이 이 땅에서도 시작 되었는데, 그 중 중요한 한 축을 자랑하던 것은 음악감상 이었고, 그 중 락 음악에 대한 애호는 매우 중요했다. 매우 새롭고 파격적인 서구 음악중에서도 더욱 앞서 나가던 락 음악과 이를 들은 수많은 키즈들은 “우리도 락을 해보자” 라는 매우 심플하고도 핵심적인 명제를 행동으로 옳겼다. 이는 다들 잘 알듯이 시나위, 백두산, Black Syndrome 등 수많은 하드락/헤비메탈 밴드들의 등장으로 이어졌고, 만만치 않은 상업적 성공과 많지는 않지만 꽤 괜찮은 횟수의 공중파 TV 출연으로도 이어졌다. 그리고 그러한 흐름이 탄탄해지자 한국도 해외의 사정과 마찬가지로 점차 강력하고, 빠르고, 헤비한 발전을 원하는 행동파들이 생겨났고, 이는 쓰래쉬 메탈러와 데스메탈러들의 등장으로도 이어졌다. 작지만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던 한국 메탈씬을 눈여겨 보던 메이저 레이블 SKC 는 무려 “메탈전문 서브 레이블” Metal Force 를 설립하고 (그 당시에 미국 메이저 레이블 Sony 의 배급권을 취득하여 세상을 놀라게 만든) Earache Records 와의 딜을 체결하며, 세계적 기준에서도 매우 급진적이었던 데스메탈 명작들을 라이센스로 선보였으며, 그것으로 끝내지 않고 무려 제대로 된 퀄리티의 밴드와의 계약, 음반제작/유통으로 뭔가를 해 내려는 엄청난 야심 (혹은 무모한 도전?) 을 선보이기 된다. 그러한 공격적인 마케팅에 가장 먼저 포착 된 밴드는 라이브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과 관객 선동성을 선보였던 Crash 였다.
무명의 과격 메탈러 Crash 와 대기업 산하의 음반사 SKC 의 딜은 놀라웠지만, 그보다 더 놀라웠던 점은 Metal Force 의 대표는 “제대로 된 퀄리티의 음반” 을 만들어 내려는 앞서 나가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레이블은 무려 해외 프로듀서를 초빙한다. 바로 Colin Richardson 이었다. 이 결정은 지금까지도 깨어지지 않는 한국 헤비니스 역사상 최고의 빅딜이었는데, 그도 그럴것이 Colin 은 Napalm Death, Carcass, Bolt Thrower, Fear Factory 와 같이 그 시대를 대표하는 익스트림 메탈 사운드 프로듀스 아이콘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무려 매우 바쁜 그를 한국으로 직접 불러 들여서 말이다. 한마디로 시원하게 금전적으로 지른 것이었다. 그렇게 과감한 투자는 지금까지도 깨어지지 않는 기록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Crash 였다. Colin 을 한국으로 직접 불러 들이는데 성공 했지만, Crash 는 놀랍게도 앨범 사이즈를 채울만큼 충분한 곡들은 커녕, 몇곡의 자작곡이 전부였다. 라이브 레파토리로 언제나 다수의 커버곡과 티삼스의 매일 매일 기다려를 할 정도였다는 점을 거론한다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필요 없을 것이다. Colin 은 프로패셔널 답게 스튜디오에 들어가기만 하면 될 정도였지만, Crash 와 한국은 전혀 준비되지 못했다.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때까지 언제나 처럼 거론되던 “한국에서 녹음한 락/메탈은 프로덕션 퀄리티가 떨어진다” 라는 팬들의 푸념답게, 기본적인 락/메탈 녹음 상식조차 없었던 한국이었고, Colin 은 할 수 없이 직접 드럼 셋팅부터 마이크 배치까지 해야만 했다. 녹음에 관한 모든 허드렛일 조차 Colin 의 몫이었던 것이다. 앨범을 위한 충분한 곡도 없고, 메탈 음악 녹음에 대한 기본 지식도 없이 그렇게 시작 되었다. 이런 좌충우돌스런 해프닝은 앨범 발매까지 늘 이어졌지만, 놀랍게도 결과물은 성공적이었다. Crash 는 여러가지 단점을 메꿀 열정이 굉장했던 밴드였기 때문이었고, 그러한 모습을 캐치 해 낸 Colin 역시 엄청난 도움을 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놀라울 정도로 Colin 에 대한 의존도가 굉장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녹음에 대한 모든것이 백지였기에 Colin 은 모든 녹음 프로세스를 직접 행동으로 모든지 옳겨야만 했으며, 곡이 부족한 밴드에게 앨범 사이즈에 걸맞는 곡들을 만들어 내야만 하는 밴드에게 쉴 새 없이 아이디어를 제공해야만 했다. 이러한 무모한 도전을 성공신화로 바꾼것은 Crash 그들 자신이었다. Colin 의 엄청난 서포트가 있었지만, Crash 가 주역일 수 밖에 없게 된 것은 바로 앨범의 모든 곡들에서 느껴진다. 