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s Series #11] Carcass 단기속성 간단 정복

[Villains Series #11] Carcass 단기속성 간단 정복

Carcass 가 새 앨범과 함께 돌아 온다는데… 뭐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가? 그동안의 행적 정리는 기본 아닌가? 별다른 설명 필요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보자!

- 80년대 초중반, 베이시스트 Jeff Walker 와 드러머 Ken Owen 은 Disattack 이라는 크러스트 밴드를 시작함, 기타리스트 Bill Steer 는 Electro Hippies 라는 하드코어/프로토 그라인드코어 밴드의 기타리스트이자 보컬리스트로 활약을 하고 있었음.

- 1986년, 보컬과 기타가 탈퇴하며 Disattack 은 Jeff 와 Ken 만이 남게 됨. 인도계 보컬리스트 Sanjiv 와 Bill Steer 를 새롭게 맞이하며 라인업을 정비하였고, 1987년에 밴드명을 바꾸게 되는데, 그것이 Carcass 의 시작이 됨. 그 당시 Jeff 와 Bill 은 17살, Ken 은 16살이었음.

- Carcass 로 이름을 바꾸기 전에 Bill Steer 는 Napalm Death 의 기타리스트로 활약하고 있기도 했으며, Scum 과 From Enslavement To Obliteration 이라는 명작 앨범을 남기기도 함. 재밌는점은 Carcass 의 멤버인 Jeff Walker 가 Scum 의 아트웍을 해 주었다는 것.

- 1987년에 데모 앨범 Flesh Ripping Sonic Torment 을 발표. 보컬 Sanjiv 는 데모 발매 후 공여 1회만을 하고 탈퇴함. 그냥 Jeff Walker 랑 Bill Steer 가 적당한 비율로 나누어서 보컬을 구사했는데, 이것이 지금까지의 Carcass 의 보컬 시스템으로 굳어져 버림.

- 80년대 초중반부터 로컬씬의 공연 프로모터로 시작, DIY 로 Napalm Death 의 앨범을 낸 바 있는 Earache Records 의 Digby Pearson 은 Carcass 의 데모 Flesh Ripping Sonic Torment 가 나오자마자 구해서 듣고선, 바로 그들을 찾아가 레코드 딜을 제시함. Carcass 는 바로 Digby 의 제안을 받아들임. Carcass 는 이미 앨범을 녹음하기 위한 충분한 곡이 있었으며, 바로 녹음에 들어감.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인 1988년, 데뷔작 Reek Of Putrefaction 이 발표됨.

- Napalm Death 의 호평과 화제의 경우와는 달리 Carcass 의 데뷔작은 전혀 화제가 되지 못했고, 그와 더불어 판매고도 매우 지지부진함. 앨범은 평가는 커녕 언급조차 잘 되지 않는 난항을 겪기도 함. 하지만 BBC 라디오의 DJ 이자, 엄청난 음악적 내공과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을 빠르게 발굴하고 소개하는데 있어서 최고의 실력을 발휘하던 레전드 John Peel 이 느닷없이 Reek Of Putrefaction 을 “자신이 생각하는 올해의 앨범 중 한장” 으로 언급함. 게다가 그 언급은 지금까지도 영국 최고의 타블로이드지인 The Guardian 에 실리기도 함. 그와 동시에 John Peel 의 전폭적인 지지하에 그가 진행하는 BBC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BBC 에서의 라이브 세션을 가지기도 하며 서서히 주목을 얻기 시작함.

