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eak The Oath #09] The Crystal Method – Vegas (Outpost/Universal, 1997)
90년대 중반부터 무섭게 미국 시장에 들이치기 시작한 영국 음악. 혹자는 세컨드 브리티시 인베이전이라고 했는데, 뭐 그렇게까지 미국의 음악적 자존심을 꺾을것은 아니지 않나 생각된다. 쉴 새 없이 미국 시장에 도전 했지만 쓴 맛을 보았던 브릿팝은 결국 Oasis 가 뚫어 버렸지만, 이미 그런지 사운드로 90년대 초반 영국 락 음악의 자존심을 초토화 시켜 버렸기에 (정말 락 음악에 대해 자존심 있었던 영국으로써 가장 충격적이고 비참한 초토화, 그 자체였다!) 그다지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었으니까. 진정한 세컨드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승자인 Spice Girls? 미국 시장은 NKOTB 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도 그런것에 대해 굉장한 재수없음을 여전히 표현하던 터였으니, 그녀들의 존재는 그다지 중요한 사항이 아니었기도 하다. 그 아가씨들의 침략은 당연히 논외! 진짜 문제는 테크노/일렉트로닉스였다. 그쪽 장르가 유럽 시장의 전유물로 보이기는 하지만, 미국은 80년대 부터 나름 대단한 테크노/일렉트로닉스 아티스트들을 조용히, 그리고 꾸준히 배출 해 왔다. (Moby 하나 정도면 설명이 간단히 끝나지 않는가?) 하지만 The Prodigy, The Chemical Brothers, Fatboy Slim 과 같은 파워, 에너지, 개성, 장르파괴적인 영국 침략자들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게다가 그들이 본격적으로 미국 시장에서 맹위를 떨치기 시작 할 때는 다들 2-3번째 앨범을 발표하던 때였다. 개성도 강했지만, 음악적 완숙미도 굉장했다. 그에 비해 미국은 카운터를 칠 만한 신예는 커녕 베테랑 아티스트들의 대항 기세조차 없었다. 그나마 맞장 뜰 만한 Moby 가 펑크락을 한다고 기타를 맸다가 좋지 않은 소리만 왕창 듣고서 멘붕, 멘탈적/음악적 휴식을 취할 때가 그때 였으니… 하지만 결국 미국 테크노의 자존심은 (그럭저럭) 세워지고 말았다. 의외의 신예 The Crystal Method 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The Crystal Method 의 시작은 애매모호 했다. Ken Jordan 과 Scott Kirkland 의 두명으로 구성 된 이들은 라스베가스 변두리의 지하실을 스튜디오를 개조하고, 습작 활동을 하면서 데모를 만들었고, 고작 그것만으로 (언더그라운드 클럽 생활과 씬에서의 주목 없이) 바로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을 맺었고, 그에 걸맞지 않게 엄청난 푸쉬를 받았다. City Of Angels, The Replacement Killer, Mortal Combat, Spawn 과 같은 사운드트랙의 중요 푸쉬 넘버들을 맏았고, 첫 앨범이 나온다는 광고는 이미 90년대를 장식하다 못해 세기의 아티스트가 된 The Prodigy, The Chemical Brothers, Fatboy Slim 와 같은 레벨이었다. 알려지지 않은 애송이들이 그 정도의 가치가 있을까나 하는 좋지 않은 시선이 이어졌다. 테크노 열기에 물타기를 하며 돈을 벌어 보고자 하는 메이저 레이블의 기획 상품적 픽업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러한 그다지 좋지 않은 시선속에서 데뷔작 Vegas 는 발표되게 된다. 앨범이 발표되자 비난의 목소리는 줄어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큰 힛트를 기록하진 못했다. 하지만 놀라운 점은 Vegas 앨범과 그 앨범을 만든 The Crystal Method 는 10여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결론적으로 승자, 아니 (나름) 레전드로 기록되게 된다. Vegas 는 분명 그럴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냉정한 시선으로 결론을 내 보자면 The Crystal Method 와 Vegas 는 영국 테크노 인베이전을 넘어서지는 못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Vegas 는 분명 그러한 대대적인 영국 테크노의 침략에 대해 대응하던 유일한 미국 테크노 실력파 아티스트의 앨범이라는 간판다운 음악적 기량을 나름 소신껏 만들어 내는데 성공 했다는 점이다. 