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mrot – Abuse (Earache, 2010)

Wormrot – Abuse (Earache, 2010)

최근 2-3년간의 일이다. 서양의 데스메탈 / 그라인드코어 / 고어 / 익스트림 사운드 계열 팬들은 동남아를 눈여겨 보곤 했다. 불법 음원 자료가 올라오는 각종 해외 블로그라던지, 언더그라운드포럼에서는 동남아 그라인드코어/데스메탈 발굴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었다. 뛰어난 센스와 실력에 놀라면서 말이다. 그와 동시에 많은 익스트림 메탈러들이 동남에 투어 및 메탈 페스티벌에 자주 모습을 보이는 등 심상치 않은 분위기도 외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급기야 동남아 국가 중 하나인 싱가폴 밴드 하나가 엄청난 사고 (?) 를 치게 된다. 바로 Wormrot 이 발굴 당하면서, 세계시장에 소개되며, 상당한 충격을 준 일 말이다.

Blogspot 서비스를 이용한 개인 블로그와 각종 음지 메탈 포럼을 중심으로 다양한 동남아 익스트림 밴드들이 하나둘 발굴되고 의외로 큰 규모로 퍼져 나가는 모습은 마치 80년대 초반 데스메탈/그라인드코어 탄생 당시의 테입 트레이딩적인 분위기와 흡사했다. 그리고 그런 테입 트레이딩 흐름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자, 테입 트레이딩으로 알게 된 이런 저런 밴드들을 발굴하며 전설이 된 Digby Pearson (Earache Records 의 창업자이자 현 사장) 은 우연찮게 그 디지털화 된 차세대 음원 트레이딩 흐름을 경험하는데… 그 와중에 걸린 밴드가 Wormrot 이었다. 그는 이런저런 익스트림 사운드 전문 블로그에 올려진 믹스테입/자작 컴필레이션을 다운로드 해서 그냥 한번 들어 보았는데, Wormrot 이라는 밴드의 음원 Born To Stuid 이 너무나 인상적이었고, 이런저런 블로그를 돌다가 이미 첫 풀렝스가 발매가 된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앨범이 그라인드코어 전문 블로거의 2009년 베스트 앨범 중 한장이라는 사실과 곁다리로 걸려진 불법 다운로드 링크 까지도 말이다. 그는 그 앨범을 (불법적으로 ^^;) 다운로드 받아 듣고서는 결심을 하게 된다. 이 앨범을 자신의 레이블을 통해 월드와이드로 소개 시켜야만 한다고 말이다. 데뷔작이 바로 지금 이야기 할 Abuse 이다.

Abuse 는 2009년에 싱가폴 레이블인 Scrotum Jus Records 에서 발매 되었고, 2010년에 Earache Records 와의 정식 월드와이드 “로스터 딜” 을 따내면서 세계 시장에 발매 된 앨범이다. 이 앨범이 세계 시장에 소개 된 것, 그리고 발매와 동시에 수많은 익스트림 메탈 팬들과 메이저 메탈 언론들이 엄청나게 놀라게 되는것의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다. 바로 엄청난 실력과 센스, 그리고 혀를 내두를 정도로 미쳐 있는 근면함에 있다. Wormrot 은 “얼마나 서양 사운드에 근접 하느냐” 의 사운드가 아닌 “지금까지 발전한 그라인드코어를 얼마나 더 발전 시킬 수 있느냐” 에 도전하는 밴드이다. 미친듯 터지는 블라스트 비트와 그라인딩 리프의 그라인드코어의 기본을 지키는 가운데 하드코어 펑크와 헤비 그루브를 도입하며 리드미컬함에도 힘쓰고 있고, 그에 걸맞게 리프, 드럼 패턴, 보컬파트의 완급조절도 철저하게 짜임새가 있으며, 지루함을 느낄 수 없는 다양하기 그지 없는 곡 전개를 양껏 만들어 무궁무진하게 펼쳐 놓고 있다. 이러한 송라이팅/연주패턴/팀웍적 요소는 그라인드코어 발전상의 끝이자 또 다른 영역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고 할 수 있는 Nasum, Regurgitate, Antigama, Mumakil, Leng T’che 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그것이기도 하다. 서양 본토 그라인드코어에 뒤질게 없었다. 프로듀스 또한 뒤지지 않았다. 이들은 본 무대에 등장 하자마자 왕좌를 겨루게 되는 전대미문의, 미지의 최강 도전자자와도 같았다. Abuse 는 세계 시장에 발매 되자마자 각종 메이저 메탈 언론의 극찬을 얻어냈고, 당연하다 싶을 정도로 서양 익스트림 애호가들의 이 시대의 클래식으로 올라서는데 성공하게 된다. 그와 더불어서 동남아는 메탈의 변방이 아닌, 세계의 익스트림 사운드 애호가들이 눈여겨 보는 새로운 익스트림 사운드 명소가 된다. 이유는 단 하나다. 실력 뿐이다.

그리고 근면함도 추가로 이야기를 해야만 옳다. 이 친구들은 미쳤다. 이들은 그저 음악을 하기 위해서 다양한 직업으로 돈을 모으고, 그 모은 돈의 전부를 레코딩, 음반제작, 머천다이즈 제작, 투어 비용에 올인한다. 먹는 돈까지 아끼면서 말이다. (Decibel Magazine 과의 인터뷰에서 자신들은 하루에 4달러 드는 맥도날드 값을 줄여 99센트 하는 교회서 만들어 파는 치킨 두개로 하루를 버틴다고 밝혔다.) 이들은 Abuse 를 내기 전에도, 그 후에도 일을 하고, 곡을 쓰고, 레코딩을 하고, 음반을 낸다. 쉴 새 없이. 그리고 대인배적으로 온라인에 “어차피 판 잘 안사니까 많은 사람들이 들어 줬으면 좋겠다” 라며 그냥 새 앨범 음원을 무료로 던지기도 했다. Abuse 이후에 1장의 스플릿, 1장의 앨범, 2장의 EP 를 냈다. 이름이 알려진 밴드라, 실력이 뛰어난 밴드라 반응 역시 좋게 흘러가고 있다. 그리고 밴드는 미국 투어를 전개하고 좋은 반응을 얻었다. 물론 앞서 설명한 무식할 정도의 근면한 생활방식으로 말이다. 이런 무식한 근면성실함은 음악에 멋지게 나타난다. Abuse 에서 가장 많이 빛나는 것도 근면성실함이다. 근면성실함이 음악의 질과는 무관 할 수도 있지만, Abuse 에서는 상관이 있는것 같다. 그것만큼은 정말 경이롭게 인상적이니까.


Born To Stup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