- John Peel 의 전격적인 지지로 인해 과격 음악 팬들 사이에서 “Reek Of Putrefaction 은 들어 볼 만한 새로운 스타일의 과격음악” 으로 여겨지게 되고, 많은 팬들이 Reek Of Putrefaction 에 접근함. 그때 많은 팬들은 앨범 아트웍에 의해 엄청난 충격을 먹고야 맘. 밴드의 기타리스트 Bill Steer 는 사회 비판적인 가사를 어떻게 좀 더 새롭게 만들 것인가에 몰두하고 있었고, 마침 간호사 수업을 받고 있던 여동생이 가지고 있던 의학 사전에서의 다양한 종류의 인간 신체의 상처, 부패, 등의 사진을 기억 해 내게 되었고, 그 사진들을 역겹고 기괴하게 잘라 콜라쥬한 아트웍을 데뷔작 Reek Of Putrefaction 에 사용 해 버렸기 때문. 또한 의학 전문용어로만 쓰여진 고어한 가사는 더욱 더 이들의 충격적 오리지널리티를 확고하게 함. 이러한 극단적 고어-메디컬 시츄에이션을 이용한 사회 비판적 테마는 고어 그라인드, 하드고어, 민쓰 그라인드 등 다양한 신조어를 낳았으며,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는 데스메탈/그라인드코어의 잔인한 묘사의 시조의 금자탑으로 자리매김하게 됨. 더불어서 Reek Of Putrefaction 의 아트웍은 지금까지도 고어한 아트웍의 최고봉으로도 악명과 충격이 자자한 상태로 남아 있음.

- Reek Of Putrefaction 이 서서히 인정을 받아 갈 때, 밴드는 2번째 앨범 녹음에 들어감. 데뷔 앨범에서의 매우 좋지않은 프로덕션에 대한 개선을 신경을 쓰는 한편, 고어한 테마에 어울리는 지저분한 저음 튜닝 기타 그라인딩과 그로울링 보컬의 음악적/연주적 레벨업과 유연한 어레인지를 담은 Symphonies Of Sickness 를 1989년에 발표. Symphonies Of Sickness 는 발매와 동시에 상당한 호평을 얻었으며, 그라인드코어 및 고어 그라인드의 첫번째 음악적 완성형으로써의 중요한 이정표를 기록함. 물론 데뷔작에서의 역겨운 고어 콜라쥬 역시 한번 더 등장하며 데뷔작에서의 충격을 이어 갔다는 점 역시 빠질 수 없는 사항이기도 함. 또한 유러피언 그라인드코어의 이정표이자 대표작으로 중요한 위치를 가지며, 그와 동시에 그라인드코어 특유의 과격함과 음악적인 부분에 대한 욕망의 뛰어난 밸런스의 첫번째 사례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도 함. Symphonies Of Sickness 가 완성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밴드에는 세컨드 기타리스트이자 스웨덴 출신의 청년, 그리고 스웨덴 데스메탈의 시작점을 기록한 밴드 Carnage 의 브레인이었던 Michael Amott 가 가입되며 Carcass 는 4인조로 거듭나게 됨.

- Symphonies Of Sickness 에서 시작 된 송라이팅 & 화려한 메탈 연주 테크닉에 대한 탐닉은 3번째 앨범 제작때부터 밴드의 변화상의 중심으로 본격화 되었고, 이는 1991년에 Necroticism ? Descanting The Insalubrious 라는 앨범으로 거듭나게 됨. 그라인드코어의 음악적 커리어 하이를 정의하는 앨범이자, 그라인드코어의 새로운 시대가 도래 했음을 알린 이 앨범을 통해 밴드는 익스트림 메탈씬을 넘어서 전방위적인 음악씬에서 주목받게 됨. 극단적인 공격성의 사운드와 잔인하고 역겹기 그지 없는 테마의 여과없는 표출과 극단적인 과격성 뒤에 숨겨진 4인의 매우 새롭고도 범상치 않은 음악적/테크니션적인 기량은 익스트림 메탈 애호가 뿐만 아니라 많은 음악 평론가들에게 호응과 주목을 얻기도 함. 더불어 이들은 잔인한 테마의 거침없는 표현뒤에 숨겨지고 역설적인 느낌으로 자리잡은 된 아니키즘 & 베간 & 동물 권익주의자적인 태도를 보여 주었는데, 이는 더더욱 이들을 독특한 존재로써 인식하게 만드는데 큰 도움을 주기도 함. 이때부터 밴드는 조심스레 “90년대 메탈 역사를 새롭게 쓸 차세대 빅스타” 로 점쳐지기 시작함.

