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ituary – Dying Of Everything (Relapse, 2023)
데스메탈 이라는 장르를 탄생 시키고 발전 시켜 온 1세대 밴드이자, (1997~2003년의 활동 중단이 있긴 했지만) 1984년 부터 지금까지 쉼 없는 활동을 하고 있는 Obituary 는 말 그대로 대단한 밴드 입니다. 해산만 하지 않았을 뿐, 투어 활동만 깔짝깔짝 하는 생계유지형 활동이 아닌, 풀렝쓰 앨범을 정기적으로 발표하고 이를 중심으로 한 프로페셔널 밴드로써의 모습을 40여년 가까이 이어오고 있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80년대에 밴드를 시작한 메탈 빅네임들 중 큰 트러블 없이 꾸준한 창작 활동을 이어오고 있으며, 그 결과물의 퀄리티 또한 뛰어난 밴드가 누가 있는지 세심하게 따져 본다면 그 수가 정말 적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잖습니까? Obituary 는 그러한 몇 안되는, 말 그대로 정말 대단한 밴드인 것이죠. 반박불가 입니다.
솔직히 Obituary 가 이렇게나 좋은 페이스를 보여 줄 지는 저는 예상치 못했습니다. 메이저 레이블이 되어 버린 친정 Roadrunner 를 떠나 Candlelight Records 에 자리잡고 발표 한 앨범들 이었던 Xecutioner’s Return (2007), Darkest Day (2009) 같은 앨범들은 괜찮긴 했지만 밴드의 창작 능력과 센스가 감소하고 있음을 부정하기 힘들었으니까요. 이렇게 명 밴드 하나가 서서히 자연스럽게 사라져 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 나온 앨범들인 Inked In Blood (2014), Obituary (2017) 는 달랐습니다. 캐치한 헤비-그루브 리듬다이를 매우 크게 부각 시키며 “좀 더 귀에 잘 걸리는” 스타일로 만든 이 두 앨범들은 부활을 넘어 “제2의 전성기 도래” 그 자체 였습니다. 꾸준히 손이 가게 만드는 마성 또한 굉장 했었구요. 그 두장의 앨범으로 인해 Obituary 는 사그러 들었던 메탈 팬들의 관심을 다시금 끄는데 성공 하였습니다. 큰 상업적 성과를 낼 수 있을 정도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새 앨범이 발표되면 팬들이 기대감을 가지며 바로 체크하게 될 정도는 충분히 되었습니다. 40여년의 경력을 지닌 올드비 메탈 밴드로써는 최고의 성과라 해도 과언은 아니겠지요.
5년만의 새 앨범 Dying Of Everything 역시 그 좋은 흐름을 이어 갑니다. 둠 메탈과 일맥 상통하는 코드를 지닌 느리고 어둡고 질퍽한 그들만의 메가톤 슬로우 헤비 데스메탈 사운드 특유의 다이하드함은 너무 많이 기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초기 대표작 Cause Of Death (1990) 이나 The End Complete (1992) 시절을 너무 많이 마음에 두시지 말라는 말이에요. 그건 90년대 Obituary 고, 이번건 2020년대 Obituary 입니다.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로 서서히 청자를 잠식 해 나가던 초기 스타일과는 다른, 귀에 착착 걸리는 캐치한 코드의 헤비 그루브가 한껏 강조 된 스타일의 앨범이 본작의 특징이니 그걸 잘 캐치해서 감상해야 한다는 말이죠. 조금 방정 맞은 느낌도 없잖아 있기에 분위기로 압도하는 초기작에 매우 큰 호감을 가진 바 있던 올드 팬이라면 이러한 새로운 Obituary 의 스타일에 대해 반감이 생길법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앨범을 쭉 들어보면 서서히 그들의 새로운 방향성에 잠식 될 수 밖에 없지요.
초기작에 비해 이해하기 쉽고, 좀 더 해드뱅과 슬램 댄스를 구사 하게끔 만드는 선동력이 강할 뿐, Obituary 가 지닌 그들만의 독특한 어둡고 질퍽한 헤비 사운드의 묘미는 여전히 독하게 표현 됩니다. 지옥의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과도 같은 John Tardy 의 그로울링 보컬은 여전히 독특한 Obituary 만의 그것 입니다. 미드-슬로우 템포에도 데스메탈 특유의 박진감을 쉴 새 없이 때려대는 Donald Tardy 의 드러밍 역시 Obituary 만의 그것이지요. “펜더 스트라토 캐스터로 이렇게나 로우한 질감을 뽑아낸다고?” 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Trevor Peres 의 기타 플레이 역시 Obituary 특유의 그것 입니다. 캐치한 코드가 좀 많아서 데스메탈 답지 않나 싶으면서도, 앨범이 쭉 전개되며 자연스레 펼쳐지는 이들만의 느리고 어둡고 질퍽한 컬트함은 언제 어디서나 충분한 양과 질로써 표현 되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Obituary 라는 느리고 헤비한 독특한 코드의 데스메탈 사운드의 묘미는 그대로 유지 된 채, 좀 더 즐기기 쉬운 코드들을 밴드 색채의 저하 없이 잘 비벼 낸 것이 본작 입니다. 그걸 캐치하는 순간 이러한 변화상도 괜찮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죠. 한마디로 다소 논란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올드팬의 까탈 스러움 마저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 음악적 설득력이 굉장한 앨범 입니다. 그건 인정 해야만 하는 부분이 틀림 없기도 합니다.
냉정히 평가를 내려 보면 본작은 전작 앨범들인 Inked In Blood (2014), Obituary (2017) 의 방법론을 또 한번 재탕한 것에 불과하지 않기는 합니다. 새로운 음악적 도전이라는게 없어요. 최근에 만들어 둔 스타일이 괜찮은데 굳이 뭐 새로운 걸 시도하나 하는 인상이 매우 강합니다. 하지만 이런 딴지 또한 자연스레 신보의 매력에 묻혀져 버리고 맙니다. 재탕 삼탕을 하더라도 결과물들이 너무 괜찮으니까 말이죠. 또한 재탕 삼탕 했지만, “신보” 라는 두 글자에 어울리는 지루하지 않은 흥분 거리를 충분히 제공 한다는 점 또한 인상적 입니다. 캐치함을 겸비한 데스메탈이 딴지 걸 부분이 없는 무서운 물건이었나 하고 감탄이 나올 지경 이에요. 그리고 좀 냉정하게 바라 보자구요. 1984년 부터 지금까지 거의 쉬지 않고 앨범 활동을 해 온 밴드의 11번째 앨범이 뛰어난 재미를 선사 하는데, 극찬을 내려줘야 하지 않을까요? Obituary 정도면은 꾸준히 앨범을 내 주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리스펙트 해 줘야만 한다고 봅니다. 근데 신보에서 합격점 이상의 재미꺼리가 가득이라고? 이건 인정 할 수 밖에 없지요. 그런고로 Obituary 의 11번째 앨범은 명작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