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ackest #12] Deep Purple – Made In Japan (Warner Bros, 1972)

[The Blackest #12] Deep Purple – Made In Japan (Warner Bros, 1972)

모든 종류의 헤비한 음악을 논하는데 있어서 원류가 어디고 누구인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찾아본다면, 꽤나 시대를 앞서간 파이오니어들이 많지만, 결국 세 밴드로 압축됨을 어렵지 않게 알 수가 있다. Black Sabbath, Led Zeppelin, Deep Purple 이렇게 셋으로 좁혀진다는 말이다. 영향력에 있어서는 Black Sabbath 가 최고이며, 뮤지션쉽적인 가치를 따져 본다면 Led Zeppelin 이 최고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Deep Purple 같은 경우는 헤비 뮤직의 원류 빅3 중 하나로 인정 할 수 밖에 없지만, 그와 동시에 앞의 두 밴드에 비해 저조한 후세에 대한 영향력과 꽤 잦은 멤버 체인지로 인한 음악 스타일의 큰 변화로 인해 “헤비 음악을 논하는데 있어서 다소 과대평가 된 느낌도 있다” 라며 조금 짜게 평가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봉착하기도 한다. (Deep Purple 을 빼 버리고 Motorhead 를 넣는것이 더 신빙성이 있다고도 사료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Deep Purple 은 원조 헤비니스 빅3 중 하나임에 틀림이 없으며, Black Sabbath 와 Led Zeppelin 보다 뛰어난 부분도 존재 하기도 하며, 사운드적인 영향력은 적지만 방법론적인 영향력에 있어서는 절대적이다.” 라는 이유가 너무나 강하기에 이들을 인정 할 수 밖에 없기도 하다. 여러가지 근거가 있겠지만, 그 중 최고는 바로 Made In Japan 이라는 앨범이라 할 수 있다. 어디서 많이 듣던 풍월적인 이 앨범의 장점을 다시한번 읊어보는 가운데, 그 풍월이 읊어지던 시절 이후에 이 앨범의 영향력에 대해서 새로이 갱신된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자.

Deep Purple MK.II 로 명명된 2기 라인업은 (Ritchie Blackmore, Jon Lord, Ian Paice, Ian Gillan, Roger Glover) Deep Purple 하면 떠오르는 헤비함, 테크니컬함, 스피디함, 블루지함, 스케일의 거대함을 완벽하게 만들었던 시기였다.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라이브 앨범이자, 모든 종류의 락 밴드 + 오케스트라 포맷의 시초이자 최고라 할 수 있는 Concerto For Group And Orchestra (1969), 밴드 역사의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던 3연작 Deep Purple In Rock (1970), Fireball (1971), Machine Head (1972) 가 이 시기에, 그것도 바로 & 차례대로 & 쉬지않고 줄줄이 발표 되었다. 어마어마한 음악적 위용을 자랑한 Deep Purple 은 70년대 초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최고의 아티스트로 등극했고, 이 쾌조의 음악적 행보에 대한 (그 당시에는 꽤 의외였던 나라인) 일본이라는 나라의 애정은 너무나도 남달랐다. 일본측은 Deep Purple 에게 “방일을 해서 라이브를 행하고, 그 실황을 녹음하여 일본 전용 라이브 앨범을 내 달라” 라고 요청했다. 일본내에서의 판매고가 꽤나 강렬했다는 점 하나만으로 Deep Purple 은 그 조건을 승낙했고, 그렇게 3회의 공연 스케쥴이 잡히게 되었다. 1972년 8월 15일과 16일에 오사카 페스티벌 홀에서 2회, 8월 17일에 도쿄 부도칸에서 1회 공연으로 말이다. 티켓은 놀라우리만큼 빨리 팔려나가 매진이 되었고, Deep Purple 측은 생각보다 일본에서의 공연이 꽤나 심각하게 돌아갔음을 인지했다. 그리고 공연을 하기 위해서 방문하자, 정계의 국빈 방문을 방불케 하는 열렬한 환호를 받았고 그 생각을 더욱 더 확고히 다지게 만들었다.

