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tally Strange #04] ALL – Pummel (Interscope, 1995)
Descendents 의 보컬리스트 Milo Aukerman 는 여타 펑크락 밴드 보컬리스트와 다르게 과학자가 되기 위한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여 학업에 열중했다. 그러는 한편 밴드 활동을 할 수 있는 짬이 생길 때 마다 그는 Descendents 의 보컬리스트로 컴백하여 활동했고, 그렇게 4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그는 두 부분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과학자와 펑크락 밴드 보컬 리스트 중에서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Milo 는 과학자의 길을 선택하여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 한다. 남은 멤버 3인은 새 보컬을 구하면서 라인업을 재정비 하는 한편 밴드 이름을 Descendents 에서 ALL 로 바꾸게 된다. 그리고 Descendents 의 음악적 커리어를 그대로 이어가는 음악적 행보를 시작하게 된다. 그렇다. ALL 이라는 밴드는 팝펑크의 창시자 Descedents 와 전혀 다를 바 없는 밴드라 할 수 있었다.
허나 ALL 은 Descendents 만큼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비난 받았다. 음악 스타일은 그대로이지만, 보컬 한명 바뀌었을 뿐이지만 팬들은 그들의 음악을 좋아하지 않았다. “보컬이 Milo 가 아니다” 라는 다소 말도 안되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팬들은 ALL 에 대해 냉정하다 못해 가혹한 반응을 보여줬으며, 이는 ALL 이라는 밴드가 Descendents 의 후신이라는 엄청난 메리트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미없는 밴드” 가 되어 버리는데 결정타적인 역활을 하게 된다. 밴드를 거쳐갔던 3명의 보컬리스트 모두는 “넌 Milo 가 아니잖아!” 라는 비아냥을 이겨 내면서 음악 활동을 해야만 했으며, 이를 지켜보던 나머지 멤버 3인은 물론이거니와 ALL 과 함께했던 레코드 레이블측 관계자, 동료 밴드 멤버들, 심지어 Descendents 의 보컬 Milo 마저도 너무한 처사였다며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ALL 의 커리어는 Descendents 의 90년대 이후의 모든 커리어에 있어 정말로 큰 자양분이 되었었다. Descendents 의 4번째 앨범이자 Milo 의 완전 탈퇴가 이뤄졌던 ALL (1987) 앨범을 기점으로 밴드는 급격한 음악적 변화를 겪게 되었는데, 후신 밴드인 ALL 은 그러한 변화를 체계적으로 행하며 또 한번의 음악적 패러다임 시프트에 성공, 팝펑크라는 장르를 또 한번 흥미진진하게 바꿔 나갔다. 기타팝 베이스의 송라이팅 레벨의 업그레이드, 펑크락/하드코어 펑크와의 뛰어난 조화 센스 발휘, 매쓰락 스타일에 대한 탐구와 자기화 성공, 셀프 프로듀스를 통한 자신들만의 사운드 프로덕션 확립등이 ALL 의 앨범들을 통해 체계적으로 시도 되었으며, 앨범 장수를 쌓아가면서 서서히 완벽한 모양새로 귀결 되었다. 허나 Descendents 의 올드팬들은 철저하게 그러한 ALL 의 뛰어난 음악적 행보에 대해 냉담하게 대할 뿐이었다. 1996년에 Descendents 의 컴백작 Everything Sucks 가 발표 되었고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원한것” 이란 반응이 팬들로부터 나오면서 ALL 의 뛰어난 음악 여정은 자연스레 뒷전으로 밀려 나 버렸다. 이는 눈쌀이 절로 찌푸려지는, 좋지 않은 처사라 할 수 있었다. Everything Sucks 에서 보여준 “탈-80 Descendents/새로운 Descendents 스타일의 확립” 의 혁신성은 순전히 ALL 의 커리어에서 비롯 된 것이기 때문이다. Descendents 의 앨범만 차례대로 들어 본다면 Everything Sucks 의 변화상/발전상은 정말로 경이로운 것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공백 사이에 있었던 ALL 의 앨범 커리어도 체크 해 본다면? 이 경이로움이 그저 Descendents 서만 나오지 않았다는 점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으며, ALL 이라는 밴드가 Descendents 의 90년대 이후 행보에 음악적 토대가 되었음 또한 확실히 인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 혹은 최고의 자리에 ALL 의 통산 7번째 앨범인 Pummel 이 존재한다.
ALL 은 3번째 보컬리스트이자 밴드 경력 전혀 없는 주변 인물이었지만 노래를 시켜봤더니 꽤 잘해서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격영입 되었다는 다소 황당한 백그라운드를 지닌 Chad Price 의 가입과 함께 발표된 5번째 풀렝스 앨범 Breaking Things (1993) 으로 음악적 대격변의 토대를 마련한 바 있었다. Breaking Things 는 앨범을 통해 ALL 은 팝펑크라는 장르가 “80 하드코어 펑크 베이스” 가 아닌, “고전 기타팝 베이스” 로 완벽하게 변화 했음을 보여주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 한 바 있었다. 고전 기타팝 코드를 십분 사용 했지만, 펑크락다운 파워풀함과 스피디함을 충분히 구사하며 본질에 충실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으며, 꽤 괜찮은 시도였지만 매 앨범마다 팝펑크 밴드로의 본질을 흔들리게 만드는 매쓰락적인 요소는 앨범에 3-4곡 정도로만 제한하며 다소 혼잡스런 자신들의 스타일을 체계적으로 정리 해 나가기도 했다. 싱글곡 Shreen 을 통해 대중적으로도 힛트 할 수 있음 또한 보여 준 바 있다는 점, 맨땅의 헤딩하듯 좌충우돌 하던 자신들만의 사운드 프로덕션 확보에도 확실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 간과 해서는 안되는 Breaking Things 의 성과였다.
