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ggin’ The Grave #01] Oblivion Dust – Butterfly Head (Avex Trax, 2000)
X-Japan 의 메이저 필드에서의 성공과 그로 인한 상업적 터닝, 그리고 그것을 본 후발주자들의 앞다툰 상업화로 인해 (L’Arc-en-Ciel, Glay 같은 밴드들) 비주얼락은 꽤나 빠르게 상업적으로 성공했다. 그와 동시에 상업적인 황금기의 임팩트함으로 다소 이상의 부정적인 스테레오타입적 이미지를 구축했다. 이는 고정팬 및 다소 거친 이미지와 사운드의 락 음악이 진짜배기 락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딥한 리스너들에게 좋지않은 시선을 얻은것을 의미한다. 전자의 경우는 비주얼 락이 펑크, 하드락, 헤비메탈, 뉴웨이브 등 제대로 된 음악에서 파생 된 일본식 서브장르인데 너무 상업적인 꼼수 집단으로 오해를 받아서, 후자의 경우는 그냥 이래저래 재수 없어서일 것이다. 특히나 고정팬들이 주장하는 “제대로 된 음악” 이라는 부분은 꽤나 의미심장 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도 그럴것이 상업적 대성공과 주목 이전의 비주얼계는 꽤나 음악적 레벨과 락 음악으로써의 하드함이 꽤나 강했기 때문이다. Dead End, Gastunk, Rose Rose 같이 정통 하드락, 하드코어 펑크/잽코어의 시작점을 이룬 밴드들의 존재를 살펴 본다면 더더욱이다. 여하간 그렇게 상업적으로 안 좋게 나아갔지만, 그와 반대로 제대로 된 이미지를 구축하며 또 한번의 비주얼 락의 진화를 해 내려는 밴드도 꽤나 새로이 등장하기 시작 하기도 했는데, 그 중에서 Oblivion Dust 의 존재는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Oblivion Dust 는 재밌게도 미국에서 결성 되었고, 활동도 미국에서 하다가 일본으로 옳겨온 밴드이다. 기타리스트 K.A.Z. 와 영국/일본 혼혈계 보컬리스트 Ken Lloyd 을 중심으로 1996년에 결성 되었고, 초기부터 메이저와 계약하고 활동하며 The Prodigy, Marilyn Manson 과 같은 밴드로도 뛰는 등 나름 전격적 푸쉬를 받았었다. 이러한 뒤를 봐 준것은 X-Japan 의 멤버인 hide 였으며, 밴드의 기타리스트 K.A.Z. 는 hide 의 솔로 활동 중 가장 뛰어난 밴드이자, 비주얼락의 다음 시대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혁신적인 밴드 hide With Spread Beaver 의 최고 핵심멤버로 맹활약 하며 더더욱 그 재능을 알렸고, 인정 또한 충분히 받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이 리드하는 Oblivion Dust 활동에 꽤나 매진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앨범을 한장만 들어봐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비주얼 락의 현대화라는 야심을 크게 품고 있었고, 그에 걸맞는 결론들을 척척 내놓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앨범은 4번째 풀렝스 앨범인 Butterfly Head 이다.
이 앨범은 비주얼 락이라는 장르이자 스타일이 얼마나 90-2000년대에 어울리게 얼마나 멋지게 진화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한장이다. 이 앨범은 비주얼 락이 지닌 음악적/취향적 단점을 절대 부정하지 않으며, 그와 동시에 그러한 것들을 모두 뜯어 고치려는 심상이 느껴 질 정도로 과감하게 현대적인 장르/스타일을 덧대고 있다. Boowy 로 부터 시작 된 뉴웨이브/펑크락 스타일이 뿌리가 되고 있으며, 거기에 얼터너티브 락, 모던 헤비니스, 테크노/일렉트로닉스를 과감히 도입하고 융합하고 조화를 이루려 노력하고 있다. 비주얼 락 특유의 간드러지는 멜로디 중심의 전개와 육중한 헤비 덩어리의 리프 전개가 동시에 전개 된다는 것 만으로도 충격적이지만, 더욱 놀라운 점은 매우 뛰어난 음악적 결론으로 귀결 된다는 점이다. 비주얼락의 전통의 모든것과, 그와는 전혀 안 어울리는 90년대 헤비니스와의 완벽한 이해와 구사라는 명제를 시원하게 해치우는 기타리스트 K.A.Z. 실력과 센스는 명불 허전이고, 그의 파트너인 보컬리스트 Ken 의 보이스 역시 간드러지는 섹슈얼 보이스 부터 헤비한 기타톤에 어울리는 스크림을 수월하게 오가며 K.A.Z. 와 함께 밴드의 음악적인 투톱으로써의 위용을 뽐내는데 주저함이 없다. 그 두명의 음악적 리드만큼은 아니겠지만, 이질적인 모던 헤비니스 스타일의 굵직한 그루브를 선사 하면서도 비주얼 특유의 센스 역시 잘 맞춰주는 베이시스트 Rikiji 와 드러머 Furuton 의 서포트 역시 나무랄데가 없다. 일본적인 락과 미국적인 헤비니스의 경이로운 조화는 각 멤버들간의 뛰어난 음악적 융합으로도 이어진다. 