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oges – Fun House (Elektra, 1970)

The Stooges – Fun House (Elektra, 1970)

60년대 락음악은 그러했다. 블루스를 좀 더 헤비하게, 좀 더 자유롭게, 좀 더 장황하게, 좀 더 즉흥적으로, 좀 더 극적으로, 좀 더 서사시 스럽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거기에 타고난 자들이 아니면 낼 수 없는 천재적인 감각들이 들어갔다. 그리고 그보다 더 좋은 레벨의 기발함을 내기 위해 필연적으로 다양하고도 많은 양의 약물들의 힘을 빌리기도 했다. 흔히 말하는 사이키델릭/히피 음악/잼밴드 음악은 그렇게 흘러갔고, 60년대를 대표하는 락음악 및 밴드 음악의 스타일로 자리매김 했다. 지금이야 펑크락의 화신으로 불리우는 Iggy Pop 역시 그러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와 문제점이 있었다. 그의 밴드 The Stooges 와 그러한 60년대 밴드 스타일의 정점인 The Doors 의 음악 구사 방식은 너무나도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양한 이유들 중 하나이자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The Doors 가 “살기 좋다못해 방종을 할 수 밖에 없는 안정적인 경제력과 좋은 날씨의 중산층 밀집지대인 캘리포니아 출신” 인 반면, The Stooges 는 “지금까지도 빈민층이 주가되는 공업도시의 이미지를 지닌 지역이자, 자동차 생산지라는 이유로 Motor City 라고도 불리우지만, 미국 역사상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막장 치안과 살인사건이 무지막지하게 일어 났기에 Murder City 라고도 불리웠던 디트로이트 출신” 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면 The Stooges 는 다양한 관점으로 철저하게 외면당한 밴드지만, 지극히 60년대 밴드 스타일을 지향한 그 시대의 스탠다드이기 때문이다. “펑크의 시조” 와 더불어서 높게 평가 받아야만 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망한 60년대 스탠다드, 망할 수 밖에 없었던 60년대 컬트” 인 The Stooges 는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해야만 옳기 때문이다.

결국 장수하는 거물이 되지 못하고 빨리 사라졌지만 Deep Purple, Led Zeppelin, Black Sabbath 와 같은 급으로 평가받고 있는 펑크의 청사진이자, 고전 하드락/블루스 밴드 중 가장 파괴적이고 라우드한 사운드, 그리고 60년대 히피즘의 상징인 자유와 평화에 반대되는 급진적인 체제붕괴/혁명노선을 울부짖던 밴드로 이래저래 위험한 밴드로 악명 높았던 MC5 의 소문을 들은 Elektra 레이블 담당자들이 그들과 계약하기 위해 디트로이트를 방문 할 때, 그때부터 The Stooges 의 전설은 시작된다. MC5 의 오프닝을 섰던 The Stooges 는 MC5 와 계약을 하러왔던 레이블 담당자들의 눈길을 바로 끌게 되고, 이래저래 재수좋게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좋지 않은 시작이자 결론으로 나아가고야 만다. Iggy Pop 이 리드하는 파괴적이고 자학적이지만, 한번보면 빠져 들 수 밖에 없던 카리스마가 아무리 강해도 대중적 힛트까지는 무리였기 때문이다. 데뷔작 The Stooges (1969) 는 자작곡도 부족한 위치의 밴드에게 레이블측의 무리한 요구가 더해진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좋은 내용을 담았지만, 그 시대의 히피 친화적인 나긋한 이상주의를 뚫고 성공하지는 못했다. 레이블은 그들에게 무리한 상업적 성공의 미션을 부여하려 머리를 짜냈고, 적임자라 생각한 Don Gallucci 에게 그들을 통솔하여 좋은 앨범을 만들게 했다. Don Gallucci 는 높으신 분의 특급 지령을 받았지만, 실은 X-맨 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된다. 그는 락커빌리 시대의 밴드이자, 그 시대상을 대표하는 Elvis Presley 의 충격보다 몇십배는 강력한, 아니 파괴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다고 전해지는 컬트 락커빌리 밴드 The Kingsmen 출신이었다. 출신답게 Don Gallucci 는 힛트 따위 상관하지 않았다. 그의 목표는 “앨범에 담기가 불가능한 The Stooges 의 광기를 어찌 앨범에 넣을 것인가” 뿐이었다.