Breaking Things 의 후속작 Pummel 은 그러한 또 한번의 음악적 터닝포인트를 베이스로 만들어진 앨범이었다. Breaking Things 에서 보여 준 음악적 도전과 혁신적 성과에 비하면 Pummel 은 그 진취적인 부분이 꽤나 부족한 인상이었다. 하지만 Pummel 에는 이전 작품들과 확연히 구별 될 정도의 “완전체” 앨범을 만들어 냈다는 대단한 업적이 존재한다. Descendents 의 중기 앨범부터 시도한 탈-80 하드코어 펑크적 송라이팅/고전 기타팝의 전통을 잇는 뛰어난 송라이팅으로 탄생 된 곡들로 가득 채워졌으며, 단 한번의 허술함이나 지루함 없이 물 흐르듯 진행되는 앨범 전체적인 구성미의 굉장함도 인상적 이었다. 고전 기타팝에 근간을 둔 송라이팅이 큰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이들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펑크밴드” 에 어울리는 파워풀함/스피디함의 비중도 충분히 구비 해 두며 특정 장르음악 다운 매니악함의 수치 또한 떨어 트리지 않았다. 당시로는 매우 혁신적이고 충격적인, 도저히 쉽게 아무나 구사 할 수 없던 기타팝과 펑크/하드코어의 뛰어난 음악적 융합이 이 앨범을 통해 발휘 되었고 이는 Descendents 와 ALL 커리어 모두에 있어 또 한번의 음악적 패러다임 시프트 완성이었으며, 밴드 전체적인 커리어 하이라고 해도 무방한 것이기도 했다.
이 앨범 뒤에 나온 Descendents 의 재결성 작품이자 90년대 팝펑크 랭크 1-2위를 다투는 초명반이 할 수 있는 Everything Sucks 가 더욱 더 뛰어난 송라이팅, 펑크/하드코어 밴드다운 매니악함의 과감한 제시, 뛰어난 연주력과 팀웍을 통해 더욱 한차원 높은 파퓰러함과 매니악함을 들려 주었으며 팬들마저 Everything Sucks 라는 앨범을 더욱 사랑 하였기에 이 ALL 의 앨범 Pummel 은 뒤쳐져 버리게 된다. 허나 “음악적 최종결론보다 먼저 시도한 시기가 중요하다” 라는 또 다른 평가근거를 가지고 평가를 해 본다면? Pummel 과 그 이전의 앨범인 Breaking Things 가 더욱 높은 평가를 받아야만 옳을 것이며, 레벨이 좀 더 높은 Pummel 이야말로 Descendents 와 ALL 의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한장이라 평가하는것도 그리 틀린말은 아닐 것이다.
프로듀싱적인 면모의 대단함, 그리고 그 후폭풍에 대한 사항은 따로 분리해서 다뤄야 할 정도로 의미가 크다는 점 또한 Pummel 의 장점 중 하나다. 이들은 Descedents 초기 활동부터 자신들이 직접 프로듀스 하며 자신들의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데에 큰 야심을 가지고 있었고, ALL 의 활동이 시작 되면서 부터는 그 시도가 본격적인 결과로 도출되던 시기였었다. 이를 주도한 밴드의 드러머인 Bill Stevenson 은 차근차근 프로듀서로의 경력을 쌓기 시작했는데, 이 앨범 Pummel 를 기점으로 그는 프로적인 프로듀서로 완벽 진화를 하게 된다. 그는 전작 Breaking Things 를 통해 드디어 자신만의 튠을 확보했고, 차기작을 준비 하던차에 갑자기 메이저 레이블 Interscope 가 이들에게 딜을 제시하여 (그 당시 메이저 레이블들은 팝펑크라는 장르가 그런지에 이어 돈이 될 확실할 아이템임을 완벽하게 눈치채고 재야의 인기 팝펑크 밴드들에게 빅딜을 마구 던져대던 시기였다. 이 장르의 원조급인 Descendents 의 후신인 ALL 에게 Green Day 의 빅힛트 이전에 오퍼가 날아 든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었고 말이다.) 갑자기 메이저 레이블 소속 아티스트가 되었는데, Bill 은 그때 받은 계약금 전부를 시원하게 녹음 스튜디오 제작에 투자 하였고 그렇게 만들어진 스튜디오인 The Blasting Room 에서 첫 녹음을 가졌는데, 그 앨범이 바로 Pummel 이다. Pummel 은 펑크/하드코어 특유의 로우한 에너지틱함, 양질의 기타팝에서나 볼 수 있었던 매끈한 사운드 톤의 매력을 동시에 자랑하는 멋진 프로덕션이 돋보이는 앨범이었고, 이 역시 Descendents 와 ALL 의 음악적 특징의 극대화는 물론이거니와 앞으로의 커리어에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또한 이 앨범을 제작하며 만들어진 The Blasting Room 과 Bill Stevenson 의 프로듀싱은 훗날 The Ataris, Rise Agaist, Comeback Kid, Lagwagon, MxPx, Less Than Jake, Good Riddance, Anti-Flag, Useless ID, Propagandhi, Teenage Bottlerocket, FC Five 와 같은 수많은 명 밴드들의 명반 탄생에 큰 기여를 한 바 있지 않던가? Pummel 에서 “The Blasting Room 만의 사운드” 가 완벽하게 구현 되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앨범은 보란듯이 실패 해 버리고야 만다. 