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ter – The Sun Comes Out Tonight (Wind-Up, 2013)
“현재의 헤비 음악씬 전반에서 Richard Patrick 이라는 이름이 거론 된 적이 있는가?” 라는 질문부터 던져 보겠다. 아마도 그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만큼 그는 잊혀진지 오래다. 하지만 Richard Patrick 라는 인물은 90 인더스트리얼 메탈을 논하는데 있어서 빠질 수 없는 아이콘과도 같은 존재다. 그는 Nine Inch Nails 의 데뷔작 Pretty Hate Machine (1989) 과 Broken (1992) 에서 맹활약 한 인물이었고, 에고 그 자체인 Trent Reznor 밑에서는 자신의 음악적 욕심을 펼칠 수 없음을 판단 하자마자 밴드를 과감히 탈퇴 (세기의 명반이라고 알려진 The Downward Spiral 의 제작 도중에 나갈 정도로 베짱 두둑했다), Brian Liesegang 라는 인재와 함께 Filter 를 결성하며 본격적인 자신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밴드는 결성과 동시에 메이저 레이블 Reprise 와 계약 할 정도로 업계의 핫이슈 밴드였고, 그 기대속에 발표 된 데뷔앨범 Short Bus (1995) 는 Nine Inch Nails, Ministry 다음으로 거론되야 할 정도의 90년대 인더스트리얼 메탈의 이정표 그 자체일 정도의 뛰어난 음악적 결과를 보여주었고, (굉장히 늦은 텀을 가지고 나온 앨범이기는 하지만) 두번째 앨범인 Title Of Record (1999) 는 인더스트리얼 메탈이 얼마나 대중적으로 변화하고, 그와 동시에 긍정적인 인상을 심어주는지에 대해서 극을 보여주며 음악적 변화와 상업적 성공을 동시에 이뤄내는데 성공했다. 그런 업적을 달성 해 낸 Richard Parrick 은 Nine Inch Nails, Ministry, White Zombie 와 왕좌를 다루는 90년대 아이콘으로 완벽히 자리매김 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 성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3번째 앨범이자 인더스트리얼 메탈의 포스트 그런지의 영역까지 확장/도전한 The Amalgamut (2002) 이 뉴메탈/모던헤비니스씬의 몰락 & 포스트 그런지에 대한 대중의 음악적 악의의 정점을 기록하던 시기에 나왔고, 그와 동시에 예전의 앨범들에 비해 Filter 만의 90 인더스트리얼 메탈적인 색채가 너무나 희박하여 평론적으로 된서리를 맞았고, 그 여파로 판매고마저 눈에 띌 정도로 떨어지며 밴드는 화려한 성공 후 쓰디 쓴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게다가 Richard Patrick 은 약물중독 문제도 있었고, 자발적으로 재활시설에 들어가는 등 악재가 이어졌고, 결국 Filter 는 해산하게 된다. 그 후 Richard Patrick 은 Limp Bizkit, Nine Inch Nails, A Perfect Circle 멤버와의 프로젝트 밴드 The Damning Well 을 시작하지만 그저 영화 Underworld 사운드트랙에 쓰인 한곡만 남기고 흐지브지 사라졌으며, Stone Temple Pilots 의 멤버들과의 새 밴드 Army Of Anyone 도 시작 했지만 이 밴드 역시 한장의 앨범만을 내고 해산하며 오래가지 못했다. 그렇게 Richard Patrick 는 서서히 잊혀지기 시작했다.
Richard Patrick 는 2007년에 다시 Filter 를 재결성 했다. 재결성에 대한 반응은… 처절할 정도의 무반응 그 자체였다. 그러나 Anthems For The Damned (2008), The Trouble With Angels (2010) 라는 작품이 하나 하나 나오면서 Richard Patrick 은 자신이 지닌 재능을 멋지게 재증명 하기 시작한다. 2000년대에 혁신적인 메탈, 하드코어 및 수많은 헤비니스 음악이 마구 등장하여 Filter 의 신작들은 거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지만, 재결성 후 발표한 두 작품은 Filter 의 러프한 1집과 2집의 대중성을 모두 보여주는 동시에, 2000년대에 어울리는 적절한 혁신성의 추가 및 어레인지가 잘 어울러지는 의외의 쾌작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음악적인 탄탄함 덕에 변변찮은 레이블도 없던 Filter 는 포스트 그런지 전문 레이블이자 상업적 락 음악을 팔아 먹는데 일가견의 끝을 보여주는 레이블 Wind-Up 과의 딜을 성사하게 된다. Richard Patrick 은 10여년의 외롭고 힘든 투쟁을 끝내고 다시 메이저 필드에 돌아오게 된 것이었다. 10여년만의 메이저 필드 복귀작, 통산 6번째 앨범인 The Sun Comes Out Tonight 는 그렇게 발표 되었다.
