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AC – What One Becomes (Thrill Jockey, 2016)
포스트 하드코어, 포스트락, 둠/슬럿지의 기막힌 혼합체인 “포스트 메탈” 의 창시자로 2000년대 헤비니스 클래식 밴드로 자리매김한 Isis 의 리더 Aaron Turner. 2000년대 매쓰코어/케이오틱 하드코어를 논하는데 있어 절대 빠릴 수 없으며, 매우 유니크한 팀 컬러로 유명했던 Botch 와 These Arms Are Snakes 를 거쳐 2000-2010년대 포스트 메탈의 아이콘 밴드 중 하나인 Russian Circles 에서 활약하고 있는 Brian Cook. 2010년대 블랙큰드 하드코어 초신성 밴드 Baptists 에서 무지막지한 비트 폭격, 그러한 과격한 드러밍이 지닌 단순무식함과는 현저한 차이를 보이는 테크니컬/유니크한 박자감각과 비트 센스를 아낌없이 보여 준 바 있는 한 괴물 드러머 Nick Yacyshyn. 이 세 거물이 모여 2014년에 결성 된 SUMAC 은 말 그대로 “슈퍼 밴드” 였다. 특히 Aaron Turner 와 Brian Cook 는 꾸준한 사이드 프로젝트 활동을 통해 자신들의 메인 밴드와는 다른 팀컬러의 추구 & 자신들의 메인 밴드의 명성과 이어지는 묵직한 음악성을 고루 보여 준 바 있기에 SUMAC 은 결성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기대와 관심을 받았으며, 그 예상대로 데뷔작 The Deal (2015) 은 정말 핫 한 반응을 얻었었다.
허나 다시금 생각 해 본다면 SUMAC 의 데뷔작 The Deal 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좀 많이 과대평가 받은 것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라고 사료된다. 세 멤버들이 몸 담고 있는 밴드에서의 이름값 다운 다운 것들이 나오긴 했다. 하지만 전혀 새롭지 못했다. Isis, Russian Circles 에서 보여 준 뛰어난 포스트 메탈 공식의 여전함은 멋지긴 했지만, SUMAC 만의 어레인지 없이 너무 과거 커리어들을 대놓고 베껴다 쓴 수준이었고, Nick Yacyshyn 의 과격함과 현란함을 겸비한 드럼 패턴 역시 Baptists 에서의 그것과 너무나도 똑같았으며, SUMAC 에서 꽤나 겉돌기까지 했다. 각 멤버들이 몸 담곤 있는 밴드들의 오리지널리티를 베이스로 하여 이들만의 팀 컬러가 나왔어야 했었다. Aaron Turner 와 Brain Cook 이 선보인 이런저런 밴드들과 사이드 프로젝트에 보여진 것들 말이다. 이들의 데뷔작에는 그런게 전혀 없었다. 각 멤버들이 자신들의 이력서를 제출하고, 그걸 한데 모아 왼쪽 상단 모서리에 스테이플러로 한방 콕 찍은게 전부, 그것이 The Deal 에 대한 솔직한 감상이었다. 팬들과 평단의 평가는 뜨거웠지만, 그건 좀 많이 오버였다고나 할까? The Deal 에 소모 할 시간이 있다면, 지겹게 들었을터인 Isis, Russian Circles 및 두 핵심 멤버의 이런저런 사이드 프로젝트를 한번 더 드는게 나았다.
필요 이상의 호평을 받았긴 했지만, SUMAC 은 확실히 괜찮은 반응을 이끌어 낸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이들은 데뷔작 The Deal 의 열기가 채 식지 않았는데도 1년 남짓한 시간에 신작 앨범 What One Becomes 을 발표했다. 좀 과하게 서둘러 쥐어 짠 느낌이 들 정도라는 점, 데뷔작 The Deal 이 그들 명성에 비해 좀 많이 안일하게 만들어진 앨범이었다는 점, 그 두가지 때문에 신작에 대한 기대치는 영 저조하다. 하지만 SUMAC 의 2번째 앨범 What One Becomes 는 앞서 지적한 “과거 음악 커리어의 존재감을 베이스로 한, 또 하나의 새로운 이들만의 팀 컬러 확보/표출” 에 극을 보여주며 청자의 혼을 빼 놓는 한장이다. 2015년에 반드시 들어야 하는 헤비니스 음반이라는 생각, 더 나아가 2010년대 헤비니스 클래식으로 조심스레 점쳐야 하지 않는 생각까지도 부여한다. 그렇다. What One Becomes 은 이들 명성에 걸맞는 무언가를 제대로 보여주는 한장이다.