- 음악 언론의 범상치 않은 시선은 1993년에 발표한 4번째 앨범인 Heartwork 에서 평론가들이 상상했던 범위 이상으로 증명됨. Heartwork 는 이들이 지금까지 구사 해 온 고어적 테마와 그라인드코어 특유의 직선적 극단성과 멀어지는 한편, 그 빈자리에 짜임새 넘치며 캐치한 악곡, 그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템포와 리프, 멜로디컬한 부분과 화려한 테크닉의 극단적인 추구, 탈-익스트림 메탈적인 구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익스트림 메탈적인 과격함을 여전히 자랑했고, “Metallica 의 혁신성을 이을 최고의 밴드. 남은것은 성공뿐.” 이라는 극단적인 호평을 얻어 내는데 성공함. 또한 이들의 소속 레이블인 Earache 가 무려 북미 배급딜을 초 메이저 레이블 Columbia 와 계약 했기에, Heartwork 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메이저 레이블의 프로모션 버프와 그에 합당하게 대중 음악 필드쪽에서의 엄청난 호평까지 얻어 내는데 성공함. 또한 Heartwork 가 보여준 캐치함과 멜로디컬함을 겸비한 캐치한 흐름을 지닌 익스트림 메탈 사운드는 “멜로딕 데스메탈” 의 탄생의 청사진으로도 엄청난 영향력을 지금까지도 행사하게 되는 의외의 성과도 거두기도 함.

- Heartwork 가 완성 될 즈음, 밴드의 세컨드 기타리스트였던 Michael Amott 는 자신 리드하는 밴드를 만들기 위해 탈퇴함. Heartwork 의 성공을 몸소 겪지는 못해 비운의 기타리스트로 남는가 했지만, Michael 은 자신이 리드하는 새 밴드 Arch Enemy 로 몇년 후 컴백, 90-2000년대를 대표하는 메탈 장르인 멜로딕 데스메탈의 음악적 아이콘이자, 최고의 엑스맨으로 거듭나기에 이르름. Michael Amott 의 가 탈퇴한 빈 자리에는 Mike Hickey 가 투어 멤버로, 그 뒤에 Carlo Regadas 가 정식 멤버로 받아 들여짐.

- Heartwork 의 완벽한 음악적 호평은 밴드로 하여금 더욱 더 파격적인 변화를 하게끔 만듬. 그라인드코어/데스메탈로부터 긍정적인 탈출/탈피를 해 낸 밴드는 완벽하게 익스트림 메탈과 멀어지는 동시에 고전 하드락에 대한 집착과 고전 락/메탈의 정 반대되는 혁신적인 결론을 내리며 메탈 음악의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거대한 계획을 구상하기 시작함. 더불어서 인기 메탈 밴드를 넘어서 “세기의 천재 락 밴드” 로 거듭나기 위한 야심도 가지기 시작함. 이러한 용감무쌍한 발상은 새 앨범 제작으로 응집하기에 이르름. 평단의 호평도 있겟다, 익스트림 메탈치고는 꽤 많이 팔렸겠다, 메이저 레이블 Columbia 의 탄탄한 지원사격도 있겠다… 용감하게 나갈 수 밖에 없던 이들은 거침없는 레코딩 행보를 가짐. 차기작은 무려 더블 앨범 사이즈로 기획을 시작했고, 무려 20만 달러 (그 당시 대충 한화로 계산하면 2억!) 를 사용 했으며, 2번째 앨범부터 같이 해 온 프로듀서이자 그들과 함께 장족의 발전을 해 오며 커리어하이를 찍던 Colin Richardson 과의 같이 합숙하며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담아서 녹음을 가짐. 거기에 그 당시에 서서히 명성을 날리고 있던 유명 엔지니어 Terry Date 의 완벽한 믹싱까지 기획함. 모든것이 수월하게 돌아감. 그때가 1994년 이었음.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것은 처절한 좌절이었음.

- 밴드의 야심찬 녹음은 매우 순조롭게 행해졌고, 밴드는 1995년에 그 결과물을 앨범 발매로 이어가려 노력함. 하지만 결정적으로 이들의 앨범을 발매 할 Columbia 는 Carcass 의 새 앨범 발매에 대해 난색을 표현하기에 이르름. 더블 앨범으로의 발표에 대한 기각, 1995년 발표에 대한 기각, 계속해서 앨범을 좀 더 파퓰러하게 수정하라는 통보가 계속 전달 됨.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Columbia 가 과감하게 추진한 “데스메탈의 메이저 배급” 은 생각보다 상업적인 성공과 먼 부정적 결론만을 낳았고, 마침 터져버린 얼터너티브 열풍으로 인한 모든 메탈에 대한 등한시적인 풍토, 그로 인해 서서히 그리고 확실하게 행해진 모든 메탈에 대한 메이저 레이블들의 발매 후 홍보 거부와 베스트건 뭐건 어거지로 앨범 장수를 계약상 맞추고 퇴출 시키는 정리해고로 인해 Carcass 의 신작은 더더욱 발매가 묘연 해지는 결론에 휩싸이게 됨