뒤집어서 “각기 다른 스타일과 색채를 지닌 멤버들이 융합이 잘 되었기에 이렇게 달성하기 힘든 믹스쳐가 성공된다” 로도 이야기 할 수 있기도 할 정도로 대단하다는 점, 이 앨범의 또 다른 혹은 진정한 장점일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밴드는 이 앨범의 발표와 1년 남짓한 활동 후 이듬해인 2001년에 해산을 결정한다. 밴드는 리더 K.A.Z. 와 보컬 Ken 을 제외하고는 계속 멤버가 바뀌는 문제를 겪고 있었고, 이 앨범 발표와 활동에서도 그러한 문제점이 또 한번 발생 한 데다가, 음악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건 다 보여주었다고 판단 했기에 시원스레 해산을 결정 한 것이었다. 그리고 재밌게도 해산 후 각 멤버들의 음악적 재능은 더욱 더 인정받게 된다. K.A.Z. 는 데뷔와 동시에 이미 메이저 비주얼 락 스타들에게 조용하고도 활발한 러브콜을 계속 받아왔던 사람이었고, 밴드 해산 후에 L’Arc-en-Ciel 의 보컬리스트 HYDE 의 솔로 앨범에 참여 했으며, 그의 계속적인 구애로 프로젝트 밴드인 VAMP 에 참여 진정한 핵심 멤버로써 또 한번의 비주얼 락 개선에 나섰고 매우 좋은 상업적/음악적 평가를 얻는데 성공했다. 그와 동시에 유명 가수들에게 곡을 대주는 작곡가로도 활약했고, 그러한 활동이 인연이 되어 여성 모델 겸 락 뮤지션으로도 알려진 츠지야 안나와의 결혼에 골인 하기도 했다. 보컬리스트 Ken Lloyd 역시 꽤나 러브콜을 많이 받던 인물이었고, Luna Sea 의 기타리스트 INORAN 과 함께 프로젝트 Fake? 를 결성하여 활동, 이 역시 괜찮은 성과를 남기기도 했다. 나머지 멤버들 역시 다양한 대중적 락, 비주얼 락 씬에서 세션 및 투어 멤버로 활동하기도 했고 말이다. 이렇게 빅네임들의 러브콜과 프로젝트 밴드 활동 및 상업적/평론적 호평의 원동력은 뭐니뭐니 해도 Oblivion Dust 였다. 이들은 비주얼 락이 지닌 음악적 문제를 해결하는 한편, 또 다른 방향성을 완벽하게 제시 했으며, 그렇게 만든 방향성에서 최고의 결론을 내리는데 성공했다. 또한 굳이 비주얼 락이라는 세계에서만 국한되지 않은, 2000년대의 일본 락 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한장으로써의 네임벨류를 기록하는데에도 성공 했다는 점 역시 중요 하다고 말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가장 뛰어난 결론을 내린 이 앨범, Butterfly Head 는 최고점이라 말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앨범은 한국에 아무 의미없이 발매 되었다. (지금도 물론이거니와)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일본 락 음악에 대한 관심은 X-Japan 으로 부터 시작된 상업적인 비주얼 락 뿐이었고, 그 당시에 건재하던 “일본어로 된 음반은 국내에 정식 불가능” 이라는 법률은 여전히 강렬히 존재하고 있었다. 게다가 발매사는 무려 “연예기획사” 으로써 벌일 수 있는 음악적 하찮음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던 SM Entertainment 였다. SM 은 다수의 자사 가수들을 일본으로 진출 시키기 위해 Avex Trax 와 업무공조 계약을 체결했고, 그로 인해 국내 라이센스 딜을 가지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일본어로 된 음반이 발매되지 못했기에 Avex 의 탑급 팝스타들을 라이센스 하지는 못했고, 대신 언어 문제가 전혀 없는 Avex 가 소속의 아티스틱한 뮤지션들의 라이센스 발매는 조용하고도 꾸준히 이루어져 왔었다. (Towa Tei 같은 뮤지션이 대표적) 그런데 뜬금없이 락 뮤지션이자, 국내에 어떤 혁신성을 지닌 뮤지션인지 조차 감지가 안 된 이들의 앨범이 라이센스 된 것이다. 앨범의 싱글컷이자 최고의 퀄리티를 지닌 킬러 넘버 Forever 가 일본어라서 심의 통과가 불가능 했지만, 밴드측이 직접 나서서 영어로 재녹음 할 정도로 국내 발매에 밴드측이 열의를 보인 작품이었지만 (게다가 Mission Impossible 2 사운드 트랙에 실린 곡도 보너스트랙으로 첨부 되었다), SM 이 지닌 프로모션/비즈니스의 한계성, 이들의 혁신성을 알아 채 줄리 없는 음악 평단과 리스너/팬들의 전무함으로 인해 이 앨범은 발매와 동시에 완벽히 묻히게 된다. 비주얼 음악이 지닌 음악적 한계는 물론이거니와, 비주얼 락이라는 음악이라면 당연하게 받을 “락 같지도 않은 락” 이라는 색안경적 시선마저도 박살 낸 쾌작임에도 말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악성 재고와 중고로 여기저기 널부러져 다니는 이 쾌작의 굉장함을 느끼기에는 말이다. 약간의 오픈 마인드와 인터넷 검색과 결재만 있으면 된다. 서두르시라.
- Mike Villain
Fore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