메이저 Interscope 의 화끈한 영입, 부족함 전혀없는 금전적 지원속에서의 아쉬움 없는 작업, 메이저 레이블측의 푸쉬를 통해 MTV 출연 및 뮤직비디오 방영은 물론이거니와 유명 코메디언 Conan O’Brein 의 토크쇼에 출연해서의 라이브 퍼포먼스까지 행하는 등 밴드조차 믿기지 않을 정도의 푸쉬가 행해졌지만 앨범의 판매고는 매우 저조했다. 상업적 성과가 나오지 않자 Interscope 는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밴드를 내쳤다. 그렇게 ALL 의 메이저 필드 커리어는 단명 했으며, 밴드 역사에 있어서 대격변을 보여 준 Pummel 은 처참하게 묻혀 버리고야 만다. 그나마 그 가치를 알아 본 것은 무섭게 성장하고 있던 펑크 전문 레이블 Epitaph Records 였다. 그들은 메이저와 결별하자 마자 ALL 을 영입했다. 그와 동시에 Descendents 의 보컬리스트였던 Milo 는 밴드 멤버에게 연락하여 다시금 밴드를 하고 싶다는 말을 하였고, 그렇게 Descendents 는 Everything Sucks 라는 명반과 함께 컴백하여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렇게 ALL 과 Pummel 은 더욱 철저하게, 더욱 완벽하게 묻혀지게 된다. (추가: Everything Sucks 는 원래 ALL 의 신작으로 나올 계획에 있던 앨범이었다. ALL 의 보컬인 Chad Price 와 함께한 프리 프로덕션 작업이 엄청나게 진행 된 가운데 Milo 의 컴백이 타진 되었고, 그렇게 그 앨범은 ALL 의 새 앨범이 아닌, Descendents 의 앨범이 되었다. Chad Price 와 함께 한 Everything Sucks 세션은 생각보다 파일 공유 프로그램을 통해 쉽게 구할 수 있으며, 이 역시 ALL 만의 과하게 평가 절하당한 뛰어남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지금도 ALL 의 앨범 Pummel 은 거론이 잘 되지 않는다. Descendents 가 2016년에 신작 앨범을 내고 계속해서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있어도 말이다. 허나 이는 매우 부당하며 그릇된 결과다. 앞서 말했듯이 Pummel 은 90년대 이후 Descendents 스타일의 모든것을 보여주는 앨범이었기 때문이다. 뛰어난 송라이팅과 연주력, 대중성과 매니악한 장르 음악 두가지 모두의 극대화와 유례가 없던 황금조합 공식과 매니징, 앞서 설명한 것들을 무한대로 살려주는 뛰어나면서도 독창적인 프로덕션까지… 모든것이 굉장했고 완벽했다. 허나 이 앨범은 전혀 거론되지 않고 있다. Descendents 의 90년대 이후의 앨범들에서 나타난 “또 한번의 팝펑크 혁신” 에 대해서만 울려 퍼지고 있을 뿐이다. 너무할 따름이며, 너무나도 아이러니 하여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팝펑크라는 펑크 서브장르를 발명 했으며, 그것을 쉴 새 없이 발전 시킨 Descendents 의 영광의 이면에 ALL 과 Pummel 이라는 극단적 평가절하의 그림자가 존재하기에 그러하다. 이 뛰어난 앨범이 받고 있는 대접은 한없이 제로에 가까운 언급, 첫 프레스 이후 재판조차 이뤄지지 않음, 현재 절판 상태라는 씁쓸한 결과 뿐이다. 현재 Descendents 의 12년만의 새 앨범 Hypercaffium Spazzinate 가 선풍적인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12년만에 새 앨범에서도 Descendents 특유의 음악적 개성이 한결같이 굉장하다는 평이 많다. 바로 지금이 아닐까 생각한다. Pummel 이라는 비운의 대명작이 제대로 평가 받아야만 하는 때가 말이다. 90년대 이후의 Descendents 의 앨범들, 그리고 그 앨범들을 좋아하는 수많은 사람들… 그 모두는 이 앨범 Pummel 에게 큰 빚이 있다. 그걸 지금이나마 알아 줬으면 한다.
- Mike Villain
Million Buc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