- Columbia 는 1996년 여름까지 신작 발매를 연기함. 그러나 약속은 결국 이행되지 않음. Columbia 측은 Earache 와의 계약을 파기했고, 그로 인해 메이저 발매가 사실상 좌절됨. 엄청난 야심과 노력, 그리고 금전을 들여서 메이저 필드적인 상업적 대성공까지 노렸던 Carcass 의 야심은 Columbia 와 Earache 와의 관계 정리로 인해 산산조각이 나 버리게 됨. Metallica 급의 성공을 노렸던 밴드는 이러한 결과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밴드는 Carcass 라는 밴드에 미련을 두지 않고 1995년에 해산을 결정함.

- Columbia 와 계약이 파기 된 Earache 는 뒤늦게 나마 이 앨범을 발매하고 본격적인 프로모션을 행하며 밴드를 되살려 보려 했지만, 밴드의 마음은 이미 기울어 버린지 오래… 밴드 해산으로 부터 1년후인 1996년에 5번째 앨범이자 Carcass 의 유작 Swansong 이 발매됨. 고전 하드락과 익스트림 메탈의 믿어지지 않는 뛰어난 앙상블을 담은 이 앨범은 Heartwork 에 이은, 그리고 Heartwork 와는 또 다른 신선하고도 긍정적인 변화상을 담은 야심작 다운 것을 담고 있었으며, Heartwork 때부터 시작 된 정통 익스트림 메탈러/그라인드코어 애호가들의 비난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극찬을 얻어 내는데 성공 할 수 밖에 없는 음악적 결과물들을 담는데 성공. 하지만 Swansong 발매 이전에 밴드는 이미 해산 해 버린 상태… Swansong 앨범의 비극은 익스트림 메탈을 넘어서 락 음악 전체에 있어서 다섯 손가락에 꼽는 처참한 비극으로 기록됨.

- Swansong 이 발표 된 지 5개월 후, B-사이드 모음집인 Wake Up And Smell The…Carcass 가 발표됨. Carcass 의 동의 없이 무단으로 발매 된 컴필레이션이었지만, 밴드측은 이에 대해 별 반 대응이 없었음. 앨범 누락곡과 데모 버전, BBC 세션에서의 라이브, 컴필레이션에 제공된 곡들로 담겨진 앨범이었지만 상당한 퀄리티의 곡들이 담겨 있어 그들의 해산을 더욱 더 안타깝게 하는 앨범으로 기억됨.

- Carcass 의 공중분해 후 Jeff Walker 와 Ken Owen 은 Swansong 앨범의 레트로 하드락 성향을 좀 더 강하게 탐구하여 Carcass 말기의 스타일을 이어가는 밴드인 Blackstar 를 결성, 재기에 들어가지만 Swansong 과 달리 음악적으로 매우 부족하다는 평가만을 얻었고 얼마 가지않아 해산함. 설상가상으로 1999년에는 Ken Owen 은 젊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뇌출혈로 쓰러지며 생사를 오가는 비극까지 맞이함. 다행히도 Ken 은 극적으로 목숨을 건짐. 하지만 그의 몸은 음악활동은 커녕 오랜 시간동안 재활치료를 해야 할 정도로 반신불수에 가까운 상태에 까지 이를 정도로 큰 육체 데미지를 얻고야 맘. 그때부터 Ken 음악적 커리어는 사실상 종결됨. Jeff 역시 Blackstar 의 해산 이후 음악 활동과 연을 끊음.

