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견 – 죽일까 살릴까 (Mirrorball Music, 2013)

투견 – 죽일까 살릴까 (Mirrorball Music, 2013)

Black Sabbath 가 만들어 낸 헤비-블루스의 사운드적 특징, 그리고 그에 합당한 악마적인 느낌을 얼마나 극단화 시켜 보는가에 대해 매진하던 둠/스토너/슬럿지 사운드는 분명 데스메탈, 그라인드코어, 쓰래쉬, 블랙메탈과 더불어서 “다이하드 메탈” 군에 속해 있는 독한 장르였다. 허나 이 장르가 90년대에 얼터너티브, 그루브 메탈을 만나며 모던한 변화상을 보여주며 다이하드 메탈의 고정관념을 탈피하는 심상찮음을 보였고, 2000년대 들어오며 테크 메탈, 프로그레시브, 서든락, 락앤롤, 그런지 등의 다양한 장르들을 끌어 당기고 돌연변이적인 느낌으로 패러다임 시프트를 성공 해 내면서 이 장르는 음악적/상업적인 피크를 달성하게 된다. 뭐… 메탈 좀 듣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아는 이야기일 것이다. 대충 개념잡는 느낌으로만 언급하는 걸로 끝내자.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니까.

중요한것은 메탈 애호가들에게는 중요 하겠지만, 한국 락 음악 전반에 있어서 전혀 상관없는 이러한 흐름이 놀랍게도 한국에서 꽤나 꿈틀 거리기 시작 했다는 점이다. 블루스 밴드라고는 하지만 2000년대 둠/스토너/슬럿지 코드를 한껏 머금고 있는 Lowdown 30 의 등장이라던지, 한국 데스메탈의 기념비적인 밴드 Sadhu 와 Seed 의 멤버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 된 정통파 다이하드 둠/슬럿지 메탈러 Black Medicine, 한국 하드코어씬에서 활동한 멤버들의 스토너/슬럿지 메탈적 탐구를 보여주는 Smoking Barrels 등의 양질의 밴드가 하나둘 나타나며 범상찮은 활동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이 매우 심상치 않음을 제대로 쐐기 박는 밴드가 하나 있다. 바로 투견이다.

투견은 범상찮은 한국 스토너/슬럿지 사운드적 흐름의 첫번째 결정타라고 할 수 있다. 표면적인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제대로 된 풀렝스 앨범을 발표했다” 라는 이유에서다. 투견의 데뷔작인 죽일까 살릴까는 데뷔작 특유의 고정관념과는 거리가 먼, 완벽한 형태의 완성형 사운드를 들려주는 괴물같은 작품이다.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배경도 적절하게 가지고 있기도 하다. 투견은 한국 스토너/슬럿지 메탈의 흐름을 리드하는 밴드이자, 가장 매니악한 깊이를 자랑하는 밴드인 Black Medicine 에서 보컬리스트로 활약하는 김창유 (Seed 의 보컬리스트로 활약한 분이다) 가 프론트맨으로 떡 하고 버티고 있는 밴드라는점, 그를 중심으로 어렸을때 음악을 같이 즐기던 친구들끼리 기념 할 만한 앨범 한장 내 보자고 매우 심플하게 계획을 잡았지만 메탈 동창회 이벤트와 거리가 멀 정도로 많은 시간과 비용과 정성을 매니악한 DIY 애티투드를 가지고서 앨범 제작을 거쳤다는 점이 바로 대단 할 수 밖에 없는 배경이다. (유통은 Mirrorball Music 이 행했다.) 밴드의 목표는 “아쉬움이 전혀 없는 인생의 기념비적 작품 한장” 이라는 매우 거창한(?) 것이었는데, 아니 좋을리가 없다.

이 앨범은 듣자마자 스토너/슬럿지 메탈이구나 느끼게 만드는 텍스쳐가 먼저 기선을 제압하고 있는것이 특징이다. 묵직한 헤비톤 기타, 블루스-서던락-메탈이 뒤엉켜 육중하고 끈적하고 느릿하게 전개되는 리프와 보컬라인, 그 육중함에 이어지는 적절한 약물적 맛까지 모두 말이다. 허나 조금만 깊이 들어가 본다면 매우 다양하고 파격적인 스타일을 나열하고 정리하는 엄청난 야심을 지닌, 설레발 조금 보태서 “새로운 스토너/슬럿지 사운드의 이정표” 라고 할 수 있는 놀랄만한 새로움으로 중무장한 앨범이라는 점을 느낄 수 있는 범삼찮은 앨범이기도 하다. 정통파/다이하드적 스토너/슬럿지 메탈의 걸걸함도 있지만, Machine Head 와 같은 그루브 메탈, Down/Corrsion Of Conformity 와 같은 모던하고도 캐치한 하드락 성향의 스토너/슬럿지, Stone Sour/Mudvayne 과 같은 뉴메탈적인 사운드를 자기것으로 섭렵하여 구축한 모던한 색채도 만만치 않다. 특히 정통파 스토너/슬럿지 특유의 다이하드함과 캐치한 곡 구성과 연주, 모던한 장르적 특성과 사운드 프로덕션의 융합은 이 방면 사운드의 과거-현재-미래 그 자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은 이 앨범의 하일라이트가 아니다. 여기에 한가지가 더 얹어지며 진정한 의미의 투견의 진면목이 터지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한국 전통음악적 요소” 이다.