냉정하게 말해서 격렬한 60년대식 사이키델릭 블루스를 담은 그들의 데뷔작은 The Stooges 라는 밴드에게 있어서 잘못된 결론이었다. 물론 그들만의 미치광이적 블루스는 개성이 넘쳤지만, 라이브에서 보여주는 에너지와 광기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다. Don Gallucci 는 알고 있었다. 밴드의 프론트맨 Iggy Pop 은 낡아빠진 청바지 한장만 입고 빼빼마른 근육질 몸을 이리저리 배배꼬고, 땅바닥을 개처럼 기고, 개처럼 짖었으며, 필이 충만하다 싶으면 마이크줄로 자기 목을 조르고, 유리병을 깨서라던지 손톱을 이용해서 자기 몸에 자해를 해서 관객으로 하여금 피를 보게 만들었으며, 개처럼 기다가 필 오면 여성 관객의 부츠를 핥기도 하고, 크라우드 서핑을 하다가 땅콩 버터를 몸에 바르고 관객에게 던지기도 하는 등 관객들에게 대단한 충격을 주었던 인물이란걸 말이다. 또한 사운드 역시 그러한 광기에 걸맞게 타 밴드의 음악보다 심플한 리프와 구성, 그에 걸맞는 단순하고 격렬한 리프의 반복 등 공격성에 편집증적으로 탐닉하는 굉장한 사운드를 들려 주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들은 고상한 천재-약쟁이 히피 락커들과는 달랐다. 시궁창 치안의 도시 디트로이트에서 그런가 가능 할 리 없다 이거다. The Stooges 는 60년대 락앤롤을 로컬라이징 한 대표주자이자 파이오니어였다. Don Gallucci 는 그러한 것을 새 앨범에 담으려 노력한다. 그는 스튜디오에 밴드를 넣어두고 작업하지 않았다. The Stooges 가 활동하는 라이브 무대가 있는 동네와 별 반 다르지 않은 변두리 싸구려 호텔을 잡았고, 거기에 무대를 마련하고 밴드로 하여금 라이브를 한다 생각하고 해 보라고 했다. Don Gallucci 는 자기가 알아서 그것을 녹음물로 캐치 할 작정이었다. 거기다가 그는 The Stooges 에게 공연전의 준비서부터 뒷풀이까지 다 하도록 요구했다. 이들은 보통 공연때와 마찬가지로 셋팅을 하고, 구석진 곳에서 약물과 알콜에 자신들을 푹 절여대고, 가끔 싸구려 창녀들과 몸을 부대끼며 프로듀서의 요구에 제대로 응했고, 가장 하이 (High) 한 그때에 파괴성 넘치는 퍼포먼스까지 완벽하게 곁든 연주를 행했다. 수많은 세션을 행했고, 그 중에서 가장 좋았던 세션을 담았다. 그것이 Fun House 이란 라이브 앨범스러운 스튜디오 앨범이 되었다.