그 다음은 다들 아는 이야기들이 펼쳐졌다. 이제 Deep Purple 에 있지는 않으나 지금까지도 밴드 내 1인자로 거론되는 Ritchie Blackmore 의 어마어마한 기타 플레이, 그에 단 한번도 지지 않으려는 또 다른 1인자 Jon Lord 의 엄청난 키보드 맞불, 그렇게 탄생되는 두 멤버의 지독하리만큼의 음악적 에고의 전면전은 이 앨범의 유명세의 근간이 된다. 그리고 그 밴드 내에서의 음악적 대혈투를 근사하게 받쳐 주면서도, 자신의 차례가 오면 여지없이 두사람 못지않은 괴물같은 연주를 보여주며 얕잡아 볼 수 없는 아우라를 만들기도 하는 나머지 세 멤버들의 명연 역시 두 리더들의 에고 전면전에 버금가는 음악적 파괴력을 선사했다. Ritchie 와 Ian 의 주거니 받거니 하는 테크닉 대방출은 수많은 혁신적 연주 테크닉의 등장과 발전이 행해진 2014년에 바라봐도 경이로우며 각 플레이어들의 테크닉을 기반으로 평균 10분 이상, 짧게 행해도 6분대, 작정하고 하면 20분에 육박하도록 곡의 덩치를 크게 만드는 즉흥적 플레이의 과감한 추가를 통해 만들어지는 어마어마한 뮤지션쉽적 위상은 앨범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이 앨범만의 묘미를 선사 하기도 한다. 엄청난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한 틈을 주지 않는 굉장한 몰입력을 자랑하기도 한다는 점 역시 대단한 부분이기도 하다.

이러한 라이브에서의 장거리 어레인지는 70년대의 수많은 하드락, 사이키델릭, 프록 밴드들이 행한 것이지만, 이 앨범만큼 공격적인 부분과 예술적인 부분, 테크닉적인 부분 등 모든 부분에서 타 밴드들보다도 앞서는 굉장함을 보여준다는 점 역시 이 앨범의 차별성이자 위대함 되겠다. 그밖에 다 알만한 풍월에는 라이브 행하기 이전부터 레이블과 나름 강하게 대립하며 내세운 “라이브 레코딩 및 앨범 제작 과정은 우리가 선점한 인물이 해야한다” 라던지, 녹음 후 스튜디오에서의 후보정이나 오버더빙과 같은 추가 녹음 없이 바로 믹스만 해서 발매하여 Deep Purple 이 지닌 음악적 에고의 정점을 기록 했다는 점, 극단적인 실력으로 모든걸 해치웠기에 제작비가 3000달러 밖에 들지 않았다는 점, 보컬 Ian Gillan 이 그날 최악의 컨디션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에 길이 남는 명 퍼포먼스를 보여 주었다는 점, 3일간의 하일라이트를 담았지만 너무나도 크고 긴 인기를 자랑하여 3일간의 공연 음원이 3장의 음반으로 특별히 재발매 되었다는 점, 셀 수도 없는 다양한 버전으로 재발매를 행하며 계속 똑같은 물건을 사게끔 만드는 컬트함을 만들어 냈다는 점 등등이 있다. 대체적으로 한국에서는 이러한 이야기로 끝이나는 모양새이다. 과연 그게 다일까? 아니다. 이 앨범은 아저씨 하드락/메탈 팬들을 위한 앨범이 아닌, 모든 세대가 반드시 공부 해야만 교재로써의 요소가 너무나도 많다. 이 앨범이 지닌 더 많은 장점들에 대한 썰 업데이트는 필수 되겠다. 자 그럼 또 신나게 풀어보자.