이 앨범의 호평의 근간은 잘 짜여진 스토너/슬럿지의 신구 조화다. “한국적인 요소” 는 거들 뿐이다. 하지만 그 촉매제 같은 요소는 이 앨범의 강도를 대단함에서 위대함으로 탈바꿈 시킨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행해진 서양 음악과 동양음악의 저질스런 퓨전 사례는 시원하게 잊어 버리는것이 좋다. 일단 그것부터 분명하게 해야 할 정도로 이 앨범에서 보여지는 메탈과 한국 전통음악의 퓨전은 격과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투견은 이 앨범에서 판소리 음악에서나 찾아 볼 법한 경쾌한 장황설적인 내뱉음, 메탈보다는 타령-탈춤-사물놀이와 같은 음악과 같은 바이브의 동양적/전통적 리듬감 (중국풍 멜로디도 많이 사용한다. 여하간 전설의 고향 or 무협지 냄새 제대로다!), 그에 어울리는 전통음악적 뽕필스런 멜로디라인과 리프 & 기타 애드립, 그에 걸맞는 토속적인(?) 직선미의 가사 등을 메탈이라는 스타일 안에 과감하게 투입했고, 그러한 객기적 용감함도 놀랍지만 그러한 요소들이 서양 음악중에서도 전통 음악과 거리가 먼 메탈, 그것도 골수적 색채가 강한 스토너/슬럿지와 너무나도 기가 막힌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은 경악스러울 정도! “메탈에 한국적 사운드를 도입했다” 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동시에, “한국 전통 음악을 메탈에 적용 시켰다” 라고 뒤집어 말해도 굉장한 설득력을 지니는 것이 바로 이 앨범의 특징이다. 3-4분대의 가벼운 기승전결의 곡부터, 스토너/슬럿지 특유의 장거리 운행 & 러프-퍼즈-언홀리적 코드에 대한 편집증적인 탐구까지 행하며 만들어지는 90-2000년대 스토너/슬럿지에서 나타는 대중적인 측면으로의 강화 & 매니악한 측면으로의 강화의 모든 코드를 섭렵한다는 특징도 빠질 수 없는 이 앨범의 장점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투견의 데뷔작 죽일까 살릴까는 “진정한 의미의 한국적 메탈의 완성” 로 말 할 수 있는 앨범이다. 허나 그렇게 간단하게 10자평 때리고 넘어 갈 수 없을 정도로 디테일한 쇼킹함이 즐비한 앨범이기도 하며, 다양한 디테일의 강력함이 매우 돋보이는 앨범이기도 하다. 한국 최초의 스토너/슬럿지 메탈 릴리즈, 한국 전통음악과 메탈의 진정한 의미의 퓨전, 스토너/슬럿지라는 장르 특유의 컬트함의 완벽 구사, 다양한 모던 메탈로의 변화/발전/믹스쳐 성공, 90-2000년대 스토너/슬럿지 특유의 장르적 다양성 & 파퓰러한 코드 보유 & 매니악한 코드의 발전상 & 모던화/타-장르적 스타일로의 변화와 완성이라는 다양한 것이 들어있기에 그러하다. 2000년대 스토너/슬럿지 메탈의 흐름에 대한 한국의 멋진 카운터인 동시에, 한국 스토너/슬럿지 사운드의 이정표 그 자체다. 게다가 한국 메탈 역사 전체를 따져 보아도 음악적인 레벨로 따져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어마어마한 쾌작이라는 점도 빼 놓을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더 필요없다. 이것은 전설이자, 역사의 한 페이지라고 호들갑을 떨어야만 하는 앨범 그 자체 되겠다. 한국 스토너/슬럿지 메탈의 시작을 알리는 대표작이자, 80년대에 끝나 버린것 같지만 조용히 그리고 확실하게 쾌작을 적은 양이나마 계속 만들어 내는 한국 메탈씬의 비범함을 논하는데 2013년을 책임지는 앨범이라고 추가로 말을 남기며 끝내고 싶다.

- Mike Villain


오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