The Sun Comes Out Tonight 은 재결성 후 놀라운 음악적 쾌진격을 해 온 Filter 의 정점을 찍는 앨범이다. 이 앨범은 지금까지 해 온 Filter 의 모든 음악적 특징의 총정리, 그리고 그와 동시에 예전과는 다른 새로움을 시도하고 매우 놀라운 퀄리티로 귀결 시키며 Filter 라는 밴드가 새로운 개념으로 다시 시작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본작은 데뷔작 Short Bus 로 대표되는 90 인더스트리얼 메탈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러프한 사운드, 그리고 두번째 앨범 Title Of Record 에서의 캐치한 사운드의 인더스트리얼 메탈의 장점을 동시에 추구하며 Filter 의 과거를 총집결 하고 있는것이 가장 먼저 귀에 들어온다. Short Bus 의 캐치한/대중적인 어레인지의 앨범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와 동시에 다이내믹함과 파워풀함이 한껏 강조 된 Title Of Record 라고 할수도 있을 정도로 두가지의 특징이 기가 막힌 밸런스로 융합되어 있으며, 이는 일단 이 앨범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이자 장점이 된다. 거기에 과거의 Filter 와는 다른 새로움이 추가되며 앨범은 더욱 더 명작의 영역까지 나아간다.
재결성 후 발표한 두장의 앨범에서 Filter 는 2000년대 초반부터 2013년의 현재까지의 테크노/일렉트로닉스, 정확히 말해서 헤비니스 음악 & 인더스트리얼 메탈에 어울릴법한 테크노/일렉트로닉스를 도입하고, 그것을 밴드의 색채에 어울리게 어레인지 시키려는 노력에 꽤나 매진했다. 이렇게 탄생 된 새로운 Filter 의 사운드는 재결성 시기의 무관심을 은근한 언더그라운드씬의 호평과 메이저 레이블로의 복귀를 화려하게 해 낸 바 있을 정도로 새로운 것이었다. 본작에서는 그러한 시도가 좀 더 본격적으로, 그리고 파격적으로 행해진다. The Prodigy 로 대표되는 2000년대 초반의 헤비한/헤비니스와 어울리는 테크노는 물론이거니와, 최근 테크노계의 새로운 화두이자 이 역시 헤비한 사운드에 그럴싸하게 어울리는 덥스텝과도 같은 장르도 과감하게 시도한다. 그저 적절히 그럴싸한 특징만을 끌어다 땡겨쓰는 저질 어레인지가 절대 아니라는 점은 중요하다. 밴드는 재결성 앨범부터 “테크노/일렉트로닉스 음악의 Filter 화” 라는 과감한 도전을 행했고, 예상보다 매우 높은 음악적 결과를 내 놓는데 성공했다. 신작 The Sun Comes Out Tonight 은 그 부분에 있어서 더욱 과감하게 시도했고, 더욱 뛰어나게 결론 짓는다. 본작에서 귀 귀울여야만 하는건 헤비한 기타의 넘실거림만이 아니다. 양질의 테크노 사운드로의 도전도 귀 귀울여야 할 정도다. 그리고 두가지의 놀라운 융합과 화학반응도 빠질 수 없다. 레벨이 다르기 때문이다. 인더스트리얼 메탈이 두세물이나 간 2013년의 관점으로 꽤 냉정하게 바라봐도, 꽤 놀라울 정도로 혁신적인 융합체를 만들어 냈다는 점은 이 앨범의 진정한 하일라이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The Sun Comes Out Tonight 는 한마디로 쾌작이다. 밴드 역사를 따져 본다면 최고의 결과물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생존을 논해야 할 시점에서 밴드는 앞으로의 변화상을 어찌 잘 이어가야 할 것인가 하는, 한마디로 “전성기에나 어울릴법한 도전과 고민을” 시원 시원하게 행하고 있다. 매우 놀라운 결과물들로 말이다. 왕년의 사운드를 모두 보여주는것만으로도 칭찬감인데, 이들은 “인더스트리얼 메탈을 어떻게 더욱 새롭게 만들것인가?” 에 대한 명제에 대해 몰두 하고 있고, 결과물도 대단하니… 가희 놀라울 따름이다. 특히 도전의 결과물의 퀄리티가 상상 이상이라는 점은 귀 귀울일만 하다. 매우 혁신적이다 라고는 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히 인더스트리얼 메탈 역사에 있어서 새로운 이정표가 되고도 남을 정도로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는 점은 중요하다. 무섭게 치고 올라오던 2000년대 인더스트리얼 메탈 영건들 (Mnemic, Raunchy 등등) 들도 침체기인데,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는게 정상인 노장 & 한물간 위치의 Filter 가 이정도까지 해 준것은 이 장르의 위기를 타파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 앨범에 대해서, 이 밴드에 대해서 확실하게 해 두어야만 할 것이다. Filter 라는 밴드의 존재와 The Sun Comes Out Tonight 라는 앨범은 인더스트리얼 메탈의 매너리즘을 타파 하는데 큰 기여를 한 2013년의 이정표라고 말이다. 특히 90년대 초중반에 있었던 인더스트리얼 메탈 열기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이 앨범에 대해 반갑기 그지 없을 것이다. 그 당시 그 바이브를 완벽히, 그리고 더욱 새롭게 들려주기에 말이다. 격동의 90년대를 살았던 헤비니스 애호가라면, 올해 반드시 경험해야만 할 것이다.
- Mike Vill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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