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guisugabogg – Tortured Whole (Century Media, 2021)
Sanguisugabogg (뭐라고 읽냐고요? 영어권 애들은 대략 “상귀스가보그” 로 발음 하더군요) 는 올해 2021년에 첫 풀렝스 앨범 Tortured Whole 을 발표한 신예 밴드 입니다. 그런데 이 첫 앨범 이전의 커리어가 매우 의미심장 하죠. 2019년에 오하이오 콜럼버스에서 결성, 같은해 데모 Pornographic Seizures 발표, 메이저급 메탈 레이블 Century Media 와의 계약, 2021년 데뷔 풀렝스 Tortured Whole 발표. 네 그래요. 이게 다에요. 머리 회전이 빠르신 분은 눈치 채셨을 겁니다. Sanguisugabogg 라는 밴드가 꽤나 범상찮은 실력을 가지고 있기에 계약을 한방에 따냈겠구나 하는걸 말이죠. 더 놀라운 점은 Century Media 를 혹 하게 만든 이들의 음악 스타일은 개 마이너한 메탈 장르 “고어/슬램 데스메탈” 이라는 점 입니다.
슬램 데스 메탈과 Century Media? 꽤 상상하기 힘든 조합이죠. 슬램 데스메탈 이라는 장르가 데스메탈 씬에서 꽤 오랜 시간동안 튼실한 팬 베이스를 구축 하는데 성공한 서브 장르/스타일이긴 하지만, 메탈씬 전체적인 기준을 놓고 보자면 “컬트 마이너 익스트림 메탈 서브 장르” 임을 부정하기 힘든 그들만의 리그…가 아닐까요? Devourment, Pathology, Internal Bleeding 과 같은 슬램씬의 인기 베테랑 밴드들 마저 뛰어난 앨범 커리어에 비해 준-메이저급 레이블의 말석을 겨우 차지하고 있다는 점은 되새김 해 본다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여튼 단 한장의 데모뿐인 Sanguisugabogg 와 메이저급 레이블이 할 수 있는 Century Media 와의 딜 성사의 이유는 둘 중 하나일 겁니다. 레이블이 미쳤던지, 밴드가 슬램 데스메탈이 지닌 선입견의 한계를 뚫을만한 무언가가 있던지겠죠. 답은 물론 후자 입니다.
Sanguisugabogg 의 Tortured Whole 은 매우 마이너한 고어/슬램 데스메탈의 전통을 이어 나가는 한편, 그 장르가 하기 힘든/해서는 안되는 “귀에 착착 걸리는 리프-그루브-보컬라인” 을 만들어 나가는데 매진하는 혁신 (or 배신) 을 꾀하는 작품 입니다. 솔직히 뭐 그리 거창한 구석은 없습니다. D튠 보다도 더 낮고 더럽고 찐뜩하고 피냄새 진동하는 그 기타톤 (Mortician 같은거), 뭐라 그러는지 절대로 알 수가 없는 고어 거트럴/그로울링 보이스가 근본이 되는 그렇고 그런 고어 부르탈 사운드에요. 허나 느릿한 슬램, 놀기 적절한 그루브 & 업템포, 시원하게 휘몰아치는 브루탈한 스피드 구사를 자유자재를 구사하며 이쪽 장르가 생성하기 힘든 여러가지 감흥을 불러 일으킵니다. 캐치한 훅이 곡 마다 살아 있고, 그러한 곡들이 쌓이면서 한곡 한곡 특징이 생기고, 기억에 남는 곡들이 많아지고, 앨범 흐름이 좋아지고, 고어/슬램 데스메탈도 충분히 쉽게 즐길 수 있으며 음악적 깊이도 있으며 좀 더 큰 팬 베이스를 구축 해 낼 수 있다는 점을 청자들로 하여금 자연스레 도출 해 내게 만든다는 점은 꽤나 놀랍기 그지 없습니다. 귀에 잘 걸리고 뇌리에 남을 수 밖에 없으며, 또 하나의 음악적 방향을 제시하는데 성공한 혁신적인 마이너/컬트 데스메탈러? 그런 팀 컬러가 구축 되는 한장 입니다. 조금 매너리즘인 Unique Leader 레이블은 좀 긴장해야 하지 않을까나 싶은 생각도 살짝 들 정도에요. 하지만 이런 캐치함은 오랜 시간동안 이쪽 장르에 애정을 준 올드비 팬 이라면 “뭐 이런 셀아웃 씹쌔들이 있어?” 냐며 학을 뗄 겁니다. 네네네. 다 이해 합니다. 캐치함이 좀 과하긴 해요. 거를 분들은 알아서 잘 거르시길 바랍니다.
여하튼 Sanguisugabogg 가 단 한장의 데모로 Century Media 에 입성 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이 한장에 제대로 담겨 있습니다. Pathology 같은 컬트한 스타일을 구사하되, Pantera, Lamb Of God 과 같은 밴드에서만 찾아 볼 수 있는 캐치한 S급 헤비 그루브의 과감한 탑재와 이질감 없는 완벽한 조화가 있는 회심의 한방이라고나 할까요? 꽤나 캐치/모던하게 가지만 데스코어와 같이 쉽게 식상 해 질 수 있는 뉴메탈식 조미료 양념맛을 거의 찾아 볼 수 없다는 점도 매우 놀랍습니다. 캐치한 헤비-그루브를 겁나 많이 쓰면서도 데스코어가 되지 않는 브루탈 데스메탈러의 곤조 또한 빠트릴 수 없는 칭찬꺼리 입니다. Century Media 와의 딜로 인해 조금 서둘러서 앨범을 만들어야 했구나를 느낄 수 밖에 없는 다소 허술한 앨범 구성은 조금 아쉽지만, 이 정도면 꽤나 놀라운 데뷔작이 아닐까 합니다. 스플래터/고어 병맛 코메디가 대거 함유 된 비디오클립에서 비롯되는 유쾌함에서 비롯되는 친근한 고어/슬램 데스메탈 친구들 이라는 재미 또한 놓치면 곤란하고 말이죠. (4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호러-스플래터 영상 메이커 Troma Entertainment 가 비디오를 두개나 만들어 주었답니다.) 여하튼 다음과 같이 간단히 정리 해 드리며 마치렵니다. “누구나 쉽고 즐겁게, 그리고 기억에 오랫동안 남는 슈퍼 모던 & 나름 곤조 있는 슬램 데스메탈 쾌작” 이라고 말이죠.