음악적인 것은 별로 없다. The Rolling Stones 의 블루스적 재해석, The Doors 의 연극적/퍼포먼스적 요소, Sly And The Family Stones 과 같은 적절한 흑인 밴드적/그리고 그다운 약물적인 요소를 적절하게 이용했을 뿐이다. 그러나 캐릭터적인 이야기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확연히 달라진다. 이 앨범은 얼마나 블루스/락앤롤의 거친 면모를 편집증적 레벨로 극단화 하면 어떠한 괴물이 탄생하는지에 매진하는 괴작이다. 리프는 심히 심플하지만, 블루스/락앤롤적인 마쵸적 맛을 바로 쥐어 짜 내는 직빵효과적 필을 내세우고 있다. 또한 그러한 맛을 죽이는 다양한 연주 패턴을 장황하게 펼쳐내지 않고, 사람이 돌아 버릴 정도로 반복해서 때려댄다. 그러한 최면적 맛에 Iggy Pop 이 올라간다. 그는 그러한 로우 (Law) 하고 코어 (Core) 한 블루스/락앤롤을 타고서 음습하게 읖조리기도 하고, 노래를 포기하고 미친놈 마냥 비명을 질러대기도 한다. 보컬리스트의 재능보다는, 일종의 퍼포먼서로서의 이미지로 다양한 느낌의 광기를 내지른다. 그 결과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약과 광기와 소음에 찌든, 그리고 그러한 것이 너무나도 어울리는 막장도시 디트로이트에 걸맞는 락앤롤이 탄생 되었다. 그게 다일까? 그게 전부다. 하지만 이 앨범에서 보이는 광기의 카리스마는 너무나도 새로운 것이었고, 2012년인 지금에도 충분히 먹힐 정도로 군더더기 없는 “락 음악의 진수” 이기도 했다. 이러한 굉장한 컬트적 개성은 영국의 Black Sabbath 에 대항하는 미국의 최종병기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 않을까나?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말하고 싶다. 여하간 이 앨범이 얻어 낸 찬사가 어느 정도인지는 다들 알고들 있을 것이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더 중요한 이야기가 많다. 그 이야기나 이어가도록 하자.

하지만 이 앨범은 전혀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사장된다. 생각보다 엄청나게 처참하게 말이다. 이 앨범은 음악 천재성, 이상주의자, 사교집단 교주와도 같은 히피 시대의 그 모든것과 정반대였다. 이들은 막장도시의 막장 약쟁이/미치광이/불량배 그 자체였고, 디트로이트 락 씬의 소수의 죽돌이를 제외하고는 철저하게 사장되고 무시 되었다. 이 앨범은 청년문화의 전부인 히피에게 먹힐만한 구석이 전혀 없었고, 당연하고도 빠르게 그리 되었다. 그리고 이는 예견된 것이었다. Iggy Pop 은 훗날 이 앨범에 대해 “Fun House 만들때 인터뷰 요청이 한건도 없었지…” 라는 코멘트를 남겼다는 점을 예로 든다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게다가 그당시에 있었던 The Rolling Stones 의 알타몬드 공연 사고로 인한 락 음악에 대한 사회적 여론은 더더욱 이들을 궁지로 몰아 넣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여하간 프로듀서 Don Gallucci 는 X-맨으로의 역활을 제대로 해냈다. 그를 믿었던 Elektra 는 통수를 제대로 맞게 된 것이다. 레이블은 이들을 Columbia 에게 (적절히 속여서 팔아 넘겼고, 그들은 Iggy Pop 과 의외의 친분을 지닌 David Bowie 를 구슬려서 밴드에게 붙여 차기작 Raw Power (1973) 을 만들게 했지만, 결국은 이보다 더 시끄럽고 혼돈적이며 수습불가의 앨범이 나오며 또 한번의 통수를 기록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였다. 레이블은 과감하게 밴드를 내쳤고,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한채 술과 약물에 쩔어 살던 밴드는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그렇게 희대의 명 밴드는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Iggy Pop 은 극적으로 부활했고, 힛트와 멸망과 부활을 매우 정확하게 번갈아 가면서 지금까지 아이콘으로 살아오고 있다! 이는 나중에 기회되면 하도록 하자!) 그게 끝인가? 그럴리가 있는가? 후폭풍이 엄청난데 어찌 이야기를 아니 할 수 있겠는가?