이 앨범이 지닌 최고의 가치는 “반론불가의 퍼포먼스” 다. 하지만 그 가치만큼 “헤비함의 기준의 레벨업” 역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Deep Purple 은 그 당시 Black Sabbath, Led Zeppelin 과 더불어서 “헤비한 음악” 의 시작이 되는 음향 효과를 제대로 보여주는 밴드였다. 하지만 그 당시의 많은 밴드들은 라이브에서의 헤비함을 레코딩에 그대로 옳기지는 못하였다. 녹음 장비들이 버티지를 못했기 때문이었다. 스튜디오 녹음 장비들에 폭발 위험을 알리는 경고등이 늘 들어 올 정도로 녹음해도 라이브에서의 헤비함/라우드함을 기기적 한계로 인해 제대로 끌어내지 못하던 시대였다. 녹음 테크닉이 비약적으로 발전된 90년대 이후의 관점으로 그 당시 가장 헤비했다는 Deep Purple 의 풍문을 듣고 그들의 명작들을 접한다면, 굉장한 의문감과 괴리감을 느낄 정도다. 하지만 이 앨범 Made In Japan 은 Deep Purple 의 헤비함을 아낌없이 제대로 담은 앨범이다. 앨범 녹음 전부터 Deep Purple 은 반드시 자신들이 지목한 인물이 녹음/제작과정을 총괄해야 한다고 못을 박을 정도로 사운드적인 부분에 큰 신경을 썼고, 그 계획대로 Deep Purple 의 명성 중 하나였으며 불가능 해 보였던 “엄청난 헤비/라우드함의 음반화” 에 대한 야심은 결국 결실을 맺게 되었다. 그 후폭풍은 엄청났다. 이 앨범을 기점으로 라이브에서의 강렬한 에너지를 음반에 담지 못해서 음악적으로 고민하던 수많은 밴드들의 참고서가 되고야 만 것이다. Kiss, Aerosmith, Cheap Trick, Peter Frampton 과 같은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라이브 앨범을 통해서 자신들이 지닌 역동성을 100% 담는데 성공했으며, 심시어 70년대 락 음악의 가장 큰 흐름이자 특징 중 하나로 “락 밴드들의 경쟁적 형태의 라이브 앨범 필수 발매” 가 생성되게 되는데, 그러한 흐름을 주도하게 된 것은 바로 이 앨범이었다. 한 시대의 음악적 사건을 탄생하게 만든 이 앨범의 가치는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앨범이 지닌 70년대 하드락 라이브 특유의 헤비한 질감은 훗날 등장하는 수많은 하드록 뿌리의 장르들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점도 중요하다고 본다. Black Sabbath, Led Zeppelin 이 음악적 스타일로 후 시대에 영향을 주었다면, Deep Purple 은 이 라이브 앨범에서의 라우드한 앰프 사용법 – 그것을 레코딩으로 담는 과정에서 비롯되는 사운드 메이킹적 방법론으로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Steve Albini, Dave Sardy 와 같은 프로듀서들이 행한 라이브적인 질감의 스튜디오적 응용이라던지, 다양한 헤비 장르와 그 대표 밴드들 모두에게서 영향을 받았지만 사운드적 질감 부분에서 이 라이브 앨범을 매우 본격적으로 참고한 Boris 의 Pink 앨범의 등장과 그로 인핸 신/구 메탈 사운드의 절묘한 링크 생성, 장르적으로는 이어지지는 않아도 90-2000년대 개러지 리바이블을 통해 만들어지는 러프한 사운드 메이킹의 오묘한 이어짐등등은 쉽게 넘어가기 힘들다. 이 앨범의 뛰어난 빈티지 헤비니스 질감은 라이브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훗날 등장하는 아티스티들이 원하던 “라이브와 같은 역동성의 스튜디오 음반화” 에 큰 청사진을 제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앨범이 그 현상을 100% 주도 한 것은 아니겠지만, 분명 영향을 준 것은 쉽게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이 앨범을 기점으로 메탈/하드락 테크닉을 중심으로 한 밴드 비루투오조 및 거대한 스케일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완성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각 멤버간의 화려한 테크닉 대전투는 80년대 속주 기타와 키보디스트 중심의 스피드 메탈 음악이 탄생하는 결정적 토양이 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테크닉과 스케일을 지루하지 않게 & 혁신적인 스타일의 음악으로 만들어 나간 점은 가깝게는 Metallica, Dream Theater 에게, 멀게는 Between The Buried And Me 와 같은 밴드에게 적잖은 영향을 주었다고 과언은 아닐 것이다. 특히 90년대 후반 – 2000년대 들어서 장르적인 것은 이어지지 않지만, 클래식 락/메탈에서 보여지는 테크닉 향현과 스케일 빌드업을 그대로 참고하여 올드락 애호가들의 범상찮은 주목을 받으며 신/구 세대가 모두 관심을 가지는 재미진 기현상이 만들어지지 않았던가? 그러한 미싱 링크를 선명하게, 혹은 흐릿하지만 확실히 이어진다는 점을 잘 보여준 밴드들인 Between The Buried And Me, Animals As Leaders, Revocation, Periphery 의 뿌리를 찾아 본다면 사운드적인 부분은 아니더라도, 방법론적인 부분에서는 이 앨범을 만나게 된다. 사운드적 특징은 너무나도 다르겠지만, 다시금 80년대의 메탈 기타 인스트루멘틀 만큼의 화제성을 낳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서 이 앨범은 큰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겠다. 메탈 음악의 방법론적인 부분의 시조로써의 위용은 굉장하다고 할 수 있으며, 그런쪽에 관심을 가진다면 이 앨범에 대한 연구는 필수가 되어 버릴 정도다.

