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man Is The Earth – Depths (Init, 2014)

Woman Is The Earth – Depths (Init, 2014)

반 기독교주의, 사타니즘, 콥스페인팅, 화염쇼, 칼쇼, 피바다쇼, 교회 방화, 내셔널리즘, 노이즈에 가까운 로우한 프로덕션… 블랙메탈 하면 떠오르는 이러한 특징들은 2014년인 현재에 아직 건재하지만, 90년대 초중반 시절만큼의 “절대 깨어서는 아니되는 불문율” 같은 포스를 지니지 못하고 있다. 대중적인 블랙메탈인 심포닉 블랙메탈의 과도한 상업적 발전상이 심해서? 혹은 그에 대한 반발작용으로 인해 더욱 강력해진 원조급 밴드들, 리스너들, 신규 밴드들의 음악적/사상적 재정비가 있어서? 그리고 그로 인한 “발전이나 변화가 매우 더디게 되어 버리는 반작용” 이 극에 치달아서? 다들 일리가 있는 의견들 이겠지만, 핵심적인 이유는 아닐 것이다. USBM (US Black Metal) 이라는 신규 세력의 강렬한 행보가 이어져서라는 이유가 가장 핵심적인 이유일 것이다. 콥스페인팅과는 전혀 상관없는 인디 로커 비쥬얼, 사타니즘과 북구라파 신화와 전혀 상관없는 문학시적인 가사 테마로 인해 “힙스터 블랙메탈” 이라고 조롱 받고는 있지만, 블랙메탈의 핵심인 격렬한 노이지 태풍을 중심으로 그 거대한 스케일 메이킹과 일맥상통하는 다양한 음악적 장르/스타일을 덧대어 (=엑스페리멘탈리즘, 인디/모던락 중심의 엣모스페릭 코드, 포스트 하드코어, 포스트 락, 고전 프록, 크러스트 펑크, 둠/슬럿지 메탈 등 다양하다.) 블랙메탈이 절대 도달 할 수 없는 새로운 음악의 장을 열어 버리며 “다른 종으로의 진화” 라는 놀라운 결과를 내 놓았기 때문이다. 매우 파격적인 시도라 초기에는 조롱 받았지만, 이런 것들을 시도하던 밴드들의 앨범이 하나하나 쌓이며 발생되는 놀라운 음악적 설득력은 “블랙메탈의 불문율을 깨도 좋을 정도의” 위력이었다. 결국 블랙메탈을 논하는 기준은 극단적으로 변했고, 한차원 발전했다.

2014년에도 그러한 블랙메탈의 재정의는 계속되고 있다. 20년이 넘는 블랙메탈이라는 음악 장르의 아젠다를 찢어 발기고 새로운 시대의 기준을 정의 해 버린 Deafheaven 의 두번째 앨범 Sunbather 만큼 세기적인 강력한 한방은 나오고 있지는 않지만, 조용히 발표되는 USBM 계열의 한장한장은 매우 뛰어난 개성과 음악적 깊이를 지니고 있다. 2014년 전반기가 지난 지금 이 시점에서 돌이켜 본다면, 올해 최고의 새로운 형태의 블랙메탈 넘버원은 Woman Is The Earth 다. 처절할 정도의 농업지대 (=깡촌) 인 미국 중부 사우스 다코다 출신의 블랙메탈 밴드라는 점은 음악에 대해 논하기 전부터 놀랄만한 요소다. 2007년에 3인조로 결성, 지금까지 Of Dirt (2009), This Place That Contains My Spirit (2012) 두장의 앨범을 발표한 바 있으며… 그것이 전부다. 홈페이지는 물론이며, SNS 를 통한 활동조차 매우 미미한, 한마디로 언더그라운드 블랙메탈 특유의 은둔형 활동을 지향하고 있는 팀이기에 지금까지의 활동 내역에 대해 그다지 왈가왈가 할 껀수가 없다. 하지만 음악에 대해서 논하자면 다르다. “실력과 센스가 실종된 사타닉 자위행위” 로 간단히 이야기 할 수 있는 골방 블랙메탈 특유의 불쾌한 음악성 상실과는 매우 거리가 먼, 기발한 아이디어를 통한 개성 창출과 그 개성을 디테일하게 갈고 닦는 노력으로 인한 음악적 깊이가 매우 놀라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꺼내게 되는 흥미진진한 밴드이기 때문이다.