여하간 The Stooges 는 처절하게 망하고 사라져 갔지만, 이 앨범은 2012년인 지금까지 대단한 락 음악의 자양분으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 매우 다양하게 말이다. 60-70년대 히피들의 아티스트 놀음으로 인해, 더 이상 그들의 빈민가들의 젊은이들을 대변하지 않는 새로운 권력자들이라는걸 안 새로운 시대의 젊은이들은 락앤롤과 블루스의 원초적인 그것으로 돌아가면서도 새로운 스타일을 지닌 음악을 원했고, 그것은 펑크가 된다. 그리고 그러한 펑크의 탄생에 있어서 엄청난 자양분이 된 것들 중 하나는 The Stooges 였다. 또한 펑크와 일맥상통하는 마인드의 온갖 미치광이 음악들이 이들의 음악에 영향을 받았다. Ramones 나 The Damned 같은 70 펑크, Black Flag 과 같은 80년 하드코어는 이들의 음악적 스타일과 Iggy Pop 이 보여준 락 음악 첫번째의 광기적 캐릭터에 큰 영향을 받았다. Henry Rollins, Marilyn Manson 은 절대 이들의 영향력을 벗어 날 수 없을 정도다. (개인적으로는 The Stooges 에 의해 탄생 된 광기가 Converge 와 같이 정말 먼 장르/스타일까지 왔다고도 말하고 싶다.) 미치광이 캐릭터로써의 독특한 연기는 The Birtyday Party 와 같은 밴드와 이어졌고, 자연스럽게 Nick Cave And The Bad Seeds 의 불경하고 불편한 소재로도 이어지기도 했다. 2000년대 있었던 개러지 리바이블 역시 “락앤롤 본질로의 회귀” 였기에, 이 앨범을 지나 갈 수 없다. The Stooges 를 커버한 밴드들이 숨막힐 정도로 많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 The Damned, Rage Against Machine, Guns N Roses, Depeche Mode, The Birthday Party, Red Hot Chilli Peppers, John Zorn 등 수많다.

또한 녹음 방식에 있어서도 엄청난 것을 남겼다는 점도 중요하다. 라이브 무대처럼 꾸미고, 그 무대에서 나오는 소리를 그대로 담는 방식은 파격 그 자체였고, 파격적인 행태만큼 “라이브적인 광기를 제대로 담는데 성공” 이라는 결과물은 훗날 많은 똘기 넘치는 프로듀스 스타일을 탄생하게 한다. 많은 수의 앰프를 이용하거나, 보컬리스트에게 직접 마이크를 쥐고서 부르게 한 녹음 방식은 훗날 그 특유의 라이브적 느낌 및 공간감에 편집증적 태도로 매진하는 Flood 나 Steve Albini 같은 양반들에게 큰 영향을 주게 되었고, 그들이 90년대의 다양한 펑크/하드코어, 그런지/얼터너티브 및 다양한 헤비니스 사운드의 개성을 극대화 시켰다는 점에서도 이 앨범 Fun House 의 위상은 위대하다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앨범의 기상천외한 녹음 방식은 본격적이건, 부분 차용적이건 다양한 장르에 크게 이용되고 있지 않던가? 이 정도면 진정한 파이오니어급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앨범인 것이다. 그동안 Fun House 는 너무나도 많이 “펑크락 명반” 으로써의 가치로만 평가되어 왔다. 하지만 이 앨범의 가치와 장점은 너무나도 많다. 60년대 스타일의 진수를 보여주면서도, 60년대 스타일을 가장 많이 엿 먹이기도 했고, 락앤롤/블루스 역사상 가장 격렬하고 삐뚫어진 캐릭터를 만들어 냈다. 락 음악 역사에 있어서 첫번째의 컬트 클래식으로도 이야기 할 수 있으며, “아티스트가 언제 어디서 왔냐에서 많은것이 좌우된다” 라는 점도 제대로 알려주기도 한다. 녹음방식의 파격성과 보컬리스트의 퍼포먼스에 대해서도 대단한 청사진을 제공하기도 했다는 점 또한 빠질 수 없다. 2012년인 지금에서도 이 앨범 덕을 보는 경우가 어마어마 하다. 이 앨범은 진정한 명반인 것이다. 우리가 죽을 때까지, 그리고 죽어서도 여전히 미친 앨범으로 많은 사람들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데 부족함이 없으니 더더욱 추앙 받아야 옳을 것이다!

- Mike Villain


T.V. Ey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