음악 비즈니스의 한 획을 그은점도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앨범을 기점으로 지금까지도 모든 음악 비즈니스계의 기본 상식이라 할 수 있는 “거대 음반 시장 일본”, “양질의 라이브 앨범 하면 무도관”, “일본만을 위한 스페셜 앨범”, “70년대 부터 난립하기 시작한 라이브 부트랙에 대한 레이블의 가장 확실한 대처” 라는 다양한 것들이 이 앨범에서 제시되고 완성 되었다는 점 역시 이 앨범의 중요한 부분이다. 3일간의 공연 티켓을 순식간에 다 팔아치웠고, 방일때의 미디어 및 팬들의 환영 수준이 정계 극빈의 방문과 맞먹는 수준이었으며, 하드락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살지는 않는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한 복장으로 공연장을 찾아 모든곡을 따라 불렀으며, 이를 경험한 멤버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는 사실은 꽤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Deep Purple 의 내일 공연 & 라이브 앨범 발매는 서양 음악이 동양이라는 지역에서 문화적 이질감이 있어도 음악이 좋다면 소비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첫번째 사례였고, 그 문화적 이질감에도 불구하고 보내진 열화와 같은 성원은 70년대 라이브 앨범 붐과 더불어 “일본 = 인기 밴드라면 방문해서 라이브를 가져야 하는 지역” 으로의 위상도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일본에 존재하는 모든 무술의 경기를 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체육관 이었지만, 구조가 너무 좋아서 라이브시 사운드가 매우 멋지게 뽑아져 나온다는 컬트함으로 인해 각종 해외 밴드들의 단골 장소가 된 부도칸이라는 장소의 남다른 이미지의 탄생이라던지, 그와 연계되는 믿고 찾는 명 라이브 앨범 브랜드인 “Live In Budokan” 의 유명세 시작점 역시 이 앨범이라는 점 역시 중요하다면 매우 중요 하겠다.

