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tally Strange #06] Failure – Fantastic Planet (Slash/Warner Bros, 1996)
시애틀 그런지 빅4, Smashing Pumpkins, Stone Temple Pilots 와 같은 몇몇 밴드를 제외하면 안정적인 메이저 커리어를 이어나간 얼터너티브/그런지 밴드는 생각보다 별로 없는 편입니다. 시애틀 빅4와 비슷한 시기에 결성하여 그들과 함께 하며 실력을 갈고 닦아 메이저 필드에도 상륙 한 바 있는 네임드 밴드라도, Stone Temple Pilots 로부터 시작 된 상업형 그런지에 맞춰 등장한 메이저 기획 상품형 밴드라도 말이죠. 90년대 초중반의 그 뜨거웠던 얼터너티브 열기속에서 실제로 살아남은 밴드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을 감안 한다면, 그 당시를 실시간으로 겪었던 열혈 얼터너티브 키즈라 하더라도 Failure 라는 미국 LA 출신의 3인조 (때로는 4인조) 밴드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그리 잘못된 일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흘러 2010년대 까지 이르르자, 그 Failure 라는 밴드는 놀랍고도 의아 하게도 “90년대 그런지/얼터너티브를 논하는데 있어 빠트려서는 안되는 밴드” 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들의 마지막 앨범이자 3번째 앨범 Fantastic Planet 이 훗날 각기 다른 장르/문화 성향을 지닌 이런저런 음악 언론들로부터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죠. 이 현상은 개인적으로 매우 의아하게 다가 왔습니다. 저는 왕성한 활동을 할 당시의 Failure 의 음악을 접했지만 그리 크게 와 닿았지 않았는데, 훗날 그들의 마지막 앨범 Fantastic Planet 을 분석한 리뷰를 보자 그 당시 발견하지 못했던, 아니 발견하지 못 할 수 밖에 없었던 것들을 캐치 할 수 밖에 없었고 더 나아가 “내가 이들의 대단함을 눈치 못한건 그렇더라도, 왜 다른 사람들은 그 대단함을 발견하지 못한 것일까나?” 라는 의문을 가지며 그들을 극찬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더 나아가 저 또한 이 앨범에 대한 리뷰를 하고픈 욕구를 불러 일으키게 만들었네요. 그러면 90년대 비운의 얼트/그런지 클래식 Fantastic Planet 의 대한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Faillure 는 1990년 미국 LA 에서 결성 되었으며, 활동 2년차에는 메이저 배급망을 가지고 있는 인디팬던트 레이블이지만 세기의 아이콘 밴드들 (The Germs, Faith No More 등등) 과 같은 밴드들을 키워 낸 바 있는 Slash Records 와의 계약을 따 낸, 비교적 순탄한 초기 커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계약과 동시에 밴드는 무려 Nirvana 의 In Utero 앨범의 프로듀스를 담당 했으며, 노이즈락 아이콘인 밴드인 Big Black 의 리더, 거친 노이즈와 공간감을 독특하게 다루는 개성 넘치는 인물인 Steve Albini 와 함께 작업 합니다. 그렇게 발표 된 데뷔작 Comfort (1992) 를 발표하게 되고, 괜찮은 평을 얻게 되지만 상업적으로는 뭐 그저 그런 결과를 남기게 됩니다. Failure 의 놀라운 점은 여기서부터 시작 됩니다. 상업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메이저 레이블조차 실력을 인정하고 기용하기도 했던 Steve Albini 의 프로듀스에 대해 “별로구만?” 이라는 판단을 내림과 동시에, 자신들이 원하는 사운드 프로덕션을 직접 찾으며 셀프 프로듀스로 차기작 작업에 들어가는 모습에 대해 흠칫하지 않을 부분은 없다고 생각 합니다. 그러한 자신만만함 속에 발표 된 Magnified (1994) 에서 부터는 서서히 업계를 긴장하게 만들기 시작 합니다. 이 앨범 역시 인상적인 상업적인 성과를 내리는 데에는 실패 했지만, 얼트/그런지가 고출력 노이즈 디스토션 속에 펼쳐지는 젊은 세대의 1차원적인 분노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 주었기 때문이죠. 그들의 음악에는 그런지 특유의 디스토션 사운드 덩어리를 근간으로 만들어 내는 어두우면서도 감성적인 공간감이 있었으며 (사이키델릭, 스페이스락, 포스트락 같은 장르들에서”만” 찾아 볼 수 있는 그것), 귀에 착착 걸리는 기타팝 매직/천재성에 대한 소양, 시애틀 그런지씬의 펑크 스쾃과는 다른 뮤지션적인 위치, 그러면서도 뮤지션 특유의 지나친 아티스트리 엣헴질 자제가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비전, 야망, 실력, 애티투드 등 모든것이진 않아도 많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밴드는 다음 앨범에서 자신들이 차근차근 만들어 둔 자신들만의 아이덴티티를 아낌없이 터트릴 것을 결심 합니다. 그렇게 비운의 대명작, Fantastic Planet 이 탄생 합니다.