2014년작이자 3번째 풀렝스 앨범인 Depths 는 2010년대에 이르러 폭발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블랙메탈의 파격적인 대변신을 논하는데 있어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 갈 작품이라고 단정지어 버려야 옳을 정도의 강렬한 위용을 자랑하는 앨범이다. 일단 이 앨범은 기본적으로 USBM 의 기본 프레임에 매우 충실하다. 고전 블랙메탈이 지닌 격렬한 메탈 배킹과 블라스트 비트의 콤보,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지는 거대한 노이즈 덩어리와 연결되는 엑스페리멘탈리즘/엣모스페릭코드 장르들과의 연계를 행하고 있다. 그리고 그 연결 시키는 이들만의 노하우를 통해 창출되는 개성은 엄청난 임팩트를 자랑하며, Woman Is The Earth 의 오리지널리티와 호평의 원동력이 된다. 엣모스페릭 블랙메탈로 정의 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장르적 특성에 매우 딱 들어맞는 사운드를 전개 하면서도, 엣모스페릭 블랙메탈은 물론이거니와 그 코드를 지닌 모든 종류의 메탈 카데고리에 둘 수 없는 기발한 것들을 다양하게 작렬 시키며 자신들의 개성을 한껏 발휘한다. 탈-익스트림 메탈적 엣모스페릭/엑스페리멘탈리즘 추구는 본작 Depths 에서 부터 본격적으로 시도되는 새로운 노선이기도 하다. 모던락/인디락 뿌리의 엑스페리멘탈리즘, 포스트락, 드론 락 등 다양한것들을 시도하며, 블랙메탈이라는 뿌리에 매우 잘 적용 시키고 있기도 하다. 텍스쳐만 적용 시킨것이 아닌, 자신들만의 재해석을 통한 개성 창출의 딥한 부분도 빼 놓을 수 없는 특징이기도 하다.

이러한 탈-블랙메탈적 방법론은 Deafheaven 의 Sunbather 앨범에서 가장 극단적으로, 그리고 완벽하게 귀결 시켰기에 & Depths 의 방법론 역시 그러하기에 이 앨범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져 보일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렇지 않은 모양새로 귀결된다. Sunbather 가 블랙메탈이 얼마나 모던한 변화를 할 수 있냐에 매달렸다면, Depths 는 거기에 고전/정통 블랙메탈에 충실하느냐에도 충분히 공을 들이고 있다. Depths 는 정통적인 면모와 파격적인 면모, 그 두가지의 배율을 조절하는 감이 뛰어나며, 정통 블랙 사운드와 탈-블랙 사운드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은 고차원의 브릿지 메이킹의 실력/감각은 정말 경이로울 정도다. 장르 특성적 밸런싱 뿐만이 아니다. 서정성과 야만성, 엑스페리멘탈리즘 특유의 추상적 이미지 메이킹과 익스트림 메탈 특유의 선굵은 직선밍의 공존과 같은 사운드 특성적인 부분의 공존-연계-밸런싱의 센스도 매우 경이로운 레벨이다. 10여분의 긴 러닝타임을 지닌 3곡이 전부이며, 3곡 모두 서서히 차분하게 분위기를 빌드업 시키며 곡을 진행 시키지만, 그 차분함안에 수많은 장르적 특징 – 사운드적 특징 – 분위기적 특징이 쉴 새 없이 변화무쌍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돌려댄다는 점은 조용히 숨겨졌지만, 가장 무서운 면모라 할 수 있을 것이다.

Woman Is The Earth 의 본작 Depths 는 꽤 의미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USBM 이라는 새로운 블랙메탈의 특징을 십분 보여주면서도, 타 밴드와는 다른 방법론과 사운드적 특징을 자신만만하게 내세우고, 뛰어난 완성도와 개성으로 귀결 시키며 새로운 방법론 안의 또 하나의 새로움을 꽤나 의미심장하게 만들어 내는데 성공한 앨범이기에 그러하다. Deafheaven 의 Sunbather 만큼 블랙메탈 애호가 카데고리를 넘어, 모든 음악씬에 충격을 주는 레벨까지는 못 되지만, 분명한것은 새로운 블랙메탈의 상승곡선의 각도를 가파르게 만드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는 앨범이다. 블랙메탈 카데고리 안팍으로 은은하고도 깊은 파장을 요주의 앨범 되겠다. 더불어서 본작 Depths 에서 보여주는 발전상과 개성 창출의 강도는 Deafheaven 에 이어 가장 큰 충격을 줄 밴드 1순위가 되는데 부족함이 없기도 하다. “변화의 2막이 열릴것인가?” 하는 기대를 하게 만들 정도다. 블랙메탈의 파격적인 변화에 큰 감흥을 받았다면, 이들의 Woman Is The Earth 를 기억하라. 그리고 2014년 신작 Depths 을 심도있게 탐구 해 두는것이 좋을 것이다. 새로운 시대가 또 올 것이니까.

- Mike Villain


Child Of Sk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