앨범 발표 당시에 Sepultura 의 아류라는둥, Ministry 의 기타 리프를 그대로 가져다 써서 문제가 되었던 My Worst Enemy 에 대한 한국 메탈씬의 뒷담화는 (그 당시 리더 안흥찬은 인스트리얼에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확인사살급.) 이 앨범의 가치를 하찮은 것으로 바꿀만한 시비거리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이 앨범이 상상 한 것 이상의 제대로 된 쓰래쉬 메탈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은 그러한 비난을 충분히 잠재울 만 하다. (한국의 메탈진과의 인터뷰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Colin 은 Crash 에 대해 “수십 밴드가 나와서 한번에 연주하는거 같다” 라는 표현을 했는데, 이는 조롱의 의미라기 보다는 Crash 의 초기 모습의 장점, 그 자체였다. Sepultura 스타일을 근간으로, Cannibal Corpse 스타일의 데스메탈과 Napalm Death 스타일의 그라인드코어의 초과격 사운드 기법을 적절하게 끼워 맞춘 앨범이라고 냉정하게 말하고 싶…지만 그렇게 쉽게 단정하고서 넘어가기는 너무나도 힘들다. 그게 이 앨범의 무서움이다. 분명 필요 이상으로 짜집기를 해버렸지만, 그 기법의 배치는 너무나도 뛰어났고, 사용함에 있어서 뒷받침이 되어야만 하는 Crash 만의 연주 테크닉은 만점짜리는 아니겠지만, 분명히 “예상 할 수 있는 한국 메탈의 레벨” 그 이상의 것이었다. 거기다가 소소하게 얹어진 Crash 만의 오리지널리티들인 안흥찬의 멋진 컬러의 샤우팅, 윤두병의 뛰어난 리프 제조 감각 & 솔로 테크닉, 한국 메탈 역사상 익스트림 메탈 드럼을 처음으로 시도한 인물이자 자신만의 색채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한 정용욱의 난타, 그리고 이 세명의 완벽한 팀웍에 의한 플러스 효과는 무시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결론을 내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시무시한 열정이 최고였다. 무모하지만 어떻게든 좋은 결론을 내리는 한곡 한곡의 좋은 퀄리티는 그것을 대변한다.
그리고 현재 가장 크게 간과 당하고 있는 장점, “완벽했던 프로모션과 피드백” 을 빠지고서 이 앨범을 이야기 할 수는 없지 않나 싶다. Metal Force 가 행한 다소 무모했던 투자는 상상이상의 퀄리티의 한장의 앨범으로 귀결 되었고, 이는 레이블측의 홍보, 메탈팬들의 자발적인 기대심리 증폭이 앨범 발매까지 식지 않고 이어졌다. 그것만으로 놀라웠지만, 더 놀라웠던 것은 마이너한 메탈 사운드의 극치를 담은 이 앨범이 예상을 뛰어넘는 판매고를 기록하며 무려 “메이저 필드급의 성공” 을 낳는데 성공 했다는 것이다. 쓰래쉬 메탈과 같은 마이너 장르의 음악으로 이러한 완벽한 형태의 공급자와 소비자의 피드백이 일어났다는 점은 놀라운 사건이었다. 헤비니스 음악의 제작 로맨스의 열기가 크지는 않지만,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지 않던가? 100%는 아니겠지만 이 앨범의 성공적인 결과가 그러한 제작 흐름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만은 사실일 것이다.
Endless Supply Of Pain 은 말 그대로 이정표였다. 불모지와도 같은 곳에서 처음으로 시도되는 대단한 도전이었고, 대단한 도전을 성공신화로 거두는데 성공한 첫번째 사례로 기록 되었다. 이 앨범부터가 진정 위대한 시작이 아닌가 싶다. 두리뭉실하게 밴드의 형태만 가지고 있으면 모두가 OK 라는 식으로 둘러서 묶는 보편타당적으로 기준의 “락” 이 아닌, 그 음악이 가진 끊임없는 과격성과 파격성을 지닌 컬트함에 어울리는 진정한 “락” 으로의 시작이 이 앨범부터가 아닌가 싶다 이 말이다. 다른 락이 어쨌거나 저쨌거나 상관없다. 좀 더 빠르고 헤비하고 과격한 욕구라는 매우 락 음악적인 본능적인 기준에 어울리는 첫번째 앨범은 Endless Supply Of Pain 뿐이다. 그 전의 것들을 무시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좀 더 명확하고, 제대로, 논할 필요는 있다. 한국의 터프함을 논하는데 있어서 Endless Supply Of Pain 은 진짜배기 시작인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시작은 이 앨범밖에 없다.
- Mike Vill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