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eator – Coma Of Souls (Noise/Epic, 1990)
Kreator 는 놀랍게도 미국 시장에, 그것도 메이저 레이블인 Epic 을 통해서 발매 된 적 있는 밴드 입니다. 이는 매우 매우 매우 경이로운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Kreator 는 너무나도 과격하기 그지 없는 밴드였기 때문이죠. 1986년에 발표 된 그들의 두번째 앨범 Pleasure to Kill 은 그 당시의 쓰래쉬 메탈 평균치 보다 몇 곱절은 과격 하였고, 수많은 과격 사운드를 경험한 자부심 넘치는 다이하드 메탈팬들 마저 질리게 만들 정도의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괜히 Pleasure to Kill 이 데스 메탈과 블랙 메탈의 청사진을 그린 앨범이자, 그라인드코어의 극단적 과격함 구축에 힌트를 준 앨범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지금까지도 칭송받고 있는게 아니라는 말이죠. 1986년이 Metallica 가 서서히 메탈계 내에서 새로운 돌풍을 일으킬 차세대 유망주로 손꼽히던 시절 이었음을 점을 감안 해 본다면 Kreator 등장은 말 그대로 대사건 그 자체였습니다. (추후에 미국 시장에 정식적으로 발매 되기는 하지만) 수입반의 형태로 꾸준히 다이하드 메탈 팬들의 필수 컬렉션으로 사랑 받았던 앨범이 Pleasure to Kill 였고, 그렇게 Kreator 는 미국 메탈씬에서 의외로 단단한 컬트 팬층을 구축하게 됩니다. “Scorpions 를 제외하면 가장 유명한 독일 메탈 밴드” 라는 그 당시의 평가는 절대로 고개를 갸우뚱 할 만 한게 아닙니다. “트루 스토리” 였으니까요. 그리고 그들만의 극단적인 과격함을 유지한 채 좀 더 기승전결을 세련되게 다듬은 후기작인 Terrible Certainty (1987) 또한 빠르게 인기몰이를 하며 미국 메탈 언더그라운드씬을 뜨겁게 달구자 미국의 메이저 레이블 Epic 은 결단을 내립니다. 그들의 미국 내 발매 딜을 따오는 것 이었죠. 그렇게 Kreator 는 미국 메이저 무대에 입성하게 됩니다.
그들의 미국 시장 데뷔 및 메이저 레이블 데뷔작은 Extreme Aggression (1989) 이었습니다. 네 그래요. 기승전결을 좀 더 뚜렷하게 만들고, 캐치한 훅을 조금씩 넣기는 했지만 Kreator 하면 떠오르는 그들만의 과격하기 그지 없는 매력을 담는데 부족함이 없는 앨범이자, “독일 쓰래쉬는 차원이 다른 과격함이 있다!” 라는 점을 전 세계의 메탈 팬들에게 완벽히 각인 시키며 그들의 앨범들 중 단연코 최고로 평가 받는 그 앨범 말이에요. 미국 시장 데뷔라서 조금 듣기 수월한 훅을 많이 가미하며 타협한(?) 형태의 앨범이기는 했지만, 메이저 레이블이 만족 할 만한 레코드 세일즈를 기록 할 만한 정도의 변화상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Slayer, Sepultura 와 자웅을 겨룰 정도의 매니악함의 진수였죠. 평단 및 메탈 매니아들 로부터 극찬을 받았기는 하지만, Extreme Aggression 에게는 숙제가 주어지고 말았습니다. 좀 더 팔릴만한 앨범을 만들어야 한다는 숙제였죠.
그런 분위기속에 딱 1년만에 발표 된 차기작 Coma Of Souls 는 꽤 흥미롭고 놀라운 한장 입니다. 이 앨범은 Kreator 의 그때까지 커리어에서 가장 듣기 수월한 쓰래쉬 메탈을 들려 줍니다. 미친듯이 긁어대고 두드려 대며 광기에 가까운 과격함을 숨막히게 제공하던 과거 모습은 꽤나 많이 희석 되었습니다. 템포도 많이 줄이고, 멜로디 라인도 많이 사용하고, 리드미컬한 리듬도 타며 쉴 새 없이 듣기 편한, 캐치한 포인트를 많이 만들어 냈죠. 과격함의 화신인 Kreator 에게 그러한 변화는 비난을 들을만한 요소가 충분 하였습니다. 그 당시 다이하드 메탈러들의 까탈 스러움과 트루 메탈에 대한 목마름은 차원이 달랐고, 변화를 시도하던 밴드조차 Metallica 를 제외하면 전무하던 시기였기에 이러한 변화상은 매우 위험 했습니다. 그 당시 기준으로 꼬투리 잡히고 까일만한 요소가 너무나 많았다는 말이죠.