공연장에서 격렬한 반응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그들만의 조용한 열성 (확실한 음반/티켓 소비와 정적이지만 모든 곡을 따라 불러주는 열정과 같은 것 말이다) 을 보여주는 일본만의 락 음악 소비 형태의 가장 확실한 예의 완성이라는 점은 일본의 대중음악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썼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모범사례가 된다는 점 역시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한국의 쓸데없는 락 부심쟁이들은 일본인의 조용한 관람문화에 대해 조롱을 날리는데, 양국의 티켓/앨범 판매 차이가 그 부심을 절대로 부려서는 안 될 정도로 어마어마 하다는 부분이 있기에 좀 닥칠 필요가 있기도 하다라는 말도 남기고 싶다.) 이 앨범이 기획 될 수 밖에 없었던 앨범들의 꾸준한 판매와 일본 담당 레이블측의 발빠른 기획, 그리고 그 기획을 통해 밴드와 팬들이 모두 놀라게 되는 공연의 탄생, 그리고 그 서로간의 놀라운 피드백을 의해 만들어지는 동서양 모두의 음악 문화 및 음악 비즈니스적 충격은 상당했다. 한국에도 꽤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 앨범을 기점으로 만들어진 세계의 음악 비즈니스계의 “일본 방문 선호” 사상과 그로 인해 곁다리로 매우 가까운 나라인 한국에 대한 관심이 이어져서 내한이 전개 되었다는 점이라던지, 그러한 풍조가 이어져 일본의 여름 락 페스티벌 방문하는 덕을 한국이 반사이익을 보는 형태로 2010년대에 이어진다는 점에서 말이다.

일본내에서만 발매되는 스페셜 릴리즈적인 부분의 전통을 만들어 낸 부분도 있다. 원래 이 앨범은 일본 내에서만 발표 될 목적이었지만, 70년대에 기승을 부리던 라이브 부트랙 업자들에게 이득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빠른 발매를 결정, 그렇게 영국내에서만 소량 발매 되었던 앨범이었다. 허나 그게 또 엄청난 호평과 입소문을 타며 순식간에 차트 상위권을 치고 나오며 재판에 들어갔으며, 미국에서도 뒤늦게 발매되며 굉장한 판매고를 올리며 지금의 세기의 명반의 위치에 오르게 된 기현상을 보여 준 바 있었다. 그러한 월드와이드적인 인기 덕택에 “일본만의 스페셜 앨범” 으로의 위용은 다소 가려졌지만, 이 앨범을 통해서 만들어진 “새로운 음반 업계의 이상적 팜인 일본” 이라는 인식이 생겨났고 이에 어필하기 위해 일본에서만 발매되는 스페셜 앨범들이 하나 둘 등장했다. (주로 라이브 앨범) 그리고 이 전통은 장르를 불만하고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그렇다.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다. 그만 써야겠다. 이 앨범은 그저 “명반” 정도로 끝나지 않는 앨범이다. 동서양간의 컬쳐 쇼크 교환이라던지, 일본만의 현대 문화 소비와 뮤직 비즈니스계의 여러가지 후폭풍을 낳은 한가지 척도로의 위상 등 수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앨범 자체로의 위상에 대한 평가는 이미 충분히 이루어졌다. 하지만 2014년에 바라 보았을때 보여지는 수많은 음악적, 문화적, 비즈니스적 롤모델로의 가치에 대한 언급이나 그나마 행해졌던 평가에 대한 갱신들은 그다지 이뤄지지가 않고 있다. 유감일 따름이다. 이 앨범은 나이를 먹은 사람들이 추억을 되돌리기 위한 고리타분한 아이템 중 한가지 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은, 의외로 흥미로운 껀수로 중무장한 앨범이다. 사운드적으론 꽤 올드 하지만, 꽤나 요즘의 혁신적 메탈 서브장르들과도 일맥 상통하는 부분이 많으며, 요즘 리스너들도 빠져 들 수 밖에 없는 흥미로운 것들이 충만히 담겨 있기도 하다. 이 앨범은 그저 나이 먹은 사람들을 위한것이 아닌, 젊은 사람들이 흥미를 가질만한, 그로 인해 요즘 헤비니스 음악과 과거 헤비니스 음악이 결론적으로는 매우 탄탄한 연결 고리를 가지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려준다. 이 앨범은 과거와 현재를 다양한 분야 잇는 재미있고 경이로운 발명품이 아닐까 싶다. 명반의 가치를 넘어선, 경이로운 발명품 말이다. 그러한 가치가 있다. 당신이 나아가 많던, 아니면 어리던간에,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음악적 이질감을 이 앨범을 통해 서서히 해소 해 보도록 하자. 생각보다 이 바닥에서의 이질감은 아무것도 아닌것이다.

- Mike Villain


Space Truck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