그들을 넘어 서지는 못하지만, Vegas 는 분명 90년대 테크노 열풍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미국 테크노의 역사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절대로 빠트려서는 안되는 마스터피스 앨범임에는 틀림이 없다. The Prodigy, The Chemical Brothers 만큼의 파티 몬스터급 에너지를 전해주지는 못하지만, 90년대 중후반 테크노 음악의 특징인 락앤롤/메탈/펑크적인 에너지와 비트, 역동성을 근간으로한 박진감 넘치는 사운드는 분명 배출 해 내고 있다. 그리고 에너지 표출보다 중요하게 생각한 뛰어난 구성미는 Vegas 앨범의 백미이다. 테크노 답지 않게 화성악적으로 아기자기 하고도 섬세하게 짠 기승전결과 그 흐름에 걸맞게 서서히 흥분감을 올려가는데 있어서 완벽한 흐름을 만들어 내고 있는데, 이는 그들과 이 앨범만의 개성임에 틀림이 없는 부분이다. 하드한 톤과 다이내믹한 비트의 테크노 넘버들이 싱글컷/힛트넘버들 이기는 하지만, 진정한 묘미는 이러한 섬세하고 완벽한 구성미를 근간으로 한 그루브한 트랙 (Busy Child), 소울풀한 트랙 (Comin’ Home), 미국적 IDM 테크노의 계보를 이어가는 트랙 (She’s My Pusher) 와 같은 싱글 외적인 트랙들이다. 그러한 다양한 서브장르적 사운드의 구비는 더더욱 Vegas 를 쾌작으로 몰고 간다. 음악적인 부분에 대한 논의에서나, 듣고 즐기기 위한 다양한 구색적 부부분에 대한 논의에서나 말이다. 방구석 테크노긱과 나이트 클러빙 애스홀들의 욕구를 모두 충족 시키는데 부족함이 없다는 이야기. 사운드 튠이 하드 테크노 스타일로 한정되어 있어서 테크노 외적인 다양한 장르에서 샘플하여 다양한 장르/사운드 스케이프를 만들어 가던 타 밴드들에 비해 사운드 소스의 폭이 좁기에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끝날 때 까지 계속 생각나게 만들며 신경을 좀 많이 거슬리게 하지만, 절대 물타기용 작품은 아닌 합격선 이상의 수작임에는 분명했다. 그리고 이렇게 별것 아닌듯 하지만, 합격점을 줄 수 밖에 없는 퀄리티는 놀랍게도 90-2000 테크노 레전드가 될 수 밖에 없는 위치까지 달려…아니 걸어 나가게 된다.
Vegas 는 레이블의 푸쉬에 비해서 음악적 결론은 부족했지만 합격점은 분명했다. 더불어서 시대의 아이콘 테크노 뮤지션들과 비교하면 당연히 부족하지만 음반 하나만 놓고 보면 합격점이었다. 음악적 뿐만 아니라 상업적으로 밍숭밍숭 했지만, 그 당시의 테크노 붐 이후에도 팔릴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적당히 높은 퀄리티는 이 앨범의 가치가 서서히 오르게 만들었다. 발매 1년후에 골드 앨범을 달성한 것은 그당시 테크노 열풍을 탄 것이었다. 허나 2007년에 이르러 이 앨범이 조용히 플래티넘을 달성했고, 그해에 10주년 기념 2CD 디럭스 버전이 발매 되었다면? 한마디로 이 앨범은 테크노 열풍이 식고 나서 오히려 정당한 평가를 받았다는 결과와 이어진다. 다수의 리스너들이 망각한 명작 앨범이라는 결과로도 이어진다고도 할까나? Vegas 는 발매 당시에는 기라성 같은 아이콘들에게 좀 많이 치였으며, 테크노의 상업적 인기 열풍을 놓치지 않기 위해 레이블의 약간 무리수적인 푸쉬가 있었기에 반감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그 열풍과 거품이 가려진 이후에 더 냉정하게 바라봐도 합격점 이상은 당연히 얻는데 부족함은 없다. 또한 시대를 초월한 수작이기도 한 점을 깨닮게 하는 이들만의 센스는 나중에 발견되며 묘한 놀라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그렇게 조용하고도 꾸준하게 90-2000 테크노의 명작으로 거론되며 이 앨범은 플래티넘을 달성하며 전설이 된 것이다. 분명 The Prodigy, The Chemical Brothers 만큼의 레벨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90-2000년대 테크노를 대표하는, 미국 테크노를 대표하는 명작임에는 당연하다라고 밖에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게 만드는 마법이 존재한다. 지금이야 말로 좋은 타이밍이 아닌가 싶다. 그때 미처 깨닫지 못했던 테크노 명작의 위대한 마법을 느낄 타이밍 말이다.
- Mike Villain
Busy Chi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