하지만 놀랍게도 그러한 시도에 의한 결과물은 불평은 나올 수 있을 지언정, 악평은 나올 수 없게 귀결 되었습니다. 과격한 스피드도 줄고, 그들답지 않은 캐치한 코드도 너무 진하지만, Kreator 만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본작의 핵심이기 때문이죠. 톤 다운을 했어도 주머니 속의 송곳마냥 날카롭고 뾰족한 Kreator 만의 과격함은 쉴 새 없이 표출 됩니다. 아니, 어쩌면 그 표현은 틀린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캐치한 구석이 많기는 하지만, 대놓고 전작 Extreme Aggression 에서의 과격함을 그대로 이어가고 재현하는 트랙들 또한 은근 많기에 “송곳을 그냥 주머니에 넣을 생각조차 없었다” 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라디오나 텔레비전에 흘려 보낼 만한, 그로 인해 앨범을 집어들게 만드는 사람이 더 많이지게 하려는 곡 서너개 구비 해 놓고 나머지는 그냥 하던대로 하고, 슬쩍 캐치한 코드 적재적소에 집어 넣는 정도의 앨범이라는 평이 좀 더 정확하지 않나 사료 되네요. 보컬리스트 Mille Petrozza 의 앙칼지고 사악한 보이스의 여전함 또한 Kreator 만의 남다른 과격 아이덴티티를 지켜주고 있음 또한 반드시 언급하고 싶기도 합니다. 좀 더 캐치한 요소를 집어 넣으면서 각 멤버들의 탄탄한 연주력을 확인 해 볼 수 있는 포인트 라던지, 전작에 없던 각 멤버들과의 유기적인 음악적 호흡이 발견되는 등 다소 캐치한 변화상은 마냥 마이너스 요소로는 생각 되지가 않네요. 우려에 비해 결과가 매우 좋게 나온 의외의 쾌작이라고나 할까요? 충분히 합격점 이상의 앨범 이었습니다.
하지만 Coma Of Souls 는 메이저 무대에 전혀 걸맞지 않는 판매고를 다시 한번 보여주며 그대로 메이저 레이블과의 결별로 이어 집니다. 미국 메이저 음반사와 Kreator 는 절대로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었죠. 메이저 무대에서도 그들다운, 독일 쓰래쉬 메탈 특유의 독기를 메이저 무대에서 흔들리지 않고 소신껏 충분히 담아내는 것 하나만으로 칭송 받을만 하다고 생각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과격한 스타일의 고수는 좀 이른감이 없지 않나 싶습니다. Slayer 의 Seasons in the Abyss (1990) 라던지, Sepultura 의 Arise (1991) 과 같은 빅네임들의 힛트 뒤에 발표 되었다면 좀 더 괜찮은 결과를 낳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꽤나 드네요. 여튼 “메이저 무대에서 자신들의 아이덴티티를 지키며 선방했다” 라는 것으로 아주 높은 평가를 받을 만 합니다. 그렇게 좋은 이미지를 확보하며 메탈 팬들의 엄청난 지지를 받을 수 있는 포인트를 확보한 Kreator 는…..거짓말처럼 추락 합니다. Coma Of Soul 뒤에 발표 된 앨범들은 인더스트리얼, 고딕 메탈 등에 심취하며 그들다운 스피드와 과격함을 완전 버렸기 때문이죠. 90년대 내내 그들이 원하는 음악을 하느라 수많은 쓰래쉬 메탈 팬들은 안타까움을 오랜 시간동안 금치 못하였습니다. 다시금 Kreator 가 그들다운 과격함을 찾은건 2000년대가 되어서 였습니다. 그래서일까요? Coma Of Souls 는 그러한 점 때문이라도 참으로 휼륭한 앨범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하게끔 만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