SUMAC 의 음악 스타일은 Isis, Russian Circles 의 포스트 메탈 사운드를 Electric Wizard 와 같은 독한 둠메탈로 어레인지한 것이라 간단하게 정의가 가능 할 것이다. 데뷔작 The Deal 은 그것이 잘 안 되었다. 둠/드론 메탈의 거대한 헤비함을 사운드 질감만으로 표현 했을뿐, 음악 장르적 내용물은 자신들의 과거 포스트메탈 커리어를 (어레인지 전혀 없이) 그대로 가져다 쓴 안하무인격 음악이었고, 그러한 부분은 실망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신작은 다르다. 그러한 안일함과는 거리가 멀며, 의도적으로 그 단점들을 죄다 해결하려 노력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치밀하고 계획적인 느낌도 강하다. 자신들의 과거 포스트 메탈 커리어에서의 하드코어-포스트락-둠/슬럿지의 삼위일체 및 뛰어난 존재감은 여전하다. 그 3가지 장르/스타일의 황금 밸런싱을 그대로 유지 하면서 Sunn O))), Electric Wizard, Boris 와 같은 무지막지한 헤비함의 둠/드론 메탈적 특징을 얹어낸다. 그리고 다양한 곡 전개/연주적 어레인지를 통해 SUMAC 만의 오리지널리티를 발생 시킨다. 둠/드론 메탈 특유의 거대한 헤비 사운드의 원천이 되는 10분대의 긴 러닝타임과 단순한 리프의 무한 반복으로 인한 스케일 메이킹에 매우 충실하지만, 지루함과는 거리가 멀다. 느리고 단순한 리프의 징글맞은 반복 속에도 적절하게 리프 패턴에 변화를 주면서 둠/드론 메탈이 지닌 단점이라 할 수 있는 듣고 즐기는 재미의 절대 부족함을 해결하고 있다. 여기에 화려함과 과격함이 겸비 된 Nick Yacyshyn 의 화려한 드러밍이 첨가, 다이내믹함과 흥미진진함이 한껏 더해지며 더욱 더 강렬한 팀 컬러가 구축되며 이 앨범은 신선함의 경지로 더욱 더 나아간다.
본작 What One Becomes 은 한마디로 말해서 둠/드론 메탈의 장점의 극대화, 단점의 최소화를 보여주는 쾌작 그 자체라 평 할 수 있을듯 하다. 둠메탈은 2000년대 들어와서 프록 메탈/모던 헤비니스를 만나며 매우 캐치 해 지는 경향이 있었고, 2010년대 들어와서는 그에 대한 반감으로 인한 것인지는 몰라도 둠메탈 특유의 느리고 헤비하며 반복적 헤비리프에 대해 과거 보다도 더욱 독하게 집착하여 다시금 이 장르 특유의 독기를 내뿜고 있던 중이다. SUMAC 은 두번째 앨범인 본작을 통해 그 두가지 모두를 제대로 보여주려 노력한다. 둠메탈이 지닌 지루함을 한껏 동반한 암울 헤비니스의 기본 자세에 대해 매우 충실하고 있지만, 각 멤버들이 선보였던 2000-2010년대의 혁신적 헤비니스 사운드 (=포스트메탈) 의 창조자답게 그 독함을 신선하고 흥미진진한 “이들만의 무언가” 의 창출에도 소홀 해 하지 않는다. 독하디 독한 헤비함과 지루함과 암울하의 둠/드론 메탈을 흥미진진한 엔터테인먼트형 사운드로 즐길 수 있다고 생각 하는가? 그리고 그 다이하드한 장르가 다양한 어레인지를 통해 힙한 음악적 스타일로 탈바꿈 할 수 있다고도 생각하는가? 아마 그럴리 없다고 생각 할 것이다. 하지만 SUMAC 은 그것을 해내고 있다. 흔히들 특정 다이하드 장르가 지닌 “독한부분” 을 “흥미롭게” 만들면 대개 변절이라던지, 불가능 이라던지, 두마리 토끼는 잡을 수 없다는 투의 말들을 한다. 그건 틀린 말이다. What One Becomes 는 그것을 아주 철저하게 파괴 시키니까 말이다.
- Mike Villain
Rigid 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