- 기타리스트였던 Bill Steer 는 자신이 리드하는 새 밴드 Firebird 를 결성, 음악적 커리어를 이어감. 허나 Carcass 와 너무나도 다른 5-60년대 레트로 하드락/블루스를 구사하며 익스트림 메탈과의 관계를 자의적으로 정리 해 버리기에 이르름. Firebird 를 통해서도 Bill 은 엄청난 재능을 보여 주었지만, Carcass 보다도 더욱 강한 컬트함으로 인해 메탈 메인스트림과는 먼 유유자적한 음악 활동으로 남게 됨. 그렇게 Carcass 는 역사의 뒤안길로, 메탈씬과의 관계 정리를 서서히 해감.

- 해산으로부터 10여년의 시간 동안 Carcass 의 이야기는 일절 없었음. 2001년에 트리뷰트 앨범 Requiems Of Revulsion, 2004년에 베스트 컴필레이션 앨범인 Choice Cuts 만이 잠깐 화제가 되었을 뿐.

- 90년대 중반 이후 음악계와 연을 끊었던 Jeff Walker 가 Jeff Walker Und Die Fluffers 라는 솔로 프로젝트의 이름하에 첫번째 솔로작이자, 컨트리 커버 앨범인 Welcome To Carcass Cuntry 를 2006년에 발표하며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재개. 그와 더불어 Jeff 는 This Is Menace, Mnemic, Napalm Death 의 앨범에 피쳐링으로 참여하기도 했고, Brujeria 의 투어 베이시스트로도 활약하기도 함. 그의 음악계 컴백은 자연스레 Carcass 의 재결성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고, Jeff 는 매우 긍정적으로 할 여건만 되면 바로 다시 하고 싶다고 언급하는 한편, 드러머 Ken 의 건강상태가 여전히 좋지 않기에 조금 힘들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꺼내며 재결성에 대한 아리송함을 증폭 시킴.

- 2007년에 Jeff, Bill 은 밴드의 황금기를 같이 한 기타리스트이자 Arch Enemy 의 리더인 Michael Amott 와 만나서 합주를 가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온라인에 거론함. 이는 Carcass 의 컴백이 임박 했음을 알리는 신호라는 팬들의 열렬한 피드백으로 이어졌고, 2007년 10월에 Wacken Open Air 참가를 알리며 재결성을 오피셜로 타진하게 됨. Ken Owen 의 건강은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예전처럼 드러머로이 활약은 할 수 없었기에 그의 자리에는 Arch Enemy 의 드러머인 Daniel Erlandsson 이 기용됨.

- 2007년 10월의 Wacken Open Air 를 시작으로 밴드는 1년동안 Hellfest, Tuska Open Air Metal Festival, Damnation Festival 등 다양한 거대 페스티벌 및 월드투어를 행함. 반응은 너무나도 굉장했고, 이 열기는 단기 재결성 투어까지만 생각했던 밴드는 본격적인 활동을 다짐하게 만듬. 또한 이 투어 일정에서 Ken Owen 이 여전히 불편 하지만, 그래도 건강한 모습으로 무대 인사를 자주 가지며 더욱 더 팬들의 호응을 이끌어 냈다는 것도 중요 하였음.

- 2년여의 재결성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친 Carcass 의 두 주축 Jeff 와 Bill 은 신곡을 쓰며 새 앨범 제작에 본격적으로 들어감. 이 둘과 Daniel Erlandsson 은 Carcass 의 활동에 매우 긍정적이었지만, Michael Amott 은 자신이 리드하는 Arch Enemy 와 Spiritual Beggar 활동을 우선으로 하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하며 새 앨범 제작에 그다지 환영하지 않는 분위기를 연출함. Jeff 와 Bill 역시 Michael 을 기다려 줄 수 없었기에 서로 좋은 분위기에서의 결별을 선언함.

- Jeff 와 Bill 은 그라인드코어 밴드 Trigger The Bloodshed 출신의 드러머 Daniel Wilding 를 새 드러머로 2012년에, 모던 헤비니스/블루스 밴드 Pig Iron 출신의 Ben Ash 를 새 기타리스트로 2013년에 받아 들이며 새로운 라인업을 구축함. 황금기를 같이 했던 명장 Colin Richardson 을 기용. 드러머를 얻은 2012년 부터 본격적인 레코딩을 가짐. 레코딩 마무리 단계에 Nuclear Blast 와 계약 했음도 알림.

- 새 앨범 타이틀을 Surgical Steel 로 정하고, 발매일을 9월 13일로 확정 지으며 발매 초읽기에 들어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