Fantastic Planet 은 얼트/그런지 하면 생각나면 매력적으로 다듬어진 디스토션 출력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런지로 치부 하기에는 너무나도 섬세하고 정성스레 다듬은 매끄럽다 못해 광채가 반짝반짝, 윤기가 좌르르륵 흘러나는 프로덕션도 있습니다. 그 매끄러운 프로덕션을 통해 지글거리는 헤비 사운드를 통해 만들어 내는 만만찮은 헤비 사운드 스케이프의 추상적 묘미. 그러면서도 고전 기타팝의 전통을 충실히 이행하는 인상 명확한 송라이팅 재능 표출.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자신들만의 예술적 노선이 맞다는 투로 나아가고 있는 아티스트적 곤조 표출. 하지만 누구나 접근 가능하고 이해하지 어렵지 않은 대중적 밴드로의 친숙함. 여튼 수많은 것들이 표출 됩니다.
앨범 전체적 흐름이 지나치게 차분하고, 담백하기에 이런 요소들을 한번에 느끼기에는 인내심 어린 시간투자가 필요한 편입니다. 싱글 컷으로 밀 수 있는 넘버를 중간중간에 배치하여 그것들을 적당히 듣고 앨범 전체가 대충 이렇구나 판단하며 빠르게 이 앨범을 판단하려 한다면, 이 앨범의 진가를 단 10%도 얻어 갈 수 없을 정도로 말이죠. 생각보다 매우 크게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히 들을 것” 을 매우 강하게 요구하는 앨범 입니다. 천천히 듣는다면 앨범 전체적인 흐름이 너무나도 섬세하게 야심만만 하다는 점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시애틀 씬 특유의 거칠지만 매력적인 에너지가 있고, The Beach Boys 의 이색작이자 어두운 모던 감성 표현의 클래식인 Surf’s Up 이라던지 이와 궤를 같이하는 90년대식 기타팝의 교과서인 Big Star 의 3장의 앨범에 발견되는 컬트한 코드의 기타팝 마법, The Blue Cheer, Hawkwind, Black Sabbath 와 같은 6-70년대 사이키델릭 시기의 공간감 창출의 모던한 계승, Shoegaze 라던지 Postrock 에 대한 그들만의 재해석/재창조 능력, 심지어 하드코어 펑크적 스트레이트함 까지 모두 펼쳐 집니다. 서두르지 않고 서서히 차분히 말이죠. 그렇게 이 앨범은 청자를 서서히 Failure 의 팬으로써 세뇌 시켜 버립니다.
무엇보다 앞서 설명한 것들을 완벽하게 담아내는 굉장한 프로듀스 감각 또한 이앨범의 대단한 부분으로써 나름 긴 코멘트를 하게 만듭니다. 그런지를 이렇게나 깔끔하게 담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시애틀 사운드의 특징을 매끈하게 담아 내는것도 대단하지만, 갑자기 그 에너지 덩어리 표출을 갑자기 멈추고서 펼쳐지는 어쿠스틱 감성과 디스토션끼 하나 없는 명확하고 깔끔한 기타톤의 기타팝 특유의 감성을 표현하는 부분은 정말 경이롭기 그지 없습니다. 지글거리는 사운드와 징글쟁글 거리는 느낌을 이질감 없이 기가 막히게 이어 붙이는 섬세한 프로덕션 센스는 이 앨범의 진정한 하이라이트라 사료 되네요. 그와 동시에 청자로 하여금 “완벽한 사운드 체크을 뛰어난 사운드 홀 한 가운데에서 이들의 라이브 세션을 경험하는듯한 착각” 을 불러 일으키게 만드는 점 또한 빠트릴 수 없네요. 파워풀함과 섬세함을 동시에 지닌, 애티투드적인 면과 아티스트적인 면을 동시에 표출하려는 야심 어린 밴드가 반드시 듣고 참고해야 할 교과서라 해도 과언은 아니겠지요. 이러한 대단한 프로듀스 감각이 이 앨범을 마지막으로 뚝 끊겨 버린것, 타 밴드를 통해 응용 된 적이 전혀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아쉽습니다.
여튼 여려모로 굉장한 것들을 차분하게, 섬세하게, 아낌없이, 야심차게 담은 이 앨범 Fantastic Planet 은 보란듯이 실패 합니다. 자신들의 모든것을 담은 앨범이 실패 하는것을 본 밴드는 더 이상 커리어를 이어 나갈 메리트를 가지지 못한채 해산을 선택하고 말았구요. 솔직히 이 앨범은 실패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1996년은 시애틀 빅4 밴드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하나 둘 해산하며 얼트/그런지 음악은 굉장히 빠르게 상업적 메리트를 잃어가던 시기였습니다. 게다가 이들의 음악은 얼트/그런지로 두기에는 그 카데고리에 반하는 성격이 매우 짙었습니다. 시애틀 그런지 특유의 1차원적인 거친 분노 그 이상의 음악을 했으며, 상업적으로 튠 된 그런지와도 거리가 큰 아티스트적 면모가 큰 음악을 했습니다. 메이저 레이블이 선보였던 수많은 얼트/그런지 히어로와 힛트 상품에 의한 대중의 “얼터너티브는 이런거구나” 하는 인지성에 벗어 났기에 이들의 야심 어린 스타일은 받아 들여지기 힘들었지요. 게다가 소속 레이블이었던 Slash Records 가 타 메이저 레이블로 팔려 나가는 가운데, Slash 를 가지고 있던 새 레이블이 이들의 앨범을 발매하지 않으려다가 레이블 양도시 소속 된 아티스트의 앨범 발매 계약을 끝마쳐야만 한다는 조건이 있었기에 겨우 발매 된 백 그라운드도 존재 하구요. 이런 상황인데 홍보를 제대로 해 줄 리 있을까요? 그럴리 없었습니다. 첫 싱글 컷 Struck On You 가 모던락 차트 20위권에서 반짝 할 뿐 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곡은 앞서 설명한 Failure 의 위대함을 한번에 함축 시킨 곡 입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이 곡을 한번 듣고 이들의 위대함에 대해 다시 생각 해 보시길 추천 드립니다.)
하지만 이 앨범은 긴 시간동안 서서히 그 진가를 알아 차리는 사람들이 등장하며 명작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이들의 진가를 알아차린건 뮤지션들이 먼저였다고 하네요. Garbage 의 리더이자 프로듀서로도 이름을 알린 바 있는 Butch Vig, Paramore 의 보컬 Harley Williams, Tool 의 보컬 Maynard James Keenan (그는 Tool 의 월드 투어에서도 Failure 를 오프닝으로 기용하는 파격 인사를 선사한 넘버원 서포터 이기도 합니다), Motley Crue 의 드러머 Tommy Lee 등이 그 주인공들 입니다. 여튼 이 앨범 Fantastic Planet 은 2000년대 후반부터 잊혀진 90년대 클래식 명반이라는 평이 하나둘 쌓이며 세기의 클래식이 되었으며, 2014년에 행해진 컴백 공연도 예상외로 성공적 이었습니다. 2015년에는 예상치 못한 컴백작이자 자체적으로 발표한 The Heart Is A Monster 를 발표하며 평단의 극찬을 얻어 냈으며, 두장의 후속 앨범 In The Future Your Body Will Be The Furthest Thing From Your Mind (2018), Wild Type Droid (2021) 또한 좋은 평을 얻었습니다. 또한 밴드의 다큐멘터리 영화 또한 2023년 발표를 목표로 제작중에 있기도 합니다.
발표 당시에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그 진가를 알아주지 못한채 사장 된 명작 앨범이 많습니다. 그와 동시에 먼 훗날이라 하더라도 그 진가를 알아 봐 주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지요. Failure 이 앨범 Fantastic Planet 은 그러한 앨범 입니다. 스마트폰의 보급 폭발로 인한 SNS 강세, 그 파워를 적절히 이용한 다양한 음악 전문 미디어의 극찬이 하나 둘 쌓이며 명작 반열에 오른 앨범이기도 하기에 저는 이 앨범을 90년대 명작인 동시에 2000-2020년대의 인터넷 음악 미디어 흐름에 있어 매우 중요한 한장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입소문이 명작을 만드는 법인데, 이 앨범은 좀 독창적인 방법을 통해 명작이 된 케이스이기도 하니까요. 매우 독창적인 음악 뿐만 아니라, 이 앨범이 명작 반열에 오르게 된 독창적인 흐름 또한 눈여겨 봐야지 않나 싶습니다. 여튼 여러모로 독특한 발자취가 남겨진, 세기를 무시하는 컬트 클래식 입니다. 지금에도 늦